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비밀

 

1948년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이탈리아 영화 '자전거 도둑'에서 나오는 자전거는 생계수단이다. 자전거를 도둑맞은 주인공 안토니오가 자전거를 훔칠지 말지 고민하는 모습 속에서 삶의 비애를 느끼게 만들었던 이 영화는 리얼리즘의 힘을 보여준다.

이 자전거가 할리우드로 넘어가면 상상의 세계로 뻗어나간다. 1982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에서는 자전거가 하늘을 난다. 정부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운반수단으로서 작동한다.

동양 3국으로 넘어온 자전거는 어떨까.

최근 주걸륜, 계륜미 주연의 '말할 수 없는 비밀'(2007년)이라는 홍콩영화는 환타지와 멜로를 넘나든다. 주요 소재는 피아노이지만, 이 두 남녀의 사랑을 쌓아주는 것은 자전거다. 자신의 자전거 뒷자리에 누군가를 태운다는 행위 자체는 그냥 이동 수단의 의미를 넘어서 사랑이 깃들어감을 표현한다.

1995년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라는 일본영화 속에서도 자전거가 등장한다. 여기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것이 피아노가 아니라 동명이인이 주고받는 편지다. 여자 주인공이 회상하는 장면에서 자전거가 등장하는데 이때는 장난의 도구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장난은 그들이 서로 좋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1996년 홍콩영화 첨밀밀에서도 자전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2002년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에서도 자전거는 등장한 듯싶다.

지금이야 자전거가 MTB라든가 사이클이라는 레포츠 또는 스포츠의 의미도 많이 갖지만 수십년 전엔 하나의 로망이었다. 자전거를 갖는다는 것은 낭만을 싣고 달리는 것이었다. 그런 감성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것은 아니었는가 보다. 문득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보면서 자전거가 사랑을 싣고 다녔음을 깨닫는다. 내 청춘의 시간도 자전거처럼 천천히 흘렀으면 좋으련만 어느덧 고속열차처럼 지나가 버리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