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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악마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영화보다 재미있는 책.
한마디로 그렇습니다. 웬만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이야기의 반전을 예측하면서 순간 당황하게 됩니다. 나의 예측이 맞았노라고 히죽히죽 웃고 있을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찾아옵니다. 아직도 책은 100쪽 가까이 남겨져 있기에 말입니다. 분명 내 예상대로 이야기는 흘러가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책은 이제 정리할 마지막 몇 쪽만을 남겨놓아야 하는데 말이죠. 정말 거대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숨가쁘게 진행되던 이야기가 차차 정리된다고 여겨지는 순간에도 아직 이야기는 급변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던 거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마치 추리소설마냥, 영화 인디아나 존스마냥 흥미진진합니다. 베르니니의 예술품 속에 감추어진 암호들, 그리고 갈릴레오 이후의 일루미나티라는 집단에 대한 궁금증, 물질과 반물질에 대한 이야기가 촘촘하게 얽혀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물론 거기까지도 훌륭합니다. 시간 흘러가는 줄 몰랐고, 다음 내용이 궁금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소설이 말하는 종교와 과학의 대립 또는 통일은 그다지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의 세계에 대한 해부가 신의 존재를 증명해줄 것이라는 의견도 이미 오래전에 있었습니다. 또한 신에 대한 신비성을 없애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항상 존재했었죠. 그리고 진화의 속도차에 대한 문제의식도 새삼스러울 것은 없습니다.
인간의 도덕성은 인간의 과학만큼 빨리 진보하지 못했다. 인류는 자신이 소유한 힘에 걸맞게 정신적으로 충분히 진화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지 않을 무기를 창조한 일이 없었다.(350쪽)
마찬가지죠. 하지만 이것들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엮어내 자신이 하고싶은 말을 맘껏 해낸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고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질의 대칭에 놓여진 반물질의 생성과정, 그리고 반물질 주위로 형성되는 물질들이 빅뱅의 현상과 무에서 유의 창조를 보여준다고 하는데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물질의 무라는 것이 절대 무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에너지든 빛이든 이것은 이미 유입니다. 게다가 반물질을 탄생시키기 위해 입자 가속기를 돌린다든가 전자를 벗겨낸다든가 하는 모든 일련의 과정 또한 어떤 힘의 전제를 필요로 합니다. 즉 절대적인 무에서의 유의 창조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죠. 제가 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이 끝끝내 해결하지 못할 이 최초의 그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일 수 있으며, 부처일 수도 있으며, 도 일수도 있으며, 스스로 그러한 자연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라 이름붙이든 그것이 절대적인 무일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명칭에 따라 그것을 대하는 방식은 달라지겠죠. 신이라 생각하는 사람과 자연이나 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주를,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로 나타나 삶의 태도 또한 달라질 것입니다. 바로 그런 부분이 종교라고 불려질 수도 있을 것이고, 철학이라고도 불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칸트의 안티노미(이율배반)는 솔직하다고 여겨집니다.
'세계는 시작이 있는가 아니면 시작이 없는가’
‘우주는 공간적으로 무한한가, 아니면 한계가 있는가’
‘사후에 정신은 존속하는가 아니면 존속하지 않는가’
부처 또한 마찬가집니다. 이런 형이상학적 질문에 연연하기 보다는 업의 굴레를 벗어날 실천을 중시했죠. 도가도 그렇습니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기에 우리는 그저 그 말할 수 없는 도를 말할 필요없이 스스로 그러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과학과 종교의 대립보다는 도덕성이라는 진화의 속도에 저는 촛점이 맞혀집니다. 무감동은 죽음이라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도덕성은 의무감이라기 보다는 측은지심과 같은 마음의 움직임이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일테니까요. 두서없이 써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