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비유되는 건 많다. 연극이 그렇고 바둑도 그렇고 야구도 그렇고... 특히 스포츠라는 것은 그것이 승부가 극명하게 갈라진다는 점에서, 승리를 위해선 엄청난 피땀을 흘려야 한다는 점에서, 훈련의 과정에서 얻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통해 교훈을 얻는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쉽게 찾을 수 있을련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포츠를 다루는 영화들은 끊임없이 나오곤 한다. 특히 복싱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배고픔과 연관되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 인생의 굴곡을 잘 드러내는 소재로 자주 쓰여진다. 헝그리 복서의 헝그리 정신. 현재 우리나라에 챔프가 없다(1명 있나?)는 것은 바로 헝그리 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우스개 비슷한 소리도 결코 쉽게 무시못할 이유중의 하나일련지 모른다.

아무튼 밀리언달러 베이비라는 이 영화도 맨 처음 이런 스포츠를 통한 인생이야기 처럼 보였다. 복싱은 모든게 거꾸로 라는 모건 프리먼의 해석에 잔뜩 어떤 격언들이 쏟아져 나올 것같은 분위기였다. 물론 건질건 있다. 공격을 위해선 한발짝 물러날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너무 멀리 물러서면 펀치가 다다르지 못한다.

여기에 한가지 덧붙여지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이스트우드가 직접 말하기도 하지만 그의 체육관에 쓰여져 있던 tough ain't  enough.  즉 이말과 위의 말이 합쳐졌을 때 비로소 인생에 대한 훌륭한 교훈을 하나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적당한 거리두기. 용감하게 나아갈때 나아가고 물러설 때 물러설줄 아는 지혜.

그러나 영화는 중반부 서서히 그의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트레이너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훌륭한 가르침으로 매기(힐러리 스웽크)는 승승장구 하고 결국 챔프전까지 도달한다. 하지만 그의 행복을 시샘하는듯한 치명적 사고. 경추와 척추를 다침으로써 신경이 마비되고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매기. 이 때부터 관조적 입장에서 바라보던 영화는 점차 감정이입의 격류속으로 흘러간다. 처음엔 매기의 입장에 처해 과연 저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것인가? 가족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의 어처구니없는 이기심. 그것보다도 더 큰 복서로서의 꿈의 좌절. 복서가 손가락하나 까딱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는 건 죽음 그 이상의 고통일 것이다. 그 고통이 전이되는 듯 하던 순간, 감정의 흐름은 이제 프랭키에게로 간다. 매기가 자신의 목숨을 끊어달라고 프랭키에게 부탁하면서 이내 프랭키의 고뇌에 같이 휩쓸리게 되는 것이다.

프랭키는 23년을 한결같이 매주 교회에 나간다. 교회에 가서 목사에게 엉뚱한 질문들을 던지는 늙은이. 매주 딸에게 보낸 편지는 반송되어져 문앞에 떨어져 있다.  언뜻 이 상황을 잘 이해못하다가 결국 프랭키가 매기의 생사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 목사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치유할 수 없는 상처.

그는 그 상처를 끝끝내 자신으로부터 털어내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리고 또 다시 그는 23년의 세월로도 치유하지 못했던 그 상처보다 더 큰 상처를 짊어질지도 모를 결단을 내려야한다. 그는 트레이너 이기 전에 유능한 치료사였다. 어떤 상처도 그의 손을 거치면 흐르던 피가 멎는다. 하지만  뼈까지 깊게 파고들어간 상처는 결코 피를 멎게 할 수 없다. 프랭키는 자신의 몸에 그런 깊은 상처를 새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또다시 그것보다 더욱 큰 상처를 지니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상처는 그녀를 치유해준 영광의 상처다. 오직 복서로서의 꿈을 위해 늦은 나이에도 상관하지 않고 그것만을 향했던 매기. 그녀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영광을 경험했고, 최고의 자리 바로 아래까지, 아니 정말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갔으며, 꿈에 도달한 행복을 맛보았다. 그 행복감이 사라지기 전에, 관중의 함성이 잊혀지기전에, 고통스런 인생을 끝낼 수 있다면 그녀는 비록 짧은 영광이고, 짧은 인생이었지만 후회없으리라. 프랭키는 그것을 알기에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것은 비록 그들이 피를 나눈 혈육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욱 진한 그 무엇인가로 끈끈히 맺어진 사이였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오! 나의 <모쿠슈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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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2005-03-26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 글..추천합니다.

하루살이 2005-03-26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프랭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