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네 모녀 피살사건의 범행동기가 돈에 있다는 경찰의 발표를 들으며 안타까움이 더했다. 돈이 사람잡는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돈에 얽힌 참담한 사건이 하루이틀도 아니고, 한두번도 아니기에 새삼 놀랄 것도 없겠지만, 그래서 또 돈인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쨋든 그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이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번 사건의 경우 더욱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이 있는듯하다.  

네 모녀가 사라지고 나서 보름이 지나고 나서야 실종신고가 들어왔다. 여행간다는 말 한마디가 이들의 실종을 단순한 자리비움으로 만들었다. 더군다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이들이 오고 간 행적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아파트 생활이란 것이 철저한 독립을 전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층간 소음을 허락할 수 없는 곳, 발꿈치를 들고 담장 넘어 옆집을 살짝 들여다보는 건 절대 불가능한 구조. 그래도 아파트는 더 낫다. 영화 추격자로 인해 다시 떠오른 유영철의 연쇄살인 사건에서는 그의 거주지가 오피스텔이었고, 그 곳에서 시체를 절단하는 일이 일어났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원룸이나 오피스텔의 삶은 이웃이 누구인지조차 전혀 알지 못하는 삶이다. 이번 마포 네 모녀 또한 한달이든 두달이든 집을 비우더라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이 현재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이다.

그렇지만 이런 철저한 소외 또는 스스로의 격리가 꼭 불행한 일만 초래하는 것일까. 근대로 들어오면서 자아에 대한 확고한 생각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타인과 구별되는 나라는 생각은 나만의 것을 요구하게 됐고, 그 요구는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방해받지 않는 공간. 그것은 원룸과 오피스텔을 통해 이루어진다. 아파트도 가능하다.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된 도시인은 그 안에서 (가짜)행복을 느낀다. 그 공간에서의 삶이란 오직 소비로서만 유지되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방송과 라디오를 통한 전파 속 목소리와 얼굴이 살며시 어루만져준다. 이것 또한 진짜 고독으로부터의 탈출은 아니다.

나에 대한 집착, 그리고 그 집착이 빚어낸 거주지의 변화, 그리고 변화된 삶의 양식. 내 머리 위에 누군가 살아가고 있고, 내 발 밑에 누군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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