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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6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지음, 오형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추리 소설을 읽다 단서를 찾을 때만큼 기쁠 때도 없다. 분명 이것이 감추어진 사건을 들춰낼 무엇인가로 작용할 것이라고 직감하고 나서, 그것이 탐정에 의해 설명되어질 때, 내가 비록 그것을 설명하진 못했어도 단서로 작용했다는 것을 맞췄다는 것만으로도 우쭐해지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설들은 이내 독자들이 사건을 쫓아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그저 지적게임의 방관자로서 지켜보는 재미만을 주기 십상이다.
그러나 크로프츠의 통은 독자가 중간에 자포자기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을 것 같다. 화물선에 실려온 통 속에서 발견되는 시체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 책은 초반부 형사들을 통해 이 사건의 단서들을 쫓아간다. 그리고 단서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중간 정리 형식으로 서장과 형사가 모여 토의를 벌린다. 그 토의 과정은 마치 독자를 옆에 두고 이야기를 하는듯 해서, 내가 사건과 따로 떨어져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해결해야 할 주인공의 한 사람으로 초대하는 것 같다. 더군다나 소설은 3부에서 사건을 바로보는 시각을 달리한다. 즉 이번엔 범인으로 몰렸던 인물을 변호하는 변호사와 사립탐정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발견되었던 단서들을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찾아내고 해석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되풀이되는 단서들이 사건을 어떻게 다르게 보게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사건 전체를 완벽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힌트가 무엇인지를 저자와 똑같은 호흡으로 맞이한다. 소설 중간 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 속의 인물들과 함께 해결해 갈 수 있는 의지를 남겨준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최고 장점이 있다고 하겠다.
독자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을 조금이라도 더 갖고 있지 않는 주인공들로 인해, 즉 독자와 평등한 입장의 주인공들 때문에 소설은 마치 즐거운 게임이나 퀴즈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