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 Issue & Thinking 01
토머스 슈뢰터 지음, 유동환 옮김 / 푸른나무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이달의 읽을만한 책'으로 선정된 바 있는 <세계화?>. 세계화에 대해 전혀 모르는 청소년과 일반인들이 접하기 딱 좋은 눈높이의 책이다. 독일연방의회의 개발정책행동그룹 산하 경제협력위원회 등에서 정책 개발에 참여한 바 있는 다름슈타트 전문대학 초빙교수 토머스 슈뢰터가 쓰고, 한국노동운동연구소, 통일시대 민주주의 국민회의 등을 거치며 활동을 한 유동환이 번역했다.

  이 책은 세계화의 처음으로 돌아가 출발한다. 근대 초기 상업의 중심지에서 후추를 실은 배가 재고를 빨리 처분하기 위해 어딘가로 가고 있다. 향신료와 비단, 설탕, 담배 등을 실은 배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정보만으로도 상인들은 엄청난 이윤을 남길 수도 쫄딱 망할 수도 있었다. 원거리 무역이 발달하자 해적과 노상강도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이 생겨났고, 이것이 금융업의 시작이었다. 상업의 발달과 화폐의 활발한 이동은 곡물량이 15000-1600년 사이에 네 배나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빈부의 격차는 훨씬 커졌다. 

  한편에선 정의로운 전쟁이 시작됐다. 그들은 원주민에게 가톨릭으로의 개종과 복종을 요구했다. 반항하면 정의로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며. 수십만의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이 죽어갔고, 정복자들의 병균으로 더 많은 이들이 희생됐다. 노예제는 식민지의 자원 착취로도 모자라 사람까지 착취하는 강제 이민이었으며, 그들이 끌려간 나라에서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반면 그들이 떠나온 나라의 토착 경제는 배고픔과 빈곤이 그들을 대신했다.

  이 책이 제시하는 장을 순차적으로 따라오다보면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화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도달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동시에 아주 오래 전 세계화의 출발점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그 모습만 달리해 오늘날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엔 언급한 근대 초기의 모습들은 모두 지금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식량은 증가했지만 지구 한 쪽에선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고, 지구 한 쪽에선 매 끼니마다 음식을 버리고 있다. 버리는 쪽의 음식을 굶어죽는 쪽에 전달하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내가 요구하는 것을 위해 정의로운 전쟁도 불사한다. 언제나 평화를 추구하고, 평화를 원한다고 말하는 미국이 최근 수십년간 가장 많은 전쟁을 벌여온 국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중국, 한국, 과테말라, 인도네시아, 쿠바, 콩코, 페루,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그레나다, 리비아,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파나마, 이라크, 보스니아, 수단, 유고슬라비아, 아프가니스탄까지 미국이 전쟁을 벌인 국가는 놀라울 정도로 많다. 그 무엇을 위해, 자유와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인권을 위해 불가피한 전쟁을 했다고 말한다면 세계가 웃을 것이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세계를 재편성한 미국의 다음 목표가 어디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자원을 최대한 안 가지고 있는 국가일수록 안전하다.

  정의로운 전쟁은 꼭 무기를 들고 벌어지진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브로커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타국으로 가서 굳을 일을 해가며 본국으로 돈을 부칠 수밖에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근대 초기의 원주민 노예의 다른 얼굴이다. 원주민이 강제로, 이들이 자발적으로 대륙간 이동을 했다고 해서, 강제이주가 잘못이고, 자발적 이주가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긴 어렵다. 이들이 타국으로밖에 올 수 없었던 원인을 제공한, 구조를 만든 이들이 잘못이다.  자원을 착취하기 위해 정의와 평화를 외치며 타국을 침공하는 이들과 자발적으로 건너온 이주 노동자들을 부릴대로 부려먹고 내팽개치는 이들의 모습은 다르지 않다.

