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NOT? - 불온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세상 읽기
유시민 지음 / 개마고원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학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을 선택할 것이라는 합리성을 전제로 한다. 물론 이 합리성엔 도덕성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즉 인간이 이기적임을 가정하고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세상은 자신을 희생하고서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라 꼭 이론대로 세상을 재단할 수 없게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고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인간이 손익계산을 정확히 할 수 있는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는 바탕아래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정의를 선택함으로써 감수해야 하는 희생을 줄이고 그 댓가를 사회가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불편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런 합의나 제도가 제대로 정착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한 사람들은 그 후손까지 떵떵거리며 살고 독립운동을 한 후손들은 고등교육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삶. 또 군사정권 시절 자유화 운동에 앞장섰던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에 몸이 망가지고 정신이 피폐해졌음에도 보상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 자본주의적 삶이 합리적이라면 누가 이런 고난의 길을 택할것인가? 소수 희생정신과 정의감이 충만한 사람들을 빼고서 말이다. 사회가 이런 사람들을 우대하는 모습을 비춰줄 때 이성적 인간은 분명 정의를 택할 것이다.

경제학 관점에서 바라본 세상은 결코 인간 자체의 심성을 바꾸는, 즉 모두가 성인이 되자고 했던 공자의 말씀이나 자비를 사랑을 베풀라는 불교, 기독교의 종교적 교리를 들먹이지 않고서도 시스템의 변경으로 참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밑바탕엔 분명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남의 이익을 해하지 못한다는 기본적인 도덕성을 전제로 해야만 한다는 것은 명심해야 한다. 하기야 이런 전제마저 없는 합리성이란 이미 합리적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타인을 해하고서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있다면 나 또한 다른 사람이 해하는 타인이 될 수 있다는 가정이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도대체 이익의 정도를 어느 정도까지 하느냐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어느 정도의 이익에 사람들이 움직일 것인지도 예측할 수 없는데 원인이 있을성 싶다.

아무튼 자신의 기득권을 절대 포기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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