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좋아했으면서도 많이 하진 못했다. 대시는 남자가 먼저 하는 거라고 믿었던 고루한 여학생이 매력 부족 및 기타의 이유로 대시 받지 못할 경우 상황은 한 가지뿐이다. 나는 독야청청하였다. 친한 친구 1이 스물에, 친한 친구 2가 스물넷에 결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남자친구도 없으면서 절친의 부케를 얌전히 받아 들면서. 연애가 하고 싶었다. 하지 말라는 이 하나도 없었으나 할 수 없었다. 노력해보지 않은 바 아니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면, 방법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닐 텐데. 그렇게나 연애를 안 했다는 건 연애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변명 같은 말이 아니라 그냥 변명이지만. 대시할 수 있었고, 맘에 차지 않아도 모양이라도 비슷하게 할 수는 있었을 텐데. 나이 들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가뜩이나 더 게을러지는 요즘, 연애는 생각도 못 할 일이다.
짧지 않은 시간을 이야기하고 듣고 또 이야기했는데도 자리를 마무리하고 일어서는 순간이 아쉬웠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할 말이 있었고, 들을 이야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함께 했던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헤어짐이 아쉬워 발을 동동거리고, 그리고 머릿속으로 부지런히 다시 만날 시간을 가늠하고 있을 때, 알았다. 내게 이런 증세가 나타났던 과거의 순간들을. 길지 않았던 내 연애의 찰나들을 말이다.
도란도란 말을 주고받는 중에 우리 사이에 오가는 감정을 우정이라 부를 수 있겠고, 페미니스트는 어떠해야 한다는 말 너머에 삶의 조각을 어떻게 맞추어갈지에 대한 우리의 논의를 연대라고 부를 수 있겠으나, 그 사람만 생각하며 엽서를 고르고, 조심스레 초콜릿을 흰 봉투에 담고, 두 손과 팔을 움직여 빵을 반죽하고, 발효 시간을 내내 기다리고, 시간에 늦지 않았는데도 발걸음을 서두르는 우리의 마음은, 연애 중일 때의 바로 그것과 같다는 걸 알았다. 더 알고 싶고, 더 보여주고 싶으니까. 나는 여전히 뜨겁고 달떠 있으니까. 연애심이 발동한다. 진짜 연애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