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이가 전하는 태평농 이야기
이영문 지음 / 연화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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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농업인은 제 농산물을 가능한 한 비싼 값에 남이 사가도록 떼를 쓰는 속된 장사꾼이 되어 있다. 하락한 쌀값을 올릴 욕심으로 농자재나 포장장법을 달리해서 상표 또는 품질인증서로 자기만 팔아먹겠다고 안달들이고, 농약의 공포 때문인지 정말 안전한 농산물인가 의심하면서도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그대로 믿고 구매하는 것이 현실이다... 농사짓기의 모든 것은 자연에 담겨 있다. 그 자연 안에 흙이 있고 밥이 있고 온갖 목숨 가진 것들의 어울림이 있다. 선진문명이란 이름으로 오직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흙을 뒤집고 온갖 비료와 농약으로 자연에 칼질을 해대는 지금, 결국 그 칼날은 우리 목숨을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20쪽 

작물은 자연이라 인위적인 간섭함이 없을 때 본래의 모습대로 존속할 수 있건만, 대부분의 농민들은 그들의 자생력을 쉬 믿으려 하지 않는다. 흙과 씨앗이 만났을 때 그 안에 담긴 생명력은 감지하지 못하고 그저 남 따라 장에나 가고 본다. 모든 작물에는 무조건 비료를 주고 농약을 쳐야 한다고 주입시켜 온 교육의 힘이 그렇게도 무서운 것이다. 화학 약품을 투입하면 작물보다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자생초가 성행하고, 작물은 뿌리 힘이 약하고 웃자란 탓에 미미한 외부 자극에도 견딜 수가 없어 한번 쓰러지면 일어서기 힘들다. 내가 먹지 않는 풀은 무조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적당히 자생초가 있어야 작물도 잘 자랄 수 있다. 69쪽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보면 두 손으로 받아들어야 할 만큼 컸던 꽃송이가 인위적인 교배로 크기도 작고 맛도 떨어지는 개량종으로 둔갑된다. 억지로 가꾸고 노력하지 않아도 불필요한 간섭만 하지 않으면 그들은 스스로 존속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이 할 일은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다. 185쪽 

한국적 유기농법이 과학농법보다는 그래도 자연을 덜 괴롭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덜 괴롭히는 것뿐이다. 또 다른 쪽으로 보면 유기물을 흙 속에 넣었을 때 발생되는 가스는 오존층을 파괴한다고도 볼 수 있다. 식물의 생장조건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간섭함으로써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그리 내세울 만한 농법이 못되는 것이다. 그나마 외국에서 수입한 유기물이 우리 땅에 얼마나 이로울까. 식물은 무기물을 먹고 자란다. 미생물의 분비물이나 시체가 바로 무기물이다. 그렇다면 산불이 난 곳에는 무기물이 풍부할 수 밖에 없다. 적어도 식물의 먹이만큼은 널려 있다. 그런데 산에 자생하는 나무나 식물은 초기 생육과정이 느려 처음에는 더디게 자라지만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인공조림으로는 그다지 빠른 효과를 기대하가 힘들다. 대신 우리 농산물은 초기 생육이 매우 빠른 식물이다. 게다가 먹이인 무기물이 많은 곳이라면 그 성장 속도는 더 빨라질 게 틀림없다. 농사 역시 화학농법으로 농사짓던 땅에서 태평농법으로 전환하려면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화학성분이 물씬 배인 흑을 되살리려면 지켜보고 기다릴 수 있는 흙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보여주고 설명해 주어도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여전히 농약을 손에 든 이들에게는 자연생태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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