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한 세계를 탐구한다 - 물질과 생명을 잇는 물리학의 세계
다치바나 다카시.요네자와 후미코 지음, 배우철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일본 고양이 빌딩의 주인인 다치바나 다카시와 일본의 대표적 물리학자인 요네자와 후미코의 대담을 글로 엮은 책이다.

물리학에서 물질을 거쳐 생명현상으로 이어지는 그 연결고리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자 한다면 그 조그마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네자와는 아몰퍼스로 유명한 학자로, 아몰퍼스는 물질 내의 원자의 배열방식에 주기성이 없는 고체를 총칭한다. 나처럼 인문계열에서 공부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실은 이 말조차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 속의 용어들이 조금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더라도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특히 생명이 지구상에 탄생한 것은 요동 때문이었다고들 하지요. 전체로서는 자유에너지가 최소가 되는 방향을 향하고 있지만, 국소적으로는 요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199쪽) 

라는 대목은 살아가는 모든 것들의 양면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또한 세상을 이해하는 시각을 넓혀준다. 현재의 쇠고기 파동과 촛불시위,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바로 우리 사회가 살아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실감케하기도 한다. 자유에너지를 최소화하려는 공권력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촛불시위라는 요동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전인수격 해석을 해본다.

반면 이 격렬한 움직임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 또한 랜덤한 세계 속에서의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물성물리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에너지 최저 혹은 부분적인 에너지 극소의 상태가 가장 큰 의미를 갖는다고 이해해도 됩니까... 다만 그 주장이 모든 경우에 옳다고 할 수 있을지, 생물에 대해서도 통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대답할 수 없을듯해요. 그러나 우리들은 지금까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해왔고 아마 그런 생각은 당분간 하나의 지침으로서 유지될 테지요.(135쪽)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것. 그것마저도 우린 세상의 흐름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요동이야말로 참 생명의 탄생을 알린다. 그러나 섣불리 모든 것을 단정지으려 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의 물리는 흑백을 확실히 가리는 것이었어요. 모두들 그것이 과학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흑도 백도 아니라는 답이 나오면 그걸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개념적으로 적잖이 당황하는 면이 있지 않나 해요. ...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은 결코 전체로서 최적화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 예를 들어 어떤 부분을 최적화하면 다른 부분은 최적화되지 않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최적화된 상태에 있을 턱이 없지요. 그렇지만 전체로서 가장 나은 상황이라고 한다면, 그 정도록 다행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할까요. 모든 부분의 최적이고 나아가 전체로서도 최적인 답이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런 답은 존재하지 않는게 아닐까 하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아까 단백질 이야기에서도, 전체로서 최적인 것이 아니고 그때그때 발생 당시의 조건 가운데 최적일지도 모르는 것을 찾는 거지요.(132~134쪽)

2008년 6월이 다가는 이날, 대한민국의 최적인 상태는 무엇일까. 그들만의 최적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은 촛불을 킨 것은 아닐까.

사족: 세상도 사물도 한가지 목적 또는 방향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칼이 수술도구나 요리도구로도 쓰이지만 강도의 도구로도 쓰이듯. 그 양면성의 길에서 최적의 길을 찾는 것이 바로 생명으로서의 사명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 사명에의 길이 항상 옳은 길은 아니라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언제나 동전은 양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운명은 우리에게 그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동전의 양면을 잘 알고 선택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