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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 ㅣ 라면 교양 2
하승우 지음 / 뜨인돌 / 2008년 8월
평점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 복무 제도가 작년까지 긍정적으로 논의되다가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 '전면재검토'로 그간의 노력이 싸그리 무너졌다. 유엔 회원국인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유엔으로부터 대체복무 제도를 만들 것을 권고 받았으나 철저하게 무시했다. 기껏해야 몇몇 학자들이나 인권위원회 정도에서 목소리를 냈을 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인정하는 것과 대체복무제 도입이 마냥 멀어졌다. 전면재검토 기사가 나가자 각종 포털 사이트에는 명박이가 유일하게 잘한 결정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그들은 명박이에 대항해 촛불을 든 네티즌들이다. 촛불에 들은 의제들이 워낙 많으니 각각 사안에 따라 갈릴 수 있다지만, 촛불은 지지하되 병역거부는 지지하지 않는 것이 다수의 뜻인 듯하다.
그러나, 오늘 6일자 신문에서 기분 좋은 소식을 접했다. 춘천지법이 "대체복무 등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형사처벌만을 가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를 제한하고 약자의 기본권을 보호한다'는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 수단 도입을 권고했고, 우리 사회 수준에 비춰 현역복무와의 형평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면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 모르겠지만, 이런 개념 법원, 개념 판사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다. 명박 정부 들어 모든 국가기관이 다 '개'가 된 줄 알았는데 말이다. 내가 볼 때 춘천지법 조심해야 할 듯 하다. 곧 국정원에서 개별 수사 들어간다. 후훗.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와 같은 도발적이고 직설적인 제목을 단 이 책은 뜨인돌에서 기획한 라면 시리즈 2권이다. 라면 시리즈 네 권 중 유일하게 '라면'이 안들어간 책이다. :) <희망의 사회 윤리 똘레랑스>로 간접적으로 만나고, 지행 네트워크에서 직접 만난 바 있는, 하승우씨가 썼다. 아무래도 그와 자주 만나는 걸 보면 관심사와 연구하고자 하는 바가 비슷한 듯 하다. 소개에 따르면 '풀뿌리 민주주의와 아나키즘, 자치와 공생의 삶'에 관심있다고 한다. 이 말이 참 맘에 든다. "사회의 모순과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날카롭고 까칠해야 하지만, 삶의 방향은 사랑과 우정을 향해야 한다." 이번 촛불 정국 기사에서도 그의 이름을 자주 접했다.
책은 매우 쉽게 쓰여졌다. 지금까지는 김두식 교수가 쓴 <평화의 얼굴>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말하는 가장 널리 읽히는 책이었는데 앞으로는 어쩌면 이 책에 지위를 뺏길지도 모르겠다. <평화의 얼굴>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기독교 측 입장을 비판하는데 주력하고 있고, 좀 더 자세하고 구체적인 논리를 들면서 조목조목 비판에 반박하고 있으니, 그보다 쉽게 쓰여진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를 먼저 읽고, 그 책을 읽는다면 대략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논의에 대해서는 알만큼 안다고 보면 된다. 더불어 병역거부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자 하면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을 읽으면 된다.
하승우는 먼저 군대가 무엇이고, 평화는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이야기한다. 군대에 가서 총을 드는 사람들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총을 들지 않고 감옥행을 택하는 이들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도대체 이들이 목표하는 바는 모두 평화인데, 왜 실천 방법은 이렇게 다를까. 2001년으로 거슬러간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앞에 앉히고 오랜 동안의 내 결정을 통보했다. 병역거부하겠다고. 그때 아버지가 빨갱이 운운 하기 전에 내게 던진 물음이 그것이다. 군대 간다고 평화를 원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그래 맞다. 그들도 그렇게 말한다. 다만 나는 평화를 위해 군대에 가서 총을 들기보다 총을 들지 않고 평화를 외치길 원했던 것이다. 총을 들고 평화를 외치는 건 모순된 행동이라 생각했기에. 나는 군대에 갔고 나를 잃어버린지 2년 2개월 만에 다시 되찾았다.