 과거에 비해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은 없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부드러운 모습으로 더 악랄하게 침투하고 있다. 자본은 한곳으로 흡입되고, 가난한 국가는 착취 당하고, 사람들은 버려진다. 한편으로 세계화는 교류가 없던 사람들 간의 문화적, 인적 교류를 활성화시키고, 사물과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지구 전체가 하나의 마을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 해주기도 했지만, 그건 세계화의 아주 작은 단면일 뿐이다. 문화가 교류된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결국 문화는 다른 문화를 침식하고 들어갔고, 뒤이어 자본이 들어왔다. 다양한 문화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통합되는 흐름이 세계화의 본질적인 모습이라 할 것이다.

  세계화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 아니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살 길을 찾아야되지 않겠느냐고. 세계화를 거부하고 막는다면 결국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렇게 죽는 것보다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부당하지만 조금이나마 착취하며 우리가 취할 것은 취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알면서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을까.

  큰 자본이 작은 자본을 잡아먹고, 큰 국가가 작은 국가를 잡어먹는 건 어쩌면 자연스럽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이라 하더라도. 그러나, 우리가 적어도 '다함께' 살고자 한다면 그것을 불가피한 선택이라 말해선 안된다. 세계화의 흐름을 막을 수 있는, 세계화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논의하고 개선시켜야 한다. 국가와 각 지역이 담을 쌓고 자급자족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이다. 그러면 담을 쌓지 않고 문을 열고 살면서 한쪽이 다른 한쪽을 착취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윤 극대화라는 명제와 목표를 내세우는 세계화에 대한 반세계화 저항 운동은 단지 '힘 있는 자들'에게 항의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다자간 투자 협정에 대한 반대 운동처럼, 일단 작은 성공을 거두면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게 되고 그럼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반대 운동에 참여한다. 결국 반세계화 운동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차이를 제대로 평가해서 그것을 하나의 비전으로 발전시키는 능력에 그 성패가 달려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선 세계화의 대안으로 몇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유엔의 권한을 강화하고 개혁하는 것이다. 유엔은 국제통화기금 IMF와는 달리 1국가 1표 라는 평등권이 주어지는 대표적인 국제기구 때문이라 한다. 둘째, 코스모폴리탄 민주주의를 제안하는데, 여기서 요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국제기구인 유엔의 민주화(제 3세계 발언권 강화 등), 강제적 사법권을 갖는 국제재판소, 국제인권법원의 설립, 유럽공동체와 같은 지역통합정부, 국제군대 창설, 글로벌 의회 수립, 권리와 의무에 관한 신헌장 제정, 글로벌 법 체계 정립 등이다. 셋째, IMF의 지배구조 개혁이다. 현재 IMF, 세계은행, WTO가 강대국의 이익을 대변해 힘을 행사하고 있으므로, 이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이런 말을 한다. "유럽의 소는 하루 2달러의 정부 보조금을 받는다. 그리고 후발 산업국 주민의 절반 이상은 그보다 적은 소득으로 살고 있다."

  넷째, 국제청산은행의 설립이다. 케인즈가 주장한 바 있는 전 지구적 중앙은행인 국제청산은행을 설립해 통화를 발행하지는 않지만 달러가 아닌 자국의 통화로 무역이나 금융 거래를 할 수 있게 하는 기구이다. 이 기구는 외국에 빚을 갚을 때 꼭 수출을 해서 외국환을 확보할 필요가 없이, 자국환으로 해결할 수 있다. 다섯째, 토빈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197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이 제안한 개념으로 "토빈세가 단기적으로 투자했다가 회수해 가는 자본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세금을 부과하여 상품 무역이나 장기간의 자본 투자를 훼손하지 않고, 환율 안정으로 오히려 세계 무역을 촉진하며, 금융 위기 발생 가능성을 줄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강제적인 제도의 개선을 통해 세계화의 악랄한 면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세계화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 말하겠는가. 노력조차 하지 않고 지레 겁먹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면,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논하면 된다. 대안은 찾으면 많다.

p.s. 이 책은 주의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역사적 실례를 하나하나 객관적으로 살펴보면서 오늘날의 세계화에 도달한다. 그리고 대안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큰 틀에서는 주장하고자 하는 방향이 설정되어 주관적이지만, 각각의 꼭지는 역사의 현장에 멈추어 살펴본다는 점에서 객관적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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