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정이가 드러나는데도 오랜 세월이 걸렸다.

ㅡ김훈<현의 노래>중 137쪽

 

쭉정이는 벼가 익었을 때에야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피라면 다 자라기 전에 뽑혀나가겠지만 쭉정이는 무르익을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제 모습을 밝힙니다. 아마 쭉정이 편에서는 자신의 수명을 다할 수 있는 방편이겠지만, 거두어야 하는 입장에선 헛힘만 쓰게 되는 꼴이죠.

세상 살면서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는 것은 위기가 닥쳤을 때라고도 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진짜 친구라는 거죠. 평안했을 때에야 누구나 곁에 있을수 있을테니까요. 물론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지 않음으로써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면 좋겠지만 말입니다.

더욱이 정말로 쭉정이 때문에 괴로운 것은 자기자신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내가 조금은 잘 하는 것 같은데, 정말로 남들보다 잘 하는가? 라는 판단을 미리 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이런 깨달음은 항상 시간이, 세월이 흘러서야 문득 찾아옵니다. 그래서 참으로 허망하게도 아무련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한겨울 땅을 갈고, 봄에 씨를 뿌려, 땡볕을 받아가며 살아온 세월이 가져다 준 것이 쭉정이뿐이라니. 참으로 허망합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열심히 땅을 갈고 있는 것이 이삭이 될지 쭉정이가 될지 지금 당장 알 수 없다는 것. 허망하지만 그래서 살아가야만 하는가 봅니다. 사는게 아니라 살아가야만 하는가 봅니다. 비록 쭉정이를 맺더라도 말이죠. 다만 오늘도 잠자기 전 빌어봅니다. 제발 알찬 열매를 맺는 꿈이라도 꾸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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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1-12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내가 이렇게 열심히 땅을 갈고 있는 것이 이삭이 될지 쭉정이가 될지 지금 당장 알 수 없다는 것...

이 말에 전적으로 기대어 보고 싶네요,,

하루살이 2005-01-12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