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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 작가 소개를 보면 이렇다.
대표작으로 『시녀 이야기』(1985), 『고양이 눈』(1988), 『도둑 신부』(1993), 『그레이스』(1996) 등이 있으며, 2000년 발표한 『눈먼 암살자』로 부커 상을 수상했다.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남성 중심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들을 통해 페미니즘 작가로도 평가받는 동시에, 외교 관계, 환경 문제, 인권 문제, 현대 예술, 과학 기술 등 다양한 주제를 폭 넓게 다루고 있다.
페미니즘 작가로만 평가하고 싶지만, 외교 관계, 환경 문제, 인권 문제, 현대 예술, 과학 기술에 대한 그녀의 이해와 통찰의 깊이 때문에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없다. 페미니즘 작가로만 한정하고 싶지만, 그녀의 역량이 차고 넘치기에. 그런 느낌이 든다.
『금색 공책』의 저자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도리스 레싱도 생각난다. 도리스 레싱은 자기가 ‘페미니즘’이라는 틀에만 묶여서 해석되는 것에 반대했다. 『금색 공책』은 사회주의에 투신한 등장인물들이 체재 내부에서 겪는 혼란과 갈등을 첨예하게 그려냈다. 많은 양의 서술을 이 부분을 조명하는데 할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도리스 레싱을 ‘페미니즘 작가’로 한정하고 싶어했다. 여성 작가의 성에 대한 응시가, 여성의 성애에 대한 솔직한 토로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딱 그렇게로만 해석하고 싶어했다. 도리스 레싱은 여러 번 공개적으로 세간의 이런 평가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혔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만 해도 우호적인 평론가나 비판적인 평론가나 양쪽 공히 이 책을 ‘성 대결’에 관한 작품으로 ‘격하’했다. 그러나 레싱은 이 모든 혼란을 겪은 뒤 써 내려간 1971년판 서문에서 자신이 여성해방운동을 지지하는 것과 별개로 “이 소설은 여성해방운동의 응원가가 아니었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분리와 분열을 딛고 넘어선 ‘통합’이야말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임을 거듭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알라딘 책소개)
한 때, 내 안의 한 지점을 밝혀주었던, 진심 좋아했던 작가는 일생의 작업이라며 철학 관련 책을 펴냈는데, 페미니즘 사상가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그것을) 하나의 사상으로까지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는데 대충 이런 의미였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됐다. 안녕이라고.
페미니즘을 이렇게 폄훼하는 이유를 이해한다. 그것이 옳은 판단이라거나 옳은 행동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밖에 하지 못 하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그들의 한계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남성을 인간의 표준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기껏 여성작가, 여류작가들의 이야기가 진지하게 읽힌다는 것 자체가 불편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랴. 마거릿 애트우드는 외교 관계, 환경 문제, 인권 문제, 현대 예술, 과학 기술에 대한 문제의식을 적확하게 드러냈고, 도리스 레싱은 서구의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반전(反戰), 공산주의의 몰락 등(알라딘 책소개)의 첨예한 주제를 혁명적 형식을 통해 정면으로 드러냈다. 여성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히 꺼내 놓았고, 여성들이나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라는 속임수에 빠지지 않았다. 페미니즘 작가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았고, 너끈히 이겨내 살아남았다. 위대한 작가. 위대한 작가로.
이 책에 관심이 생긴다.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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