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 - 일상용품의 비밀스러운 삶
존 라이언.앨런 테인 더닝 지음, 고문영 옮김 / 그물코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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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생산 체제가 낳은 대량소비의 시대. 그리고 오직 끊임없는 생산만을 양산하는 발전지상주의.도대체 이것은 왜 인간에게 해가 되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이 독이 될 것인지를 알면서도 그렇게 허겁지겁 마셔대는 것일까? 지구에 나무가 사라지고 그곳에서 노래하는 새들이 없어졌을 때 정녕 인간은 이 지구위에서 살아남을수 없는 것일까? 그리고 생명의 다양성을 상실하고 단지 인간에게 이로운 가축들을 공산품마냥 대량생산하는 것이 살아가는 맛을 잃게 하는 요소일까? 아마 과학의 발전은 나무없이도 산소를 생산해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과학이 인간이 직면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낙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양성이 중요시되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골치아픈 다양성보다는 단순명료한 것을 좋아할지도 모르고 그저 욕구를 충족시키고 쾌감을 얻는 것에 더한 기쁨을 느낄지도 모른다.

녹색시민이 되기 위해선 먼저 이러한 전제들을 이겨낼 수 있는 이념이 필요할 듯 싶다. 책에서 아무리 우리의 일상용품들이 어떠한 노동착취와 자연착취로 이루어졌다고 강조할 지라도 만약 사람들이 그것으로 인한 편리성과 감각적 쾌락을 용인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소귀에 경읽기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식생활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패스트푸드를 정크푸드라고 말하면서도, 성인병의 주요 요인으로 들썩이면서도 결코 그 소비량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관심도 없을 뿐더러 그것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달콤한 혀의 자극만을 느낄 뿐이다. 그리고 그 자극만을 사랑할 뿐이다.

우리는 이런 잘못된 자극을 먼저 지적하고 진정한 혀의 맛을 찾는데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녹색시민 구보 씨 또한 우리의 일상용품이 주는 편리성에 대해 먼저 분석을 하고 이것이 왜 우리에게 덫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이것의 폐해만으로는 사람들의 행동을 이끌어낼 수는 없을 듯 싶다. 그래서 녹색시민은 아직도 요원한 일일 수도 있다. 우리는 편리함이라는 쾌락에 빠진 소돔과 고모라임을 먼저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구보씨는 사람들이 모두 녹색시민이 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마냥 사물을 설명하고 우리에게 행동을 요하지만 아직 우린 그런 마음의 준비마저 덜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녹색시민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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