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주 토요일에 유홍준 교수님 강의를 들으러 갔다. 강의 전 사인을 받는 사람들이 있어 조용히 줄을 서있다가 큰아이 초등학생일 때 녹색어머니 활동을 함께 했던 ㅎㄹ엄마를 만났다. 아이들을 다 데리고 온 가족이 함께 왔다며 부러워했다.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로 점심을 먹이고 달래서 데려왔다 했고, ㅎㄹ엄마는 그 집 아이들은 이제 무엇으로도 꼬실 수 없다고, 지금은 둘 다 학원에 갔다고 했다. 1초간 뜻 모를 미소. 아이들을 나란히 앉히고 박수로 유홍준 교수님을 맞았다. <어두운 오늘을 찬란한 미래로 바꿔줄 역사의 힘>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노트북과 연결된 파워포인트 화면이 켜지자마자 전체 조명이 약해졌다.
시작과 동시에 큰아이는 서둘러 꿈나라로 떠나 버리고, 누나의 여행길에 동행하고자 둘째 역시 점퍼를 머리에 뒤집어쓴다. 바로 뒷자리에 ㅎㄹ엄마가 있다. 1초간 뜻 모를 미소는 의문의 1패로 변신. 가족끼리 오붓하게 꿈나라로 가는구나. 야나문 <작은 책방 투어>에서 유시민 작가님과 눈맞추는 거리에서도 바로 그 나라로 여행가더니, 내 오늘을 기억해 평생 너를 놀릴 것이다,라고 혼잣말을 하고는 부시럭부시럭 가방 속을 뒤진다. 초콜릿이다. 딱 한 개가 있다. 눈을 감고 있는 큰아이 손에 쥐어준다. 일본 글씨가 적혀있는 정사각형 초콜릿은 마법의 묘약이 되어 잠자던 숲속의 큰아이를 깨우고, 둘째도 더 이상은 안 되겠던지 얼굴을 내밀고 큭큭 웃는다. 얘들아, 너희 앞에 계신 저 분이 유홍준 교수님이시란다.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의 ‘나’, 바로 그 분, 한국의 살아있는 전설, 최고의 입담, 구라의 왕, 유홍준 교수님이시다. 깨어라, 들어라, 일어나라.
한국의 절대미를 상징하는 종묘, 창덕궁, 부석사, 병산서원, 해인사, 송광사, 화엄사 중, 제일 인상깊은 설명은 종묘에 대한 것이었다. 종묘가 새롭게 조명된 것은 종묘제례가 다시 재현되어 일반에게 공개된 1971년 부터였다고 하는데, 국내 뿐 아니라 해외의 유명 건축가, 건축학자들이 감탄해 더욱 유명해졌다.
일찍이 일본 건축계의 거장이었던 시라이 세이이치는 1970년대에 이 종묘를 보고 “서양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면 동양엔 종묘가 있다”라고 극찬했다. 이는 이후 많은 일본의 건축가와 건축학자가 종묘를 방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23쪽)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일화는 더욱 그렇다. 2012년 9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운영 중인 건축사무소의 50주년을 기념해 부인과 두 아들 내외와 함께 종묘를 다시 한번 보고 싶어 가족여행을 한국으로 온 것이다. 문화재청 종묘 관리소의 협조하에 단체 관람 시작 전인 오전 8시 50분에 가족들과 조용히 종묘를 관람하던 프랭크 게리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조용히 대답했다.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아름다운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마치 아름다운 여성이 왜 아름다운지 이유를 대기 어려운 것처럼.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누구나 그것을 다 느낄 텐데.”
신문에서 박석이 촘촘하게 깔려 있는 월대로 올라가는 계단도 그는 성큼 내딛지 않았다. 안내원이 “올라가시겠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아니, 아직은”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큰며느리에게 말했다.
“이 아래 공간과 위의 공간은 전혀 다른 곳이란다. 그 차이를 생각하면서 즐기렴.” (25쪽)
그래서, 아래 공간과 위의 공간의 차이를 느끼고 싶어 토요일에는 종묘에 갔다. 계단에 오르지 않고 한참을 그렇게 서서 정전을 바라보았다. 단체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한 가이드의 설명을 옆에서 살짝살짝 들으며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는 계단을 올라 프랭크 게리가 서 있던 그 자리에 서 보았다. 이 단순하고 절제된 건축물의 어떤 면에서 특히 감동을 받아야 하는지 곰곰 생각했다. 화려하고 웅장함이 아니라, 단순함과 절제된 아름다움이 선사하는 장엄함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는, 다시 계단 아래로 내려왔다. 잠깐, 아주 잠깐 서서 감상했지만, 나는 월대 아래쪽에서의 느낌이 더 좋았다. 계단 아래 섰다. 가끔 연인들, 가족들, 단체 관람객들이 우르르 지나가고 나면, 더 넓어진 공간이 더 멀리 눈 앞에 펼쳐졌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건물이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자기만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27쪽)
내 평생에 한결같이 미술은 체육과 함께 내게 난공불락의 영역이지만, 이 책과 함께라면,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그냥 이 분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함께 하는 다른 친구도 있다. 금요일에는 섬세한 친구가 튀김소보루를 보내줬다. 아, 이 맛이란… 뭐랄까. 인생에는 두 종류가 있다. 튀김소보루를 먹어본 인생과 아직 튀김소보루를 먹어보지 못한 인생. 사람에는 두 종류가 있다. 튀김소보루를 먹어본 사람과 아직 튀김소보루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
나는 튀김소보루를 먹어본 인생, 튀김소보루를 즐기는 사람이 되어, 책장을 넘겼다. 튀김소보루를 먹으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서울편 1을 읽어 가자니, 우리만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되는 일이 무척이나 쉽게 느껴졌다. 유홍준 교수님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설명 덕분인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튀김소보루 덕분인지 헷갈렸다. 좋은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