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시 베이비
가네하라 히토미 지음, 정유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19세에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가네하라 히토미라는 작가의 두번째 소설이란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이크!"하고 놀라게 된다. 수간에 자해, 유아성애가 등장하고 소설의 절반은 성의 묘사에 절반은 주인공의 고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과격한 소재와 명확하지 않은 주제로 인해 일본에서도 찬반논쟁이 격하게 일어났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책을 끝까지 놓지 않은 이유는 주인공 아야의 사랑에 대한 집착때문이다. 그리고 그 집착이란 소통의 불가능과 맞물려 있기에 아야의 외침이 송곳이 되어 독자의 가슴을 찌르게 된다. 또한 주인공 아야와 함께 그가 사랑하는 무라노의 캐릭터가 마음을 뒤흔든다.

소설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주인공 아야는 대학 동창인 호쿠토와 동거와는 약간 다른 룸세어라는 것을 한다. 말그대로 그냥 집을 나눠쓰는 것이다. 어느날 호쿠토의 소개로 무라노를 만나게 되고 그녀는 무라노에게 사랑을 느낀다. 또 호쿠토는 친척의 아이라며 갓난아기를 집으로 데려오는데 호쿠토는 이 아이를 성적 대상으로 삼는다. 소설 속에서 가장 큰 충격적인 부분이다.(도덕적으로 쉽게 용납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아이에 집착하는 호쿠노는 직장도 나가지 않아 잘리게 되고, 아야는 무라노에 집착으로 자살을 꿈꾼다.

 아야와 무라노, 호쿠토는 모두 소통에 서툴다. 무라노에게 "사랑한다"고 아무리 외쳐도 벽에다 소리치는 것과 똑같다. 무라노는 모든 것에 무심한듯 하면서도 이상하게 직장 동료인 호쿠토에게는 신경이 쓰인다. 호쿠토는 세상과 문을 걸어잠그고 오직 갓난아이의 성기에 매달린다.

타인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을 때, 사람은 자기가 죽든가 그를 죽이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생활이라는 걸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관계를 자주 본다. 난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도 무섭다. (중략) 나는 누구와 마음을 열고 사귀어본 일이 없다. 거부해왔는지도 모른다.(23쪽)

아야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중병 중의 하나다. 아니다. 이것을 중병이라고 단순하게 진단해버릴 수는 없다. 이것이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특징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연스레 받아들인다면 그것이 병일 수는 없다. 마음을 연다는 것,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맞대고 서로 마음을 여는 법을 현재 세상은 결코 가르쳐주지 않는다.

나쓰코도 나도 적당히란 말을 아주 좋아했다. 뭐, 적당히. 그렇게 말하면 대개의 일들은 넘어갈 수 있다고 본다. 아니, 실제로 넘어갈 수 있다. 요즘 세상에 적당히가 아닌 것들은 그리 많지 않다.(108쪽)

적당히란 곧 마음의 문을 활짝 열지 않은 그 적당함이라고 할 수 있다.

난, 이런 때조차 나 자신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얼마나 괴로울까 따위를 생각할 수 없다. 아니, 혹시나 생각한다 하더라도,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이고, 혹시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절대 울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114쪽)

지독한 자의식 과잉이다. 그러나 거울을 바라보는 현대인은 그런 자의식 속에 빠져있기 십상이다. 이런 자의식 과잉은 소설 곳곳에서 드러난다. 원래부터 비참한 인간이었는지도 모르지만(122쪽) 나약하고 바보스럽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다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우린 울고싶을만큼 약하다. 약한 것을 상처입힐 만큼 약하다. 그래봐야 우린 분명 자기를 위해서밖에 울지 않을테고, 계속해서 상처입히겠지만.(129쪽) 나는 현재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이상의 것을 가진다는 건 거기에 부수되는 책임까지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어깨가 너무 무겁다. 책임감이라는 말만큼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은 없다. 그런 것에 속박될 정도라면 차라리 죽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아니, 차라리 죽고 싶다. 차라리 죽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좋으니까.(133쪽) 원래 사람에 대해 고집하는 일 자체가 없었다. 인간관계 따위, 맺고는 바로 흘려보내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148쪽) 왜 그는 이렇게 미묘한 거리에 나를 붙들어매는 걸까? 그 자신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것. 나는 그의 그런 기질에 녹아들고 싶은 것이다.나는 그에게 죽음을 선사받고 싶은 것이다. (163쪽) 사실은 마음을 열고 싶으면서도 거부당할 것이 두려워 죽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쪽으로 도망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그에게 자신을 전부 드러내고, 모조리 까 보이고, 그러고도 사랑해주길 바라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은 언제까지고 계속 거부당하길 바라는지도 모른다.(169쪽) 나처럼 그의 반응을 보고 상처입는 일도 없을거고, 그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신경이 쓰여 잠 못 이룰 일도 없을 거고, 그의 전화를 기다리다 울음을 터뜨리는 일도 없을 거다. (172쪽)

세상이 가르쳐주는 교훈엔 홀로서기가 있다. 성공의 지름길은 인맥관리에 있다고도 한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 아마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어려운 문제일듯싶다. 그리고 자의식이 과잉 상태인 현대인에게 아야처럼 누군가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서기란 죽음에 가까이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아야는 곧 내 속에 감추어진 두려움의 화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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