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시인의 최근 시집 <유목과 은둔>과 관련한 인터뷰를 듣다 감정의 혼돈에 휘말려 괴로웠습니다. 90년대 초반 학생들의 잇따른 분신에, 자신의 생명사상을 근거로 분신을 만류해오던 목소리가 가져오던 혼돈과는 사뭇 다릅니다. 지금의 혼돈이 달리 다가온 것은 어찌 보면 저도 이제 나이를 점점 먹어가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최근 '인생 뭐 별거있냐' 라는 우스개 소리가 삶의 진심을 담아낸듯 여겨지고 있는 와중에 시인의 은근살짝 사는 것이라는 말은 인생 뭐 별거없다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허망함이 잔뜩 가슴속에 스며드는 찰나에 인터뷰를 하던 탁석산 씨가 멋진 해석을 하는군요. 젊었을 적 치열하게 살았기에 나이들어 느슨하고 풀어헤쳐진 삶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김지하 시인의 말을 계속 듣다보니 그의 젊었을 적 고생이 얼마나 컸을 것인지를 짐작케합니다. 외롭고 회한 가득한 긴 투쟁의 세월을 건너다 보니 어느새 백발...  삶이 얼마나 허망했을 것인지 말이죠. 전사로서라기 보다는 민주주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했을뿐이라는 그의 고백은 그래서 더욱 그의 외로움과 회한을 짙게 드리우게 만듭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는 그런 인생을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 꼭 그런 일을 회피하겠다는 의미보다는 나에 대한 삶을 살아보겠다는 아주 작은 욕심으로 느껴집니다. 물론 그 나의 삶이 사회와 따로 떨어져 별개의 것으로 이루어질 순 없을테지만 말이죠.

그래서 저도 혼돈된 마음을 어느 정도 씻어냅니다. 생명의 반대말은 죽음이 아니라 죽임이라는 시인의 말에 동감하며, 그가 죽음의 근처에서 찬란한 생명의 꽃을 피워내기를 바랍니다. 그 꽃이 세상을 바꾸는 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꽃으로 피어날 것을 말이죠. 그래서 저도 배웁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정답이 없듯이, 그리고 그 정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는, 은근살짝 훔쳐보기를 통해서 진짜 나의 삶을 나의 방식대로 찾아 내멋대로 살아가길 말입니다.

생명있는 것들은 왜 죽는거죠? 라는 시인의 질문이 귓가에 맴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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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4-08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보았거든요... 클링턴이 나오는가 싶더니...끝나고 김지하 시인이 나오더군요... 그가 한 말 중에서...그 즈음의 나이가 되면...죽는 꿈을 많이 꾼다던 이야기가 기억나네요~

하루살이 2005-04-11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물론이고 저도 아직 그런 꿈을 꿀 때는 아니겠죠?
활짝 꽃피는 동산을 거닐고 푸른 하늘을 나는 그런 꿈을 꾸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