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뉴욕규림일기
저자가 뉴욕을 여행하면서 겪은 일을 기록한 책이다. 간단한 스케치와 영수증, 그리고 짧은 글로 이루어진 책이다. 유쾌하고 재미있다. 이렇게 뉴욕 곳곳을 여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생각한다.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은 뉴욕공립도서관과 센트럴 파크.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런 꿈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2. James and the Giant Peach
뉴욕 이야기 2탄. 너투브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플레이타임 2시간 29분, 재생속도 1.25. 주인공은 James이고 Peach로 인해 인생이 바뀌니까, Peach가 중요하다. 방임하고 학대하는 두 명의 고모에게서 도망치고, 망망대해를 건너, 상어의 공격을 피해, Earthworm을 미끼로 삼아 갈매기의 도움으로 Giant Peach를 타고 도착한 그 곳. 파라다이스, 천국, 유토피아, 꿈의 이상향이 미국 뉴욕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하긴 다른 곳을 상상하려고 해도 그런 곳이 없기는 하다. 기회의 땅 미국에서 지네, 지렁이, 메뚜기, glow-worm(개똥벌레 유충), 거미, 무당벌레, 누에는 모두 재취업에 성공한다. 미국이야말로 진정한 'A Promised Land'. James는 Giant Peach에 대한 모험담을 계속 들려 달라는 요청에 책을 쓰게 되는데, 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을 써서 셀럽이 된 게 아니라, 셀럽이 책을 쓰는 현실과도 비슷하다.
예전에 읽을 때는 '역경 - 희망 - 탈출 - 꿈의 실현', 즉 모험담으로서의 줄거리만 보였다면, 이번에 읽을 때는 중간중간 나오는 노래가 재미있었다. 이를테면, Centipede가 몸에 묻었던 페인트가 지워져 다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기쁨에 차서 불렀던 이런 노래.
셰익스피어 읽을 때 몰랐던 rhyme의 기막힌 즐거움을, 난 여기에서 찾았다.
3. 페미니즘 정치사상사
읽지 않았는데 어김없이 찾아오는 반납 기일. 전날 헐레벌떡 읽기 시작해 딱 한 챕터 읽었다. <한나 아렌트와 페미니즘 정치학>.
그녀는 "우리가 진정으로 행하는 것은 무엇인지 사색"하려면 활동적 삶을 재성찰할 뿐만 아니라, 젠더가 활동적 삶과 연관되는 방법까지 설명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결국 『인간의 조건』은 포괄적인 해방의 기획이 되지 못했다. 그녀는 공적/사적 영역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으나, 젠더에 무지했던 탓에 이 영역들이 역사적으로 여성의 종속을 강화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동시대의 소외를 분석하면서 자유에만 주목했기 때문에 여성이 공적 세계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찰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그녀는 자신의 정치이론에 내재된 남성중심주의 탓에 자신이 우리에게 설명하려 했던 인간의 조건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었던 셈이다. (384쪽)
한나 아렌트의 의도 저 너머를 살피려는, 살펴보려는 저자의 노력이 아무리 눈물겹다 해도, 결론은 아렌트는 그 부분에 대해 무지했다는 이야기 아닌가. 아렌트는 그리스 시대에 보이지 않았던 여성의 존재를,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했던 건 아닌가. 그렇게 굳게 믿었던 건 아닌가. 천천히 읽어야 할 책이라 구매하려 했더니 절판된 책이란다. 다시 대출해야 한다. 이런.
4.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2,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3
아껴서 읽는 사기 시리즈. 외롭고 힘들 때, 꿀꿀하고 적적할 때, 읽고 있는 책이 어려울 때. 이 시리즈를 꺼내 읽는다. 곶감 아끼듯이 아껴보았으나, 벌써 3권째. 평생을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했는데, 철천지원수가 눈을 감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 오자서의 마음은 어땠을까. 마음속 깊은 한을 결국 풀어내지 못한 인생.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억울하고 서럽고 답답하고 구슬픈. 인생을 구성하는 주된 감정은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얼마큼 불쌍하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도 이런 유머에 사로잡히는 나. 이런 내가 싫다.
5. 요즘 읽는 책
『People we meet on vacation』은 겨울이라서 여름 기분 내려고 읽는 책이고, 『One day in December』는 친구들이랑 한 주에 2-3챕터씩 읽고 있다. 요즘 재미있는 책은 암소 숭배, 돼지 혐오가 나오는 『문화의 수수께끼』이고, 페이퍼 5개가 밀려 있는 책은 『인종 토크』.
읽는 건 조금씩이라도 읽고 있는데 쓰는 건 잘 안 된다. 개인적으로 심란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밤낮으로 나라 걱정. 전혀 쓸데없다는 나라 걱정을 밤낮으로 하고 있다. 설마, 했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던 기억, 어제처럼 선명한 기억들이 자꾸 떠오른다.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던 그 날, 6시 00분의 그 암울했던 순간이 머리에 스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번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가 모두 마음에 안 들고, 찍을 사람이 하나도 없고, 누가 대통령이 돼도 상관이 없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에 대한 호의, 나에 대한 관심, 나에 대한 생각, 나에 대한 그 모든 것을 다 모아 모아, 3월 9일에 현명한 선택을 강권하고 싶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말고. 그분들에게는 그분들의 또 다른 세계가, 무속의 새 하늘이 펼쳐질 것이다. 상관 없다는 사람.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상관 없다는 사람. 그 누구에게나 부탁하고 싶어진다. 윤석열이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검찰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언론 파산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안 되잖아요. 당신보다 무식한 사람은 안 되잖아요.
그래서. 명단을 작성하고 있다. 전화를 돌려야지. 조용히 살고자 하는 나는, 또 그렇게 통화 버튼을 누르고. 이건 안 되잖아요. 아니잖아요.
나도 책 읽고 싶다. 전화 돌리기 싫다. 부탁하는 말, 하기 싫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듣고 싶지 않다. 책 읽고 싶다. 우아하게 혹은 차분하게. 책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