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라고 내려온 집. 나이 먹은 아들을 반기는 어머니의 표정은 여전히 밝다. 모든 것을 알릴 수 없는 아들의 처지와는 상관없이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걱정만 앞선다. 물론 이 걱정은 순전히 아들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다. 명절때면 꼭 그 걱정의 무게를 더하는 결혼앞에서 아들은 변명거리만을 찾는다.
함박웃음 속에서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한숨소리를 뒤로 하고 욕실로 들어간다. 그 때 문득 눈에 들어온 빨래판. 원래 4각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모서리가 닳고 닳아 둥글어지고 얇아진 모습에 시선을 뺏긴다. 문득 세탁기의 텃세에 제 할일 못하고 서 있던 나의 자취집 빨래판의 잘 생긴 모습이 떠올랐다. 이렇게 빨래판이 닳을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손길이 닿았을까? 어머니의 힘에 실린 손길이 몇천번 아니 몇십만번 거쳐야지만 비로소 그 모습을 갖췄을 빨래판을 대하니, 순간 웬지 모를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그렇게 닳아빠진 빨래판만큼이나 어머니의 뼈도 닳아빠져나갔을 것이다. 손목 어깨 허리의 뼈가 욱신거릴 때까지 계속되었을 그 몸짓이 눈에 선하다. 세탁기보다는 직접 손으로 빨아서 건네주신 속옷을 입으면서 어머니의 체온을 느껴본다.
고향이란 아마 이런 것인가보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해본다. 그저 명절이면 어김없이 와야만 했던, 지겹고 힘든 고속도로 속의 차안이 먼저 떠오르곤 했었던 고향이었지만, 이젠 아마도 빨래판이 떠오를듯 싶다. 집안 곳곳 어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이 없는 곳. 이제 고향은 나에게 어머니의 손때로 다가온다. 닳아버린 뼈를 원상태로 돌릴 순 없겠지만 어머니의 마음 만큼은 조금이라도 닳지 않도록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뻐근해져 온다. 고향에서 아무 생각없이 푹 쉬다 마침내 서울로 돌아와 빨래판을 물끄러미 한번 쳐다본다. 고놈 참 허여니 뺀질맞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