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가 용기를 내서 행복이 무엇인지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0쪽)
바람이 선선하게 느껴지고 어스름이 내려앉는 저녁. 한가한 토요일 오후. 실내 인간 1인을 제외하고 온 가족이 함께 걷는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가족이 눈에 들어온다. 엄마, 아빠, 아빠가 밀고 있는 유모차 속의 아이, 그리고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는 작은 인간. 귀엽고 예쁜 아이. 편안하고 행복한 모습이다. 혹 나를 ‘이성애 핵가족’ 규범에 사로잡힌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어쩌면 그럴 수도. 그럼 그 옆의 사람들을 쳐다본다. 아이 없이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노부부. 나란히 걷는 남자 두 명. 대학생 같아 보이는 서너 명의 여성들. 토요일 저녁의 여유로움이 여기저기 묻어난다. 우리 아파트 상가의 인기 스팟 ‘깐부 치킨’에는 빈 자리가 없다. 가족, 연인, 친구들로 가득하다.
용기를 내서 행복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고 믿는다.
일주일 동안의 고된 업무를 마치고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과 평범하고 편안한 일상을 맞이하는 것이 행복이 아닌가 물어야 한다. 우리의 일상을 빼앗을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무엇보다 ‘전쟁’이다. 분단된 조국에서 태어나 우리 중 누구도,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믿지 않지만, 아직도, 여전히 한국은 ‘정전 상태’ 곧 전쟁 ‘중’이고, 1950년 7월 14일자로 이승만 대통령이 유엔군사령관에게 서한을 통해 이양한 ‘전시작전통제권’을 2021년의 오늘에도 회수해 오지 못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지만, 제일 중요한 결정권은 우리에게 있지 않다.
현재 대통령 후보 중 지지율 1, 2위를 오가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안보 공약’을 발표하면서 ‘한미 확장억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국민 안전이 위협받는다면 미국에 전술핵 배치와 핵 공유를 강력하게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 국무부 일본·한국 담당 부차관보 마크 램버트는 ‘확실한 점은 미국의 정책은 해당 공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정책을 제안하고,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미국의 정책에 무지한 것이 내게 있어서는 놀라울 뿐이다”라고 말했다. 전쟁을 원하고, 더 원하는 사람들이 그 전술핵을 ‘전해 주실’ 미국에게서 받는 대접에 부끄러운 사람은 나뿐인가.
용기를 내서 행복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고 믿는다.
순진한 나는,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만 해도 이 아이가 군대가 갈 만큼 자란 시점에는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지 않을까 희망했다. 나이브한 극단의 낙관론. 하지만 그 아이는 이제 열여섯이 되었고, 넷플릭스 회원도 아니면서 19금의 <DP> 를 어떻게 하면 볼 수 있을지를, 자꾸 나와 상의하려 든다. 20대 남자가 ‘군대’ 문제를 가지고 자신들의 노고와 고생과 억울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떻게나 침 튀기며 달려드는지, 안다. 하지만 열여섯의 중딩이 <DP> 를 궁금해하며, 자신 앞의 그 무언가를 걱정할 때, 그 아이가 바로 내 아이라는 사실에 나는 슬프다. 분단의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고민, 하지 않았을 걱정.
남과 북 사이에 긴장감이 완화되고, 좀 더 긴밀한 경제협력이 이루어지고, 북한이 비핵화 작업에 전격적으로 협조하고, 그리고 남과 북을 잇는 ‘철도’가 돌이킬 수 없는 힘으로 굳건히 자리 잡는다면. 전쟁의 공포와 그로 인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비용이, 그 천문학적 비용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본문과 조금, 사실은 조금 많이 떨어진 문제이지만,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전쟁의 위협 없이 평범하게 누리는 일상. 여유로운 토요일 저녁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 이 시간을 좀 더 오래 누리기 위해서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로지 노동이 전부인 삶을 거스르는 삶, 수많은 생명체와 함께하는 공동체성, 자연 속에서 개인의 고립에 반대하는 공동체성, 유희, 불확정성, 발견, 경이, 사색, 감동이 있는 곳, 대지와 온전히 관계 맺을 수 있는 곳. (190쪽)
우리가 언제 행복한지, 그리고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거부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전술핵은 아니고, 적어도 전쟁은 아니며, 적어도 ㄱㅁㅇㅎ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