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클라스트르의 제일 유명한 저작은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제목만으로는 국가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에 대한 고찰을 담은 책으로 예상되는데, 집에 있는 그 유명한 책을 미뤄두고 굳이 도서관에서 빌린 『폭력의 고고학』을 먼저 읽는다.
책날개 왼쪽의 작가 소개를 읽고서야 저자가 인류학자임을 알게 되었다.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했고, 1960년대에 오랜 기간에 걸쳐 파라과이와 베네수엘라의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연구했던 인류학자. 인디언 사회를 가까이에서 관찰 및 연구하면서 그가 내린 결론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인디언 사회인 걸까. 의문을 품고 읽기를 시작한다.
급작스러운 사고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클라스트르 사후, 그가 발표했던 에세이와 서평, 그리고 원시사회에 대한 연구물을 모아 펴낸 유고집이 바로 이 책이다. (알라딘 책 소개)
<제1장 마지막 서클>은 그가 직접 인디언 사회에 접근해 그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한 글이다. 일기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해서 아주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힌다. 방귀대장 뿡뿡이처럼 우리 삶의 적나라한 일면의 묘사가 아주 흥미롭다.
이들은 하루에 21시간을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지내므로 이들의 문명을 오락의 문명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들은 지루해하지 않으며, 낮잠, 익살, 논쟁, 마약, 식사, 목욕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성생활도 포함된다. 그들이 성생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은 중요하다. "야페시(Yapeshi)!"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이는 "사랑을 하고 싶다!"는 의미이다. 마바카에서 어느 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집의 아래층에서 싸우고 있었다. 불평, 고함, 비난, 웃음소리가 들렸다. 무엇인가 요구 사항이 있는 듯한 여자는 남자의 다리 사이로 손을 뻗어 불알을 움켜쥐었다. 남자가 도망가려고 조금만 움직여도 여자는 불알을 눌러 쥐었다. 남자는 매우 아팠을 것이지만, 여자는 손을 놓지 않았다. "이 여자는 성교를 하고 싶어 해! 이 여자는 성교를 원해!" 내가 보기에 그들은 그후 그것을 했을 것이다. (26쪽)
<제2장 야만적 민족지>는 브라질 출신의 백인 소녀 발레로가 열 한 살 때인 1939년 인디언에 납치된 후, 그들에게 입양되어 그들 집단의 여자가 되고 차례로 두 남자의 아내가 되고 네 소년의 어머니가 된 후. 22년 후인 1961년 부족과 숲을 버리고 백인 세계로 돌아온 일에 관해 쓰고 있다. 유괴에 의해 폭력적으로 인디언 사회에 들어갔지만, 그녀는 자신이 백인이자 기독교인임을 잊지 않았고, 그 와중에도 인디언 사회에서 죽지 않고 생존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소녀의 나이는 우리의 주목을 끈다’(39쪽). 자신이 속한 곳을 기억하면서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에 이상적인 연령, 11세. 또 한 가지 그녀의 생존 요인은 성별이다.
요컨대 나이와 성격이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유리했다. 그녀와 같은 나이의 소년이 잡혔다면 인디언 세계의 일을 배운다는 것이 그다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잡혀간 지 얼마 후, 그녀는 마찬가지로 잡혀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같은 또래의 브라질 소년을 만났다. 그녀는 그 후 한 번도 그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유괴된 여자는 공동체의 잉여 재산, 거저 얻은 선물, 횡재이지만, 남자는 여자만 취할 뿐이고 반대급부로 주는 것이 없다. 그를 살려 두어서 이득 되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이다. (40쪽)
<제4장 민족 말살에 대하여>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지만, 이 책의 주요한 주장을 담고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인종 말살’ 개념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때, 인종 말살이 “인종”이라는 관념 및 인종적 소수자를 멸절시키겠다는 의지와 관계된다면, 민족 말살은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려고 하기보다는 그 사람들의 문화를 파괴하려는 것(61쪽)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타자에 대한 인식과 그것이 문화로 발전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다. 저자는 자민족 중심주의가 누구에게나 공유되고 있는 보편적 사실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모든 문화가 오직 자신만이 진정한 문화라고 생각하는 한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문화적 타자성은 결코 긍정적인 차이로 파악되지 않고, 언제나 위계 서열에서 열등한 것으로 파악된다. (65쪽)
문제는 이 지점이다. 모든 문화가 자민족 중심적이라고 하더라도, 오로지 서양 문화만이 민족 말살적(65쪽)이다. 저자는 모든 국가 조직이 민족 말살적이라고 보았다. 국가의 정상적 존재 양식으로서 민족 말살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그러한 폭압적이고 민족 말살적 국가 조직의 제일 큰 동력을, 저자는 ‘경계 내부에 머물지 않고 모든 경계를 넘어서는 통로로서의 자본주의’를 꼽는다.
생산을 위한 가장 멋진 기계로서의 산업사회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또한 가장 가공할 만한 파괴 기계이다. 인종들, 사회들, 개인들, 공간, 자연, 바다, 밀림, 땅 밑 등 이 모든 것들은 유용하고, 그래서 사용되어야 하며, 가장 높은 강도의 생산성을 지니고서 생산적이어야 한다. (71쪽)
생산성, 효율성, 가성비. 이것이야말로 국가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으로서 울창한 숲과 자연 속에 깃든 평화, 그 안에 더불어 살고 있던 인디언들과 그들의 고유한 문화를 모두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더 생산적인 삶, 더 효율적인 방식, 더 가성비 높은 선택을 향한 무자비한 산업화의 선두에 인디언 사회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고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졌으며 다시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다음은 누구인가. 누가 다음 차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