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단톡방에서 친구들과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이달의 도서를 이야기하던 중, 친애하는 알라딘 친구가 ‘단발님 원래 달라 코스따 좋아하잖아’라고 말했다. 눈으로만 대화를 나누고 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나, 달라 코스따 좋아해? 내가 그렇다고 말했어? 그랬어, 내가? 마침 책도 준비된 김에 일찌감치 읽기를 시작했는데. 어머나, 어머나. 연두색 형광펜 뚜껑을 닫자마자 열고, 또 닫자마자 열어야 할 만큼 기막히게 좋은 문장들이 한가득이다. 어머, 나, 달라 코스따 좋아하네. 나, 달라 코스따 좋아하는 사람이네. 놀라운 알라딘 친구들이여. 놀라운 알라딘 AI여.
다른 누군가의 임금에 의존하고, 따라서 다른 누군가의 의식에 종속되는 이 고립된 여성, 이 여성에게서 탄생한 여성 무능력의 신화를 깨부수는 길은 이제껏 오직 하나뿐이었다. 바로 여성이 자기 임금을 버는 것이다. 사적인 경제적 의존의 허물을 깨고, 집 밖 세상으로 나와서 독자적 경험을 쌓고, 공장이든 사무실이든 사회화된 구조 내에서 사회적 노동을 수행하며, 전통적인 계급 유형과 더불어 여성 자신만의 사회 저항 유형을 주도해 나가는 것이다. (55쪽)
페미니즘을 읽으면서 나를 제일 괴롭히는 문제가 바로 이거다. 노동과 임금. 사회적 고용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나. 일하고 있지만(가사 노동) 경제학적으로는 ‘일’이라고 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나. 어떤 방식, 어떤 형태로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어떻게든 해봐야 한다. 어떤 식이든, 어떻게든.
우리가 원하는 건 공동 급식소도, 그와 같은 종류의 놀이 시설이나 어린이집도 아니라는 점을 그들이 알기 바란다. 우리는 공동 급식소, 어린이집, 세탁기, 식기 세척기를 원하지만, 몇몇 사람들과 원할 때 방해받지 않고 식사할 수 있는 선택권, 아이·노인·환자와 원할 때 원하는 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선택권도 갖고 싶다.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건, 노동을 줄이는 것을 뜻한다. 아이·노인·환자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이들을 잠시 맡겨둔 차고로 뛰어가 잠깐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가장 먼저 배제 당한 우리 여성들이 투쟁을 주도하여 다른 모든 배제 당한 이들, 즉 아이 노인 환자가 사회적 부를 재점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45쪽)
다른 사람들은 어쩐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쪽으로 관심이 좀 많다. 최근에 추미애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제1호 공약이 ‘지대 개혁’이라는 걸 알게 됐다. ‘막대한 부동산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의 정상화, 합리적인 공정 과세가 지대개혁의 요체’라고 하던데 감개무량했다. 대학 때 흥분해서 읽었던 『진보와 빈곤』도 떠오르고. 이념을 이유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던 이 나라에서 ‘빨갱이’라고 오인받기 딱 좋은 공약을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가 들고나왔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이 부분에 대해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는 지도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로웠다.
위의 문단을 읽으면서는 최근에 신문 기사에서 보았던 이재명 후보의 ‘어르신, 환자, 장애인, 아동, 영유아 5대 돌봄 공약’이 떠올랐다. 겪어본 사람/겪어보지 않은 사람도 다 아는 일이겠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삶의 모습이 확연하게 바뀐다. 한 달에 몇십만 원 돈이 더 드는 정도가 아니라 삶의 양태가 완전히 바뀐다. 맞이하고 싶어서 맞이하는 고령화 사회는 아니지만, 70대는 노인정에서도 아이 취급을 받고, 90세를 넘는 어르신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데이 케어’를 위해 어르신을 모셔가는 승합차를 훨씬 더 자주 볼 수 있다. 하물며 몸이 불편한 가족을 돌보고 케어하는 일은 말해 무엇하랴. 이 모든 일을 가정에게만, 가족 구성원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아이와 늙으신 부모님과 몸이 불편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싫다는 게 아니다. 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도와야 한다는 뜻이다.
돈 쏟아붓는다고, 나라 거덜 나겠다고, 우리 다 거지 되겠다고, 언론은 난리를 치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원하는 세상,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먼저 고려하는 그런 사회가 될 수 있다면, 게다가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공약 이행률 81.37%의 이재명 후보라면.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가사 노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때, 가사 노동 ‘논쟁’을 넘어 가사 노동 임금 ‘지급’이 가능해질까.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하루 12시간 노동하는 주부의 연봉을 4,450만 원, 월급으로는 432만 9천 원으로 계산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가능할까’ 하는 기대와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가지고.
술술 너무 잘 읽힌다.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참여를 고민하는 모든 분들이 <시작의 달>로 삼을 만하다. 더 읽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