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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소가 온다 - 광고는 죽었다
세스 고딘 지음, 이주형 외 옮김 / 재인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무슨 뜻일까 참 궁금했다. 마케팅 서적이라는 건 알겠는데, 보랏빛 소는 뭘까. 생각보다 매우 간단하고 단순한 개념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소들은 생김새나 모양이 다 비슷하다. 차를 타고 가면서 드넓은 초원을 누비는 소들을 보면 처음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평온함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루해진다. 그런데 갑자기 보라색 소가 무리 중에 끼어있다고 생각해보자. 아마도 슬슬 감기던 눈이 휭둥그레 커지면서 놀랄 것이다.
광고는 죽었다. 광고에 관해서는 나올 만한 아이디어는 다 나왔고, 기존의 것을 조금씩 변형시켜 응용하거나 아니면 기존의 방식대로 밀고 나가는 방법 밖에는 없다. 시내 한 복판의 건물 옥상에 광고 전광판을 세우고, 신문이나 잡지에 광고를 끼워넣고, 거액을 줘가면서 티비 인기 프로그램 앞뒤로 30초짜리 광고를 집어넣는다. 심지어는 지하철 외관을 아예 한 가지 광고로 도배하는 경우도 있고, 지하철 역사 에스컬레이터 주변이나 계단을 광고로 도배하기도 한다. 하지만 돈만 들고 효과가 없었는지 몇번 시도하더니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이 책에서 예로 든 '보랏빛 소'들은 저자가 그렇게 지적하니 매우 신선해보이지만 알기 전에는 '당연한거 아냐?' 하고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페인트 회사가 매출을 올리기 위해 페인트를 쉽게 부을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 교체했고, 마우스를 만드는 로지텍은 더 좋은 칩을 개발하려고 하기보다는 마우스 하나에 기능을 첨가하거나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적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신들을 특화시켰다. 크리스피 도넛은 새로운 지점을 설립하고나면 이곳에 지점이 세워졌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한동안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도넛을 선물한다. 공짜 도넛을 먹기 위해서라도 줄을 선다.
매우 간단하고 단순한 아이디어 하나로 이들은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해당 분야의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는 성공한 기업들의 전략을 보면서 당연히 그건 통할 만한 것라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지만, 그 아이디어가 나오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저자는 말한다. "진정한 퍼플 카우의 정의는 딱 들어맞는 방식으로 리마커블한 어떤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백미러에서 시선을 돌리면, 퍼플 카우 만들기가 갑자기 훨씬 더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보랏빛 소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건 저자가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라 보랏빛 소의 존재를 안다면 우리가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 하지만 멈춰 서서 생각해보면 사실 놀라운 아이디어들로 가득하다. 시장에서 성공하는 방법은, 선두업체의 제품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앞서 작은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광고를 하고, 판로가 확충되고, 매출이 증가하니 이윤이 창출되고, 다시 또 광고를 하고, 판로가 확충되고, 매출이 증가하고, 이윤이 창출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잘해야 현상유지 정도 할 수 있을 뿐이다.
저자는 스니저를 잡으라 말한다. 스니저는 신제품을 먼저 사용하고, 입소문을 내는 이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무엇보다 신제품에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자신이 사용한 제품의 장단점을 많은 사람들에게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 전자제품 쪽에서 특히나 두드러지는 데, 사실 생각해보면 지금 많은 업체들이 이러한 방법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빠른 광고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 책이 2004년에 나왔으니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테고, 꼭 이 책을 통해서 '스니저 잡기'가 시도됐다고 보기도 힘들다.
출판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나오면 어차피 사보는 사람만 사본다는 어려운 인문/사회 전문서들을 제외하고는, 좀 더 쉽게 쓰여진 대중적인 책은 서평단을 꾸려서 책을 보내주고 제한된 시일 내에 책에 대한 감상평을 올리도록 하는 방식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어차피 살 계획이 있던 책이라면 기왕에 서평단 책을 받아 읽고 리뷰를 올리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어서 별로 읽고 싶지 않았는데 공짜책이라고 그냥 신청했다가 읽지도 않고 리뷰도 안올리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또, 출판사의 의도와는 달리 호평이 아닌 악평이 올라오는 경우도 가끔 있어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치만 대개는 독자들이 본인이 읽고 싶었던, 관심이 많았던 책을 신청해서 읽으니 자연스레 호평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책에 자신이 없다면 출판사는 해당 책으로 아예 서평단을 꾸리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고, 이미 그 전에 자신 없는 책은 아예 출판을 안하는 것이 경영에 도움이 되니 그네들 딴에는 책을 내놓지 않을 이유가 없게 된다.
출판사건 냉장고 회사건 일단 자신들이 만든 상품에 대해 입소문을 내 줄 사람들이 필요하고, 그들을 찾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티비 광고를 내보내거나 신문, 잡지에 광고를 싣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저자의 마케팅 기법은 얼리 어댑터와 스니저 집단을 잡아 이들에게서 이야기 거리가 될 만한 요소를 개발하고 흘리며, 그들이 손쉽게 전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퍼지고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실 이것도 지금은 너무 널리 뻔하게 사용되는 기법이라 보랏빛 소로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팔기 위해서 이제는 식상한 이런 보랏빛 소를 파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의 홈페이지에 또다른 보랏빛 소를 준비해뒀다. 참 탁월한 기법으로 자기 책을 광고하는데 이러니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지 않을 수 없겠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하면 많이 팔아먹을까, 를 고민하는 저자와 그의 메세지가 슬프기도 하다. 오히려 그가 홈페이지에 제시한 팔아먹기 기법보다는 진실된 콘텐츠만으로 접근하는 게 보랏빛 소에 더 가깝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보랏빛 소는 특별한 마케팅 기법보다 알찬 콘텐츠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