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때 이라크 포로에 대한 미군의 가혹행위를 담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세상이 벌컥 뒤집어졌던 일이 있었다. 언뜻 생각하기엔 학대자 개인의 잔인함에 혀를 내두르다, 이것은 미군이라는 엄청난 권력을 지닌 힘의 우월성을 가지고, 그것을 최대한 누려보고픈 욕망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그런데 어느 잡지에서 이런 잔혹함이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과 함께 스탠리 밀그램의 심리 실험을 예시로 들었다. 인간이란 불합리한 명령앞에서도 얼마나 복종을 하는지 보여주는 이 실험을 통해 미군의 잔혹성과 함께 나치의 비인간적 행위가 어떻게 가능했었을까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인간이란 자신의 의지보다는 상황의 논리에 의해 행동이 선택되어진다는 측면을 이해했다고 할까... 이런 상황의 논리는 이 책 3장의 달리와 라타네가 행한 실험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밀그램의 실험에서 권위에 복종한 사람은 대략 65% 정도였다. 사람들은 이 65%라는 숫자에 현혹되어, '나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아마 그랬을 수도 있을거야' 라고 넘겨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머지 35%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머지에 대한 설명은 어는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의 심리학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기 위한 논거로 짤막한 예시를 통해 접해왔기 때문일까? 실험에서 드러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향 이외의 사람들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바로 이런 부분에 메스를 들이댄다. 그 이외의 사람들, 실험의 주류를 형성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설명을 차곡차곡 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실험이 끝나고 나서 피 실험자들에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추적하는 것은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심리 실험이 가져다준 압박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 경로가 뒤바뀌어 버린 사람, 그리고 주류를 형성했던 행동을 선택한 사람이, 실험이 끝난 후 비슷한 상황에서 비주류로 바뀌어버렸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심리실험을 행한 사람들에 대한 오해를 씻어내고자 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부분 또한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니 갑자기 영화<어퓨 굿맨>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어퓨 굿맨>은 탐 크루즈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인데 군대 내 폭력을 다룬 법정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군대 가기전에 한번 보고, 제대 하고 나서 다시 우연찮게 접하면서 순간 내가 얼마나 변해 있었는지 굉장히 놀랬던 적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용서할 수 없었다고 생각했던 학생이 개구리복(군복)을 입고 나서는 사선에서 자신의 동료들의 목숨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폭력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으니 말이다. 즉, 내가 겪은 상황이 어떤 사건의 당사자를 이해하는 밑거름이 되버렸다. 상황에 대한 이해, 실험의 당사자가 겪은 경험이 가져다준 변화를 나는 영화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쨋든 이 책은 20세기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심리실험 10가지를 이야기 형식으로 맛깔스럽게 써내려간다. 이 책의 흐름이 심리에서 뇌로 변해가듯, 심리를 바라보는 세상의 관점도 유심론적 측면에서 뇌생물학쪽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다. 다만 이런 흐름이 환원주의를 넘어서 기계론적 환원주의로 흘러가지 않을까 못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즉, 우울증이나 경계성 장애 등등의 여러가지 정신병을(이 책에선 또한 정신병에 대한 진단이 얼마나 허구일 수 있는가도 보여준다) 뇌의 일정부분의 고장으로 발생한 것으로 치부하고, 이런 병에 뇌의 이런 부분을 제거하면 된다는 식의 치료방법이 횡행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환원적 방법을 통한 치료가 어느 정도 성과를 가져온 것을 현실로 목격하고 있고, 그것이 당사자에겐 희망으로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이해와 치료가 어떤 부작용이나 오해를 가져오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을 가질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좀더 차분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실은 이런 환원적 사유가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황우석 박사의 사건이 가져다준 희망과 절망의 희비극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유도 되지 않을까 싶다. 만병통치약에 대한 인간의 숙원, 그리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진리에 대한 염원. 정말 가능한 일일까?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를 읽으면서 아직도 오리무중인 인간 심리에 대해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