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나무 왼쪽 길로 - 전5권
박흥용 지음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작가 박흥룡은 길은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라고 표현했다. 그 감동을 이 만화로 어떻게든 전해보려 했을터이고, 그것은 고스란히 독자에게 유혹으로 다가온다. 아무도 걸어간 본 적이 없는 길은 없다고 하지만 또한 누구나에게 똑같은 길 또한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상복이는 어려서부터 마을 어귀 호두나무에서 어머니를 기다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서울로 돈 벌러 가신 어머니가 명절이면 선물을 잔뜩 들고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상복은, 한번은 걸어서, 조금 큰 다음에는 자전거를 타고 어머니를 만나러 서울로 향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어느덧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에 발을 내디뎌야 하는 순간. 할머니는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털어놓는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재가를 하셨다는... 상복은 마음에 상처를 안고 분노를 품고서 고향을 떠난다. 오토바이를 타고 무작정 떠난 길, 어렸을 적 자신을 귀여워했던 동네 누나가 부임받은 학교로 찾아가고, 거기서 누나의 부탁을 받는다. 딸기를 찾아달라는. 만화의 대부분은 이 딸기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딸기를 찾는 과정은 전국을 순례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현재와 과거, 주변인과 주인공이 자연스레 섞어들어가면서 현실과 환상을 뛰어넘어 우리나라 곳곳에 숨겨 있는 각 지역마다의 사연을 담아내고,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만화 초반부는 주로 남도 중심의 지역지 소개에 가깝다면 후반부는 아리랑을 중심으로 놓고 그것에 얽힌 사연을 풀어놓는다.

각 만화 끝에는 여행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1권의 경우엔 작가가 직접 상복이가 돌아다닌 길목을 돌아보며 쓴 글이 붙여져 있다. 그런데 이 글이 만화 못지않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작가가 소개했던 그 곳을 꼭 찾아보고픈 마음을 갖도록 만드는 매력을 지닌 글과 사진들 때문에 가슴이 울렁울렁 거린다. 땅에 발을 고정시키지 못하고 마음은 벌써 그곳을 찾아 유영하고 있는듯한 착각으로 말이다. 2.3.4권 말미에는 만화 편집자들이 찾아 떠난 상복의 여행지 소개가 있고, 5권에서는 작가와의 대담이 들어가 있다. 어렸을 적 방황이 어떻게 현실의 작품 세계에 도움이 됐는지 그리고 무작정 떠난 여행이 중독성을 띠어가는 모습, 오토바이에 대한 전문가적 지식 등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만화는 마지막에 딸기의 정체를 드러내고 상복은 그 딸기를 통해서 한 층 성숙해진다. 길을 떠나는 자가 성숙할 수 있는 것은 길이 주는 가르침 때문이다. 이 만화에서 상복이 받은 가르침은 세상에 막다른 길은 없다라는 사실일 것이다. 막다른 곳이라 여긴 곳도 결국 어디론가 통하는 길이 놓여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결코  절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교훈. 길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주저앉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에게 힘을 준다. 지금 힘이 들고 쓰러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더라도, 거대한 벽에 부딪히더라도, 다시 일어서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놓여져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 희망이 바로 길의 유혹이요, 길이 주는 감동일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상복이 천안 쯤에서 만난 오토바이 수리를 해주는 아저씨의 말씀은 한동안 머릿속에 남아있을듯 싶다. 상복이 성장통을 거치는 것과는 어떻게 보면 상반된 입장이긴 하지만, 이 또한 여행이 준 감동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열댓 살 되던 때지..  동네 스무 살 된 형님들이 공장에 취직해서 돈도 벌고 술, 담배하는 것이 어른같이 그럴 듯해 보이는 거야. 나, 스무 살 되던해, 집 뛰쳐나와 공장에 들어갔어. 이런, 어른은 무슨... 돈 벌고 술 담배만 하는, 껍데기만 어른 흉내를 낸 거였어. 그런데 서른 살  된 선배, 형님들이 장가가고 애도 낳고... 그러는 거야. 그 모습이 진짜 어른 같더라구. 그래서 나도 장가갔어. 그런데 겉만 어른이고 속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야. 마흔이 되면 뭐 좀 알겠거니 했는데... 서른 살 때 아무 것도 몰랐던 그대로 마흔이 되더라구. 이제 내 나이 오십이 됐거든... 이제, 뭐 좀 알겠더라구. 아무 것도 몰랐던 서른 살의 그때 그 모습으로 육십 칠십, 마침내 죽음까지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말야...

길을 떠난다고, 또는 인생의 여행길을 조금 더 걸어간다고 무엇인가를 더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삶의 해답이 놓여져 있어 어느 순간 그것과 맞닿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세상에 해답은 존재하지 않을련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가출이든 출가든 그것이 해답을 찾아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실망만을 안겨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고, 또 길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바로 작가가 말한 길은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기 ‹š문일 것이다. 그 감동은 온 몸에 새겨져 절대 잊힐리가 없다. 그래서 온 몸이, 마음이 절망의 늪에 빠진 순간,  몸 안에 감추어져 있던 감동의 기억이 슬며시 찾아와, 바로 오늘 당신이 배낭을 꾸리지 않을 수 없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비록 서른 살 그때 그모습으로 아무 것도 모른채 죽음까지 맞이하게 될 지언정, 감동이 주는 내 삶의 흔들림을 포기하고 싶진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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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테~♡ 2010-01-15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흥용 씨 만화! 감동적이고 잼있지요.
<내 파란 세이버>도 재미있었던! 그런데 <쓰쓰돈 돈쓰 돈돈돈쓰 돈돈쓰>는 좀 실망했다는.
이들 만화책은 모두 소장하고 있습니다. ㅎㅎ
절판이 된 책들을 보면 제가 희귀한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기쁨도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