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의 진짜 주인공은 배트맨일까, 조커일까. 이번 영화는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수작이다. 여기에 검사 하비 덴트까지 가세하면 도저히 흠잡을 데가 없다.

영화의 줄거리를 굳이 이야기하자면 너무 간단하다. 악당이 넘치는 고담시. 모두가 썩어빠져 있지만, 배트맨이 도시를 지켜내고 있다. 여기에 청렴결백한 검사 덴트는 떠오르는 영웅이다. 그러나 악당들을 규합해 새로운 악의 세력으로 등장하는 조커는 도시의 혼돈을 조장한다. 이 과정에서 사랑하는 애인을 잃어버린 덴트는 너무나 순백하기에 쉽게 검게 물들고 만다.

복수의 화신으로 변한 덴트와 덴트를 영웅으로 남게 하기 위해 진실을 숨기고 거짓으로 악당의 이미지까지도 받아들이는 배트맨, 세상이 악으로 물들 것이라 믿는 조커의 삼각구도가 영화를 이끌고 있다.  

영화의 재미는 화려한 액션에도 찾을 수 있고, 배트맨이 갖추고 있는 신무기의 성능이 주는 게임과 같은 아이템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선택의 순간순간들이 주는 갈등 구조에서도 맛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세 주인공의 캐릭터가 최대 흥미거리다.

명확한 선과 악의 구조라면 재미없다고 느껴질법 하다. 할리우드의 캐릭터는 이런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엔 영웅도 인간적 괴로움을 겪는다는 정도로 겨우 한걸음 내디뎠을 정도다.

배트맨의 캐릭터도 이정도 발걸음일지 모른다. 선을 대변하지만, 그 선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이겨낼 정도로 강하진 못한다. 그러나 상황은 그를 과감히 강하게 만들어간다. 비난마저도 스스로 감수할 정도로 진짜 강한 영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하비 덴트는 조커에 의해 악에 물들어가는 캐릭터로 나온다. 너무나 깨끗하기 때문에 오히려 강한 자극에 쉽게 검게 물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강한 정의감이 법을 뛰어넘은 복수심으로 불타오르게 만들어 살인마저도 서슴지 않게 된다.

덴트의 캐릭터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은 행운의 동전이다. 행운이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 믿는 그는 동전의 양면이 모두 앞면인 동전으로 스스로의 뜻을 타인에게 이해시킨다. 그러나 사고를 당하고 나서 한면이 그을러 버린 동전을 가지고서는 자신의 의지를 타인의 이해가 필요없이 강요하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린다. 사고로 이미 그의 마음도 다 타버렸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덴트가 가장 일반적인 사람들의 캐릭터일 수 있다.

반면 오히려 일반인들은 영화 속에서 희망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여객선 두 대의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상황. 인간의 이기적 마음을 시험하는 이 장면에서 차마 믿기지 않은 선택이 이뤄진다. 이 부분은 너무 영화같은 설정이어서 오히려 설득력을 잃는다. 사람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도이겠지만, 왠지 영화의 우울한 측면이 망가져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워낙 강렬한 조커 덕분에 이 희망마저도 왠지 불안해보인다는 점에서 영화가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조커는 그야말로 최고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영웅이란 악당을 필요로 한다. 배트맨이 있다면 당연히 조커도 있어야 한다. 배트맨의 정의감은 절대 조커를 죽일 수 없다. 조커 또한 배트맨이 있어 행복할 정도다. 그러기에 조커의 악은 절대 힘을 잃지 않는다. 그의 악은 악을 통해 개인적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닌 순수한 악의이기 때문에 패배란 없다. 그에게는 혼돈만이 유일한 낙이다. 인생의 재미를 그곳에서 찾기에 그는 혼돈을 바로잡고 질서 속에 가두려는 사람의 힘이 강하면 강할 수록 살아갈 맛이 난다. 그 적수가 자신을 절대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정돈된 것을 흐트러뜨리고 싶은 욕망의 화신 조커. 조커를 만든 것은 결국 배트맨이었다.

수레가 양바퀴로 가듯 배트맨과 조커는 세상의 양 바퀴다. 영화는 암울한 듯 하면서도 희망의 빛을 놓지 않고 절묘하게 세상의 수레를 이끌고 있다.

이 막강한 캐릭터 조커를 연기한 히스 레저가 죽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의 명복을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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