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1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박연 옮김 / 세주문화 / 1996년 6월
평점 :
절판


1. 으례 그렇듯이 걸작이라는 것을 읽다보면 마지막에 책장을 덮는 순간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 아마도 그건 숨막히던 책속의 줄거리가 끝을 맺으면서 머릿속에는 한줄로 요약할 수 있는 주제라는 것이 등장함으로써 흥분을 식혀버리는 것같다. 한치의 빈틈도 없는 퍼즐처럼 완벽한 시나리오 속에서 인간과 괴물을 구별하는 것은 바로 감정의 유무에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만든다. 진리는 항상 단순한 법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세상은 그런 감정이 메말라간다는 측면에서 몬스터를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2. 감정이 없다는 것과 감정을 넘어선다는 것은 다르다. 중용의 덕목이나 노장의 사유속에 드러나는 성인, 도인은 세속인과 같은 감정의 굴곡으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몬스터처럼 감정 그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감정을 넘어서 있다는 것은 그 감정자체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감정이 없다는 것은 컨트롤할 그 무엇조차 없는 냉혈한임을 구분해야만 한다. 그러나 몬스터 또한 완전히 감정이 메말라 있었던 건 아니다. 복수란 감정의 극한에서 생기는 것이니까.

3. 쌍둥이에 대해선 옛날부터 오해가 많았다. 우리의 경우만 하더라도 쌍둥이는 재앙의 씨앗이라 여겨 그중 하나를 없애는 풍습이 암암리 존재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본영화 <쌍생아>를 보면 얼핏 이런 경향이 드러난다.)
만화는 바로 이 하나의 선택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죽어야만 하는 하나, 그것을 선택해야 하는 부모, 그리고 선택되어진 쌍둥이의 한쪽. 재앙은 바로 그것에서 시작된다. 선택의 상황에서 포기당하는 쪽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 선택자의 고민따위를 위로할 여지가 없다. 나는 죽음으로 몰리고 있으니까.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랑잃은 것들. 악마는 바로 사랑을 잃고 헤메는 모든 생명체의 마음속에 자라고 있는 것이다. (뉴스에서 얼핏 본 버림받은 애완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은 마치 요한처럼 자살을 할 모양이다. 요한과 같은 무한의 힘 대신에 나약함을 내비치지만 결과는 같다. 죽음. 모든 이가 평등하게 갖을 수 있는 유일한 것, 죽음. 그 죽음에의 초대는 바로 그들을 버린 사람들이 저지른 것이다. 악마를 키우는 사람들. 사랑이란 말은 세상에 그다지도 흔하지만 사랑 그 자체는 없다. 아무리 찾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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