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엔 自然은 不仁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은 착한 사람에겐 상을 내리고 악한 이에겐 벌을 내릴 것이라는 착각으로부터 깨어나게 해주는 경구로 나는 알아듣고 있다. 최근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자연재해가 바로 이러한 불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거처럼 생각된다. 착하다고 해서 허리케인이나 지진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이 괴물은 아니다. 인간이나 생명체를 죽이기 위해 이빨이나 발톱을 드세우고 덤벼드는 괴물로 그려지는 자연은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실제 자연은 불인한 존재이지 괴물은 아닌 것이다. 식인 상어가 마치 오직 사람만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덤벼드는 모습마냥 이상한 일도 없다.

<오픈 워터>는 이런 부자연스러운 재앙을 화려한 액션으로 꾸민 치장을 걷어내고 마치 다큐멘터리 마냥 가만히 카메라를 들이댄다. 휴가를 얻은 부부가 스킨스쿠버를 즐기려 바다 한가운데로 나왔다 배를 잃어버린다. 망망대해. 위치를 제대로 찾았는지 티격태격.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두려움.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카메라는 끝없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이들만을 가만히 지켜본다. <남극일기>의 하얀 눈덩어리가 눈을 피로하게 만들고 지겹게 만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파란 색만이 가득한 이 영화가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다는 것은 새삼 놀랍다.(솔직히 좀 지겹긴 했지만 남극일기만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들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그럭저럭 런닝타임이 지나가 있다)

할리우드였다면 당장 덤벼들었을 상어들이 한번 쓰윽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고, 해파리의 습격에 대항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그렸을지도 모르는 장면들도, 심리적 불안감에 육체적 고통을 가중시키는 작용만 할뿐이다. 두 사람이 사라진 것을 알아채고 구조하러 올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영화 속 주인공과 똑같이 안고서 시간은 흘러가고, 상어들이 자꾸 나타나다보면 가슴이 조마조마해진다.

주인공 부부는 이런 상황에 대해 네 탓 내 탓 다투다가도, 서로 의지해야 할 대상이 오직 그 둘뿐임을 알고, 그리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막다른 상황에서 사랑을 확인하기도 한다.

망망대해에서 보내야 하는 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상황은 어떻게 될지 도저히 알 수 없다. 내 눈이 피로해지는 만큼 그들의 체력도 다해갈 것임을 알고, 곧 무슨 사단이 발생할 것임을 예측한다. 하지만 영화는 어떤 극적 장치도 끼워넣지 않고 담담하게 결말을 맺는다. 이것이 비극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이 자연 앞에서 무장해제됐을 때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만을 보여줄뿐이다.

영화가 꼭 화려할 필요도, 어떤 극적인 드라마적 장치도 없이, 눈을 사로잡는 액션이 없더라도, 썩 괜찮은 영화를 만들수 있다는 것을 <오픈 워터>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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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11-08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극일기>의 하얀 눈덩어리가 눈을 피로하게 만들고 지겹게 만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흠...그랬군요... 아직 남극일기도 이 영화도...보진 않았지만...
썩 괜찮게 여겨지는데요... 전 심리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런닝타임이 훌쩍 지나가버리는 그런 영화가 좋더랍니다 ^^

하루살이 2005-11-09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극일기>는 자연에 대한 공포와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 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웠습니다. 암튼 하얀 눈은 실컷 구경할 수 있죠. 지겹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