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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지테리안, 세상을 들다
쯔루다 시즈카 지음, 손성애 옮김 / 모색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작은 고추가 맵다며 나폴레옹 징키스칸을 예로 들던 시기가 있었다. 혈액형이 AB형인 사람이 천재가 많다며 또 과거 잘 나가던 그리고 지금도 유명한 사람들을 거론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누군가 탁월한 사람이 자신과 닮은 또는 자신과 같은 어떤 부류에 속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속한 그 부류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이 책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간디까지 역사 속의 수많은 베지테리안들을 거론한다. 물론 혈액형이나 신장같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의한 선택적 특징이라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글의 저의가 이런 과거 인물을 들춰내는 것으로부터 이미 드러나있는 것과 같다. 베지테리안들이 페미니즘과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또는 당대의 진보적 사상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가 가긴 하지만 필요에 따라 선택되어진 사람들과 인용구는 그다지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더군다나 최근 일련의 유기농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의 홍수속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값싼 농산품을 구입한다. 그러니 아무리 육식의 위험성을 주장해도, 광우병이나 전염병이 번져도 사람들은 고기에 대한 유혹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들에게 지구를 살리는 길, 환경을 살리는 길을 주장한다고 해서 과연 행봉의 변화, 즉 식생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는가?
물론 과학적 논거나 실증적 자료들을 들이대는 환경서적보다야 우리 귀에 익숙한 과거의 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채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다 친근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올 여파는 너무나 미약할듯 하다.
당장 자신의 입맛을 돋구는 쾌락 대신 선택해야 할 그 무엇이 보다 더 큰 즐거움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세상을 들 베지테리안은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받는 것보다 베푸는 것이 더 즐겁다고 하지만 정녕 사람들은 베풀기를 마다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가짜 쾌락에서 벗어나 진짜 즐거움을 누릴 지혜를 지닐 수 있기만을 기도만 해야 할 것인가? 어려운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