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영화 <라쇼몽>은 살인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각기 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고백>도 이와 비슷한 구조를 보여준다. 단, <고백>은 살인사건으로부터 시간이 꽤 흘러가면서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이 첨가된다. 사건의 진실이라는 측면보다는 심리묘사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도 다르다. 그리고 이것은 뜻밖의 사건들과 새로운 사실들을 보여줌으로써 재미와 충격을 준다. 

<고백>은 한 중학교 여교사의 종강 연설로 시작된다. 이 연설은 수영장에서 숨진 자신의 딸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것이 단순사고가 아니라 살인이었음을 밝힌다. 게다가 그 살인범이 자신의 반 학생이었음을 고백하면서 파장을 일으킨다. 그러나 여교사는 이 살인범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수한다. 물론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 빠지도록 만든다. 성직자라는 챕터로 구분된 이 이야기는 이것으로도 완결된 한편의 단편소설이 된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이 챕터만으로도 소설은 충분해 보였다. 오히려 이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를 더한다면 그야말로 사족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살인범의 시선으로 바뀌면서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소설은 소년범에 대해선 이야기한다. (열세살과 열네살의 정신 연령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의도적인 살인을 저질러도 감옥에 가거나 법적 제재를 받지않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한 상황인지를 말한다. 살인을 계획했던 아이의 독백을 들어보자.  

살인이 범죄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악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물체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어떤 물체가 소멸해야 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닐까?.. 하고싶은 말이 뭐냐고? 문장으로 나타내는 도덕관념은 학교에 들어와 익히는 단순한 학습 효과일 뿐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잔인한 범죄자는 당연히 사형시켜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가능한 것이다. 거기에 모순이 있는데도. 207쪽 

사회적으로 흥미진진한 소설들은 그 등장인물들의 궤변에 심사숙고해보거나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이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살인은 범죄이기는 하지만 악은 아니라는 생각, 우리가 갖고 있는 도덕관념은 그저 학습효과일 뿐이라는 주장은 다소 오싹하다. 그래서 작가는 항상 부작용을 염려해 다른 인물을 통해 반박을 가한다. 여기에선 여교사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소설의 중심적인 시각도 왠지 그녀에게로 집중되어지는 느낌도 있다.  

소설은 한편으론 범죄자와 피해자 이외의 일반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돌린다. 여교사가 범죄를 저지른 학생들에게 복수를 꾀한 방식도 주변인들의 반응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이것은 의외의 피해자를 양산한다. 
   

역시 아무리 잔인한 범죄자라도 제재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결코 범죄자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재는 평범한 세상 사람들의 착각과 폭주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77쪽 

법적 제재는 범죄자에 대한 처벌과 함께 일반인들의 폭주를 막아주는 방편이라는 것이다. 소위 중세시대의 마녀사냥과 같은 일을 방지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소년범과 함께 소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니트족과 같은 사회 부적응자에도 있다. 

몇 년 전부터 은둔형 외톨이니 니트족이니 하는 단어를 종종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현상에 해당하는 청년들이 해마다 증가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항상 이런 현상에 해당하는 사람들, 학교에도 가지 않고, 일도 하지 않고, 집 안에서 빈둥거리는 청년들에게 이런 명칭을 부여한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집단에 속하거나 직함을 얻음으로써 안도하고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은둔형 외톨이니 니트족이니 하는 이름을 붙여버리면 그 시점부터 그것이 그 사람들의 소속이자 직함이 되고 맙니다. 사회속에서 은둔형 외톨이나 니트족이라는 자리를 확보한 사람들은 그것만으로 안심해서 일을 하거나 학교에 가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거예요. 127쪽 

어떤가. 이름은 때론 우리를 얽어매는 족쇄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이름 안에서 우리가 안주할 수 있는 포근한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니...  <고백>은 이름의 상반된 영향력처럼 하나의 사건이 사람들에게 주는 상반된 영향, 극과 극의 심리적 파장을 통해 재미와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사회적 문제를 살포시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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