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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공선옥 지음, 노익상·박여선 사진 / 월간말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책을 덮는 순간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이번 설, 고향에 내려가면 외할머니의 얼굴을 꼭 사진으로 찍어놔야겠다. 공선옥이 첫 여행지서 만난 행상, 지복덕 할머니가, 팔고 다니던 '뇌신'이라는 약을 시도 때도 없이 드시는 나의 외할머니. 어렸을 적 기억에 남아있는 담배연기 뒤로 보이던 주름살들. 그리고 그 옆에 놓여있던 댓병의 소주.
한 없이 친근하면서도 그 담배와 소주의 의미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어린 나이에, 여자는 저런 것 먹으면 안된다는 편견과의 갈등속에서 당황해하던 모습도 얼핏 떠오른다. 나이 서른이 넘은 지금의 나를 아직까지도 똑같은 모습으로 사랑해주시는 할머니. 난 그 사랑을 알지만 그 인생을 알지못한다. 전혀.
하지만 그 소주와 담배의 기억이 이젠 어렴풋이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도록 만든다. 공선옥의 책은 이렇게 내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결코 세상에 잘나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못나서도 아닌, 그저 내 곁에 평범하게, 자신의 갈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만든다.
마흔에 길을 떠난 탓이었을까? 그녀가 가는 길은 신작로가 아니었다. 꼬불꼬불 사람이 밟아가며 만들어낸 오솔길의 느낌, 그 길을 걷다보면 인생을 온 발바닥으로 받아들여 뇌 속까지 파고드는 느낌 그 자체다.
아마도 그래서 어머니가 떠오르지 않고 외할머니가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새와 꽃과 눈과 산만을 담아내고 있던 나의 카메라에 처음으로 사람의 얼굴을 담을련다. 외할머니의 깊은 주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