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가끔 그들의 강박관념을 엿보게 된다. 내가 심심해서 보는 영화들이라는 선입관이 강한 탓일까? 재미있으면 됐지 또 뭘 바라나?라는 심리를 그대로 제작쪽으로 돌리면, 재미있게 만들면 됐지 무얼 집어넣으려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든다.

리버티는 2002년 [폰 부스]라는 영화와 무척 닮아있다. 전화로 통화하면서 상대방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채, 목숨을 저당잡히고, 상대방이 시키는대로만 해야 하는 처지의 긴박감. 한정된 공간만을 비추는 속에서 지루함을 잃지 않은채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희미하게 기억나긴 하지만 <폰부스>에서는 저격수가 보이지 않았지만, <리버티>의 경우는 저격자도 대상자도 모두 다 드러낸 상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따라서 이야기의 집중은 무엇이 이런 무자비한 상황에 직면하도록 저격자를 이끌었는가에 있다. 무슨 이유 때문에로 이야기가 집중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무척 잘 만들어진 것 같다.

자신의 딸이 학교 총기 사건으로 죽게 된 전직 CIA요원. 복수심에 불타 복수를 하면 그만일 터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단순한 복수로 끝내지 않고 보다 고귀한 무엇인가를 덧씌워야 한다. 물론 그것이 사건의 원인을 타당하게 밝혀내고 그러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세상에 변화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가 이 곳에 메스를 들이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실은 그래서 <볼링 포 콜롬바인>같은 영화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곳에 덫이 있다라고 말하며 경고를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 덫이 어떤 경로로 어떻게 작용하며 얼마만한 위력을 발휘하는지는 보여주지 않는 방식. 그저 덫이 놓여있는 곴까지의 풍경을 그려대다 갑작스레 덫을 이야기하면서 이야기의 충격을 크게 만드는 것이 할리우드식 표현이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한대도 그것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은 힘들다. 그런데도 궂이 도덕적 포장을 하려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리버티의 주인공의 근본적 욕망은 복수심에 있었을 터이다. 직접적인 가해자를 대상으로 했어야 했겠지만 그들의 얼굴을 보고 복수를 행하기에는 왠지 쉽지않다. 개별적 존재자로서 마주쳤을때 복수의 칼날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마음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점차 그 이유에 대한 이유를 달기 시작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 전체 사회로 퍼져 나간다. 물론 실제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사건들도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그러나 눈덩이 자체에 대한 이야기 없이 느닷없이 발생한 눈사람만을 이야기하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 근거 없는 음모 정도로만 여겨진다. 그래서 정말로 진중하게 논의되어야 할 이야기가 재미로 희석되어지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만다. 그러니 <볼링 포 콜롬바인>같은 영화가 사라지지 않고 꼭 계속해서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 방식이 재미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이 전부인양 생각하고 더이상의 논의를 하지 못하도록만 하지 않았으면 싶다. 단순히 이런 식의 음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만 부추기지 않았으면 싶다. 지극히 개인적으론 그냥 대놓고 복수를 행하는 타란티노처럼 스크린 속에서 신나게 놀았으면 좋겠다. 할리우드는 할리우드로, 마이클 무어는 마이클 무어식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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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11-02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버티는 안 봤지만... 볼링 포 콜럼바인, 폰 부스는 봤어요..
세 영화가 이런 방식으로 엮일 수 있군요~

하루살이 2005-11-02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갖다 붙히기 선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