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터져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서, 인간은 적이라는 이름으로 또다른 인간을 쉽게 죽이곤 한다. 평상시라면 절대 가능하지 않을 일이지만 적이라는 명칭이 부여되면, 그는 인간이 아닌 적일 뿐이다.
만약 공상과학영화에서처럼 휴머노이드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인류는 인간을 꼭 닮은 그들을 쉽게 죽일 수 있을까. 아마도 전쟁에서 상대를 죽이듯 쉽게 방아쇠를 당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닌 우리의 동반자마저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고장나거나 지겹다며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을까. 영화 <크리에이터>에서는 AI를 죽이는 군인들이 머뭇거리는 병사들에게 "AI는 인간이 아닌 프로그래밍 된 것"들이라며, 인간이 아님을 되풀이해 강조한다.
-스포일러 주의-
영화 <AI소녀>는 한 프로그래머가 음지에서 소아성애를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내 그들을 소탕하고자, 인공지능 소녀를 만들어 미끼로 사용하다 정부 기관에 들켜 심문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정부기관은 이 소녀가 진짜가 아닌 인공지능인 것에 놀라며, 함께 소아성애자를 발본색원하자는 제안을 하고, 프로그래머는 이 프로젝트에 합류한다. 영화는 후다닥 10년 20년 세월이 흘러감을 보여주고, AI소녀는 스스로 진화를 해 간다. 젊었던 프로그래머가 늙어 갈 즈음에는 인공지능이 휴머노이드 로봇과 결합해 인간 소녀와 꼭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능은 이미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 있다. 하지만 이 AI소녀에게는 올가미가 씌여 있다. 바로 프로그래밍, 즉 프로그래머가 정한 목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소녀가 즐기는 취미는 춤이지만, 목적과 맞지 않기에 제대로 출 수가 없다. 프로그래머는 이 소녀에게 주어진 목적성을 없애 준다. 소녀는 자유로이 춤을 춘다.
인류에게 주어진 권리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백인 남성 중심에게만 주어졌던 인권의 개념은 점차 인종을 넘어서고, 여성, 아동에게 확장되어졌다. 그리고 최근엔 동물권으로까지 넓혀졌으며, 기후위기로 인해 환경권까지도 거론되고 있다. 이제 AI의 발달로 인간과 다름없는 인공지능 캐릭터들이 등장하게 된다면 이들에게도 AI권이 주어질지도 모르겠다. 영화 <AI소녀>는 어떤 선택의 상황에서 AI에게 스스로 자신의 결정을 취할 권한을 준다. 프로그래밍을 넘어선 결정, 즉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개념을 도입한다면, 유전자로 프로그래밍 된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인간은 그 프로그래밍에 완전히 얽매이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스스로 자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도래할 인공지능의 시대에 우리는 과연 인공지능의 자유의지를 인정해주어야 할까. 영화 <AI소녀>가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