하승우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잘못 인식하고 있는 부분을 파고 든다. 병역기피와 병역거부는 엄연히 다르다. 병역기피는 가기 싫어서 피하는 것이고, 병역거부는 시민불복종의 일환이다. 전자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후자는 보호받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이 부분을 나눠 보지 않는다. 병역거부는 곧 병역기피로 인식한다. 심지어는 때로는 불법으로 때로는 각종 사유를 들어가며 합법적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방송사, 신문사, 국회의원, 대기업 회장 아들에게보다도 평화를 외치며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더 차갑다. 합법적인 신의 아들들에겐 참으로 관대하다. 왜 그럴까. 우리가 비난해야 할 것은 신과 그의 아들이지, 평화를 외치며 무기를 들지 않겠다는 이들이 아니다.
사람들은 강한 국가일수록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방비를 늘리고 신무기를 구입함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한다. 미국에서는 이런 국민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쓰다남은 무기를 적절한(?) 값에 팔아넘긴다. 우리는 좋다고 무장한다. 북한보다 더 강한 화력을 자랑하고, 세계 10대 군사 강국으로 올라선다. 그렇게 평화를 유지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가 무기를 사면, 중국과 일본도 무기를 산다. 중국이 무기를 사면 인도는 미국의 백으로 핵무장을 한다. 인도가 핵무장하면 파키스탄도 핵무장한다. 미국도 이에 질세라 최신식 무기로도 모자라 전 세계 우호국가와 MD체제를 편성한다. 그러다 펑펑! 전쟁 터진다. 한국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거나 한쪽 고래 편들다가 다른 고래한테 얻어 맞는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일어났던 커다란 전쟁은 모두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때보다 무기는 강해졌고, 한 발로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다. 언제나 사건은 터지게 마련이고, 불씨만 당겨지면 전 세계는 핏물로 가득 찰 것이다. 평화를 지키는 유일한 길은, 무기를 내려놓는 것이다. 내가 무기를 내려놓고, 내 친구가 무기를 내려놓고, 내 적이 무기를 내려놓으면 평화는 영원히 지킬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평화를 지키고자 무기를 내려놓는 이들을 감옥으로 보낸다. 전 세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수감율 1위. 유엔 대사를 낳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솔직히 쪽팔린다. 티베트의 인권, 그루지아의 인권 좋다. 그들의 인권 지켜야 한다. 그런데 티베트의 인권을 말하는 이들은 이땅에서 촛불들다 얻어터지거나 평화를 위해 무기를 내려놓는 이들의 인권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찌 된 일?!
결국 영원한 평화는 무기를 내려놓는 개인과 개인과 개인이 모여 이룰 수 있다. 왜 우리가 먼저 총을 내려놔야 하냐고 묻지 마라.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평화가 무엇인지 안다. 그래서 그들은 기본법 제 4조에 이렇게 명시했다. "신앙과 양심의 자유, 그리고 종교적, 세계관적 고백의 자유는 불가침"이며 "누구도 양심에 반하여 무기를 드는 병역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라고. 그들의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과 같다. "먼저 총을 내리면 상대방도 내 의지를 알게 된다. 먼저 평화를 택하는 건 바보나 겁쟁이의 선택이 아니라 용기 있는 선택이고 평화를 향한 강렬한 열망이다. 인류의 비극은 그런 선택과 열정을 비현실적이라거나 어리석은 것이라 무시하고 비웃을 때 시작된다." (하승우)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다. "군대는 주로 국내에서 억압적 통치를 하기 위해 필요하고, 군대에 들어간 모든 사람은 국민에 대한 정부의 폭력에 동참하는 자가 된다." "정부 폭력을 없애 버리는 길은 단 한가지다. 사람들이 거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전쟁을 없애고 평화를 지키는 길은 단 한가지다. 사람들이 거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몸소 무기를 들길 거부하며 그 길을 걷는 이들 덕분에 우리는 평화를 지킬 수 있다. 어찌 이들을 감옥으로 보낼 수 있단 말인가. 허무맹랑한 이상론이라고 말하지 말자. 모든 이상은 꿈을 꿈과 동시에 그 길을 걷는 개인이 모여 이루어졌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복지, 인권 그 모든 것이 다 그렇게 이루어졌다. 이제 평화를 이야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