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알레르기는 영화에서 종종 코믹적인 요소로 쓰이곤 한다. 모르고 땅콩을 먹다가 입술이 탱탱 부어오르거나 온 몸에 반점이 나는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표현된다. 반대로 간혹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는 것을 소재로 스릴러에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영화 속 이야기 또는 먼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든 음식 알레르기가 점차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알레르기란 그냥 두드러기가 나는 정도로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목숨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일 것이다. 그래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약물을 항상 지녀야 하고, 알레르기와 관련된 음식을 먹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소모해야만 한다. 이번 EBS 다큐 프라임 <아이들의 전쟁>에선 쌀 알레르기와 같은 희귀 사례 보다는 그나마 일반적인 사례들을 보여줌으로써 위험성이 보다 가깝게 접해 있음을 잘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땅콩, 우유, 계란, 밀, 과일 등등 알레르기의 종류는 셀 수가 없다. 알레르기 음식을 피하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그런데 왜 이런 치명적 알레르기가 늘어난 것일까. 

최근에 부쩍 늘어난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 <위생 가설>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도시와 농촌 간의 알레르기 비율을 비교해보면, 전자에서 훨씬 많은 사람들이 알레르기로 고생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 이유는 바로 너무나도 철저한 위생 관념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렸을 적 먼지 등에 존재하는 적고 약한 바이러스를 접하면서 조금씩 면역력을 키워 나갈 기회를 잃어버린 도시의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아주 작은 병원균에도 쉽게 과도한 면역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즉 면역체계의 오작동으로 알레르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최근엔 아토피의 병인도 이런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알레르기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현대 의학으론 아직까지 이상 면역체계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처방책이 없다. 위생 가설이 맞다는 전제 하에 어렸을 적 철저한 위생관리 보다는 오히려 조금은 더럽고 지저분하게 키워야 한다는 것도 어찌 보면 예방 차원일 뿐이다. 일단 알레르기에 걸리고 나서는 오히려 지저분한 환경은 병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일상생활을 무너뜨리고 행복한 삶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이런 알레르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것일까. 알레르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첫걸음은 알레르기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즉 알레르기를 치료할 수 없기에 정상인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알레르기를 갖고 있지만 '그게 뭐 어때'란 정신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들이 몸에 점을 갖고 있듯 난 그냥 알레르기라는 것을 갖고 있을 뿐이야.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불행해 할 필요는 없어. 그냥 조심하며 살면 돼. 내 꿈과 인생을 위해 이건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아.  

상대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지독히도 괴롭고 불편하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 결국 행복의 길인 것이다.    

한편 <우리는 모두 짐승이다-동물, 인간, 질병>이라는 책에서도 질병에 관한 완전한 박멸을 꿈꾸기 보다는 공존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국 에버딘 대학의 연구소에 재직하는 손한경 박사(보건학 전공)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을 무력화하려는 인간 때문에, 미생물은 유전자형을 바꾸거나 약물에 대한 감수성을 바꾸거나 사람 대신에 다른 종을 숙주로 선택하는 식으로 미생물, 인간, 환경의 삼각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 삼각관계가 어느 정도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에서는 인간의 면역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미생물의 감염력이 특별히 높아지지 않는 한 인간이든 미생물이든 커다란 재앙 없이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새롭게 나타나는 질병은 이미 이 균형 관계에 내재되어 밝혀지지 않거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균형이 파괴되고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새로운 질병이나 오래된 질병의 새 형태가 나타날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알라딘 요약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