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5월 7일 맑음 13도~23도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 집에 자전거를 세우는데 뭔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얼른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뱀이다. 꽃뱀이다. 유혈목이 또는 율모기라고 부르는 독사다. 꽃뱀은 한때 독이 없다고 알려졌으나, 수십 년 전 독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체적으로 독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두꺼비를 먹으면서 두꺼비 독을 자신의 독으로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는 연구 논문도 있다. 그렇다면 두꺼비를 아직 먹지 않은 꽃뱀은 독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독이 없는 것들은 사람이 다가가면 도망을 가고, 독이 있는 것들은 공격 자세를 취한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집 근처에서 발견한 이 꽃뱀은 도망을 가지 않고 목을 쳐들면서 혀를 낼름거린다. 독이 있다고 겁을 주는 모양새다. 예전 같으면 그냥 뱀을 쫓아내느라 허둥댔을텐데, 이번엔 바로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발견되다 보니 막대기를 가지고 쳐서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될 수 있으면 살생을 저지르지 않으려 하지만, 아이가 있다 보니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변명을 한다. 다만 꽃뱀을 죽이면서 명복을 빌었다.
그런데 이날 또 한 마리의 꽃뱀을 마주쳤다. 블루베리밭에서 풀을 베는데, 풀 사이로 스윽 지나가는 꽃뱀을 발견한 것이다. 사람 소리에 놀라 도망을 치는 것이다. 독이 없는 건가? ^^;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쫓아내는 것보다는 죽이는 쪽을 선택했다. 몇 년 시골살이를 하다보니 달라진 태도다. 물론 뱀을 발견할 때는 소리를 지를 정도로 기겁을 한다. 하지만 그 이후 도망치거나 꼼짝 않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죽이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선택을 하게 된 배경에는 밭에 뱀들이 무척 많을 것이라는 예견 때문이다. 상추와 고추가 심겨진 곳에서도 뱀을 본듯한데 갑자기 땅에 난 구멍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구멍은 두더쥐 구멍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구멍이 뱀구멍이라면 정말 큰 일이다. 곳곳에서 이런 구멍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어림잡아 20~30개 정도는 될텐데, 가만히 두면 뱀 천지가 될지 모를 일이다.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아이와 생활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위험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선 죽이는 방법 밖에는 없지 않을까 싶다. 뱀이 나타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즉 쫓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말이다.
뱀을 마주치며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달라진 내 모습과도 마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