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KBS에서 다큐멘터리로 <공부하는 인간>을 방영중이다. 그런데 방송에서 말하고 있는 공부라는 것이 조금 요상하다. 공부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이라고 나와 있다. 여기서 또 학문이란 '어떤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힘. 또는 그런 지식'이다. 즉 공부란 지식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그런데 방송이 다루고 있는 것은 기술은 빠져 있다. 또한 익힌다는 부분, 그 중에서도 특히 몸을 통해 익히는 것도 제외되어 있다. 공부란 모름지기 문자를 통해 암기하고 토론하는 것으로만 비쳐진다. 그래서 당연히 문자가 갖는 속성이 바로 공부를 하는 이유로 변질되어 버린다.

 

2. 문자란 정보와 관련되어 있다. 현대 이전에는 문자를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었다. 특히 성경과 같이 종교적인 메시지를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분이었다. 정보를 제한하고 이것을 이용한다는 것은 곧 힘이었다. 공부란 곧 권력의 획득인 것이다. 2011년 방영됐던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과 정기준이 맞섰던 것도 바로 이때문이었다. 한글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문자를 접하고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사대부가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목숨을 걸고 싸우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문자와 관련된 공부는 결국 힘에 대한 동경으로 표출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엔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 나아가 남들보다 위에 서기 위해 공부를 한다. 강남 대치동을 다니는 학생들의 인터뷰는 가히 충격을 넘어 경악이라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공부를 잘 하지 못하면 왕따당할거라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니 말이다.

 

3. 힘이란 개인을 위해 사용되면 독재가 되지만 남을 위해 사용한다면 호혜가 될 수 있다. 공부를 통한 힘의 획득은 가난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인도에서는 계급적 차별을 뛰어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개인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지식을 이용해 타인에게 유용한 일도 가능하다. 중국의 아이들처럼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한국의 아이들은 안정된 직장을 갖기 위해 공부를 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직원이나 고위 공무원을 꿈꾸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그럴싸한 가정을 꾸리고 무난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마저 갖게 만든다. 반면 유대인들은 신의 말씀을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 공부하기도 한다. 이들은 모두 달라보이지만 결국 힘의 획득이라는 측면에서 닮아 있다.

 

4. 공부란 이런 것일까. 역사와 지역을 떠나 소위 상위계층에 대한 욕망이 공부를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냐는 소리다. TV 다큐멘터리 속 '공부하는 인간'은 이렇게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물론 그것을 바라보는 하버드대학생들만이 이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모양새다. 그들은 세계의 다양한 아이들이 이렇게 공부하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니까. 놀랐다는 것은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정녕 힘에 대한 동경이나 욕망이 이끄는 것이 아닌 다른 공부란 없는 것일까. 바로 앎에 대한 호기심말이다. 그리고 그 호기심이 나와 세상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고, 그래서 삶을 알아가는 것. 앎과 삶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향한 공부 말이다. 그것은 꼭 문자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도 아닐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다르게 '공부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몹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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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여비 2013-03-13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초등학교 2학년을 둔 학부모이자 일상과이상 출판사 대표입니다. 요새 이 방송을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방송을 통해 성공만을 위해 공부하는 우리날가 학생들 모습이 슬프게 다가오는데요. 방송 출연자 릴리 마골린의 아버지인 힐 마골린 씨가 유대인의 공부법을 다룬 책을 냈습니다. 제목은 <공부하는 유대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