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남산에 들렀다.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들이 아직도 누워 있다. 아름드리 나무도 제 몸 하나 지탱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를 놀래킨 것은 쓰러진 나무들의 숫자가 아니였다. 그 큰 몸통에 비해 뿌리가 너무 짧다는 것이었다. 땅 속 깊이 뿌리를 박지 못하고 옆으로만 뿌리를 키우다 덜컥 이런 봉변을 당했다. 사람들이 뿌리 깊은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왔지만, 실제로 이렇게 뿌리 뽑힌 나무를 보고서야 그 말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 사람들에게 있어 뿌리는 무엇일까. 태풍보다 더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인생살이 속에서 쓰러지지 않고 굳건히 버텨나갈 수 있는 깊은 뿌리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해봤다. 이번 청문회에서 추풍낙엽처럼 스러져 간 사람들도 떠오르고, 정적들의 칼날 속에서도 살아남아 명성을 드높이는 사람들도 떠올랐다. 과연 뿌리를 깊이 내리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이란 말인가. 

그 뿌리의 생김새나 뻗는 양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건강함을 뿌리뻗기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육체적 건강 뿐만 아니라 생각의 건강까지 모두 포함하는 전일적 건강함이다. 실은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한 나무들은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표이기에 뿌리깊음과 건강은 똑같은 뜻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겠다. 어쨋든 건강한 사람은 비바람 속에서도 굳건하게 생을 헤쳐나갈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건강함이란 무엇인가. 나는 공생이 건강함이라고 본다. 세포 하나하나가 경쟁 관계에 놓여 있지 않고 공생할 때만이 내 몸이 제대로 돌아간다. 마찬가지로 개인과 개인 사이, 개인과 자연 사이, 개인과 국가 사이 등등 관계 맺어짐은 공생이 전제로 되었을 때 건강함을 갖을 것이다. (생존 경쟁이나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속에서 어떻게 공생을 이야기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럴 땐 동학의 한울님 이라는 뜻을 가져오면 좋겠다. 더 큰 생명을 위한 희생의 정신과 경쟁은 그 시선 자체가 판이하게 다르다) 나무가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는 것도 나뭇잎이 썩고 그 썩은 나뭇잎을 먹고 미생물이 자라고, 지렁이가 꿈틀대고, 두더지가 땅을 파는 등등 생명체의 활동이 보장 된 살아있는 땅에서 가능한 것이 아닌가. 

비바람을 겁내지 않고 인생에 당당해지기 위해서 과연 나는 얼마나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한번쯤 고개 숙여 쳐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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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10-09-07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100일이 넘었어요. 태어날때부터 지금까지 사진을 죽 훑어보니 이제야 사람 꼴을 갖췄더군요. ^^ 그 생각에 빠지다 보니 저도 사람꼴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했구요. 또한 아기가 진짜 사람꼴을 갖출 수 있도록 잘 키울지 걱정도 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