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녘 백합의 뼈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은 음모의 냄새가 풀풀 풍긴다. 감춰진 것들을 들춰내기 위한 가족들간의 심리전과 어둠의 집을 둘러싼 집안 사람들과 동네 사람들간의 관계가 소설을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게다가 뜻하지 않은 반전. 그리고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시 찾아오는 반전. 반전의 반전은 기대하지 않은 하지만 그랬어야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소설의 재미가 한층 업그레이드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소설이 재미있는 것은 왠지모를 음습함이다. 그 음습함은 악와 선의 싸움에서 비롯된다.  

악은 모든 것의 근원이다. 선 따위, 어차피 악의 윗물 중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약을 돋보이게 하는, 말하자면 손수건 테두리의 자수 같은 것일 뿐이다. 그렇지 않고는 왜 늘 선이 그렇게 약하고 무르고 덧없는 것인지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거대한 악의 침대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악의 침대는 늘 새로운 피가 필요하고, 그 피를 타고난 자는 어느 시대에나 반드시 존재한다. 악의 존속은 인간의 필연이며, 자연의 섭리에 따라 강하게 운명지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와타루는 다르다. 와타루는 윗물의 행복한 한 방울. 그는 밝은 빛 속을 걸어갈 수 있다. (157쪽)

소설 전체의 분위기는 바로 이 부분때문에 음습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왜 악의 근원인 주인공들이 선을 지키려 애쓰는지 의문이다. 바로 그 부분에서 소설이 진행되는 힘을 얻는다.

그렇다. 선 따위는 악의 윗물의 한 방울. 악의 매력에 비하면 이른 아침의 덧없는 안개 같은 것. (293쪽)

하지만 그 안개는 또는 한 방울은 절대 악의 물에 섞여들지 않는다. 안타까움은 그곳에서 발생한다. 악마끼리 손을 잡은 그림을 본 기억이 없다. 물론 천사끼리도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끼리끼리 통하는 법. 악마도 때론 천사를 자신의 친구로 삼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그 마음은 악인가, 선인가.

소설이 생명을 얻는 부분이 바로 이런 갈등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소설의 맥락과 전혀 상관없을지라도 이런 고뇌가 소설 읽는 재미를 더했다.

이렇게 자각하지 못하는 악은 무엇인가. 그녀의 바탕에는 내가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깊고 넓은 악의 늪이 펼쳐져 있는게 아닐까. 그런 늪은 나 같은 사람도 삼켜버리는 게 아닐까.(300쪽)

이 부분이 소설을 소름끼치도록 만드는 부분이다. 악마는 악을 의식하고 악을 저지르지만, 악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저지른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흔히들 사이코패스라고 부르는 그런 도덕적 의식 자체가 사라진 것과는 사뭇 다르다. 악의 무의식이 의식을 뚫고 나왔다가 이내 의식이 자리를 잡으면 사라지는 악. 그러나 영원히 자리 잡고 있는 악의 무의식. 세상이 무서운 것은 바로 이 악의 무의식 때문이지 않을까.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악마보다도 무서운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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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7-06-2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보관함에 넣습니다. 삼월의 붉은 구렁이 인가 뭔가를 위시하여...
요즘 이 작가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아직 한편도 읽을게 없지만. 몹시도 궁금터라는.. "악"을 잘 묘사하는 사람인가 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