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김재규 평전
문영심 지음 / 시사IN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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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 그것도 부정적인 모습으로만. 너무도 오래 전 이야기이고, 또 제대로 다뤄주지도 않는다. 사람들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제가 본 부분만으로만 이야기한다. 그런 사람이 바로 김재규다.

 

별로 흥미도 없다. 대통령을 죽인 사람. 이정도다. 알고 있는 사실은. 젊은시절에는 김재규가 사형당한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직도 감옥에서 살아있겠지 하고 말았는데...

 

대통령을 죽였다고 그가 혼자 일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미국과 교감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이나 다른 외국으로 도피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 그래서 그렇게 사형을 시켰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사형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뿐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대통령을 죽였다고 해도 그 역시 그 대통령 밑에서 그 체제를 유지하게 하는데 큰 힘을 발휘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권력다툼.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또는 질책을 두려워해서 저지른 일. 이정도. 참 정보가 없기도 했다. 도대체 재판기록을 본 적도 없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 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잊혀진 사람. 아니 잊혀져야 할 사람. 그것이 바로 김재규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우연히 장군이라고 부르는 글을 보게 되었다. 글이라기보다는 그런 구절을 보았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장군이라고? 그는 중앙정보부장 아니었어? 중앙정보부장은 민간인이 하고, 보안사령관은 군인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만큼 정보가 부족했다. 그가 군단장 출신의 3성장군이었다는 사실. 그를 보좌한 비서관인 박흥주가 현역 대령이었다는 사실.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렇게 빈약한 정보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려고 했었나? 한홍구의 "유신"을 읽다가, 그 책의 저자가 김재규에 대해서 긍정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무언가 모르는 부분이 있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하들에게 겨우 30분 전에 거사를 알려주었다는 얘기를 "유신"에서 읽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됐다. 거사 직전 30분이라? 이게 말이 되나? 한 나라의 대통령을 제거하는 일인데...

 

사육신이 세조를 제거하기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공모를 했는데... 그래도 실패했는데... 이상하다? 뭔가가 있나? 겨우 30분 전에 얘기했는데 그 말을 따라? 제 목숨이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거.. 참...

 

김재규에 관한 글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막 솟아올랐다. 김재규에 대한 글을 읽는다고 그에 대해서 다 알지는 못하겠고, 모든 글은 자신의 관점에서 쓰여지니 읽으면서 정리할 부분도 많겠지만, 지금은 너무도 정보가 없기에 찾아 읽어야 했다.

 

검색어로 김재규를 쳤다. 제법 책이 나온다. 이걸 다 읽긴 좀 그렇고? 최근에 나온 책을 읽기로 한다. 그래도 최근 것이 더 많은 정보를 정리해서 알려줄 거라는 생각에...

 

추천사에 함세웅 신부가 있고, 강신옥 변호사가 있다. 이거 만만치 않은데... 이 분들은 유신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분들인데... 유신의 중심에 있던 김재규 평전에 추천사를 쓰다니...

 

점점 흥미가 인다. 읽어보기 시작한다. '평전'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작가가 드라마 작가 출신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정말 흥미롭다. 장면 장면이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진다.

 

그래서 그런지 전기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때의 사건을 재구성한 '그때 그 사건"을 읽는 느낌이 든다.  김재규 평전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김재규의 시간은 1979년에서 1980년이다. 채 일년이 되지 않는다.

 

그가 대통령을 죽이기 바로 직전부터 사형당하기까지가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이다. 여기에 김재규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그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던 박흥주, 박선호에 대한 이야기도 곳곳에서 나온다.

 

이렇게 셋이 이 책을 이끌어가는 인물이 된다. 10.26 이후에는 변호사들도 중심 인물로 나온다. 이 때는 한 편의 법정드라마가 된다.

 

앞부분은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본격 무협담같은 느낌을 준다면 뒷부분은 요즘 나온 영화 "변호인"을 보는 듯한 법정 장면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재판정에서 오고간 말들이 나오기에 객관적인(?) 자료가 제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장면에서 김재규라는 사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된다. 그가 한 일과 왜 했는지...

 

그럼에도 그는 잊혀져갔다. 아니 잊혀져야 했다. 그는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했지만, 또다른 유신의 자식들이 등장함을 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의 비극이었고, 그의 명령을 따랐던 사람들의 비극이었다.

 

유신의 심장은 멈추었지만, 또다른 유신의 자식들은 여전히 존재했고, 그들 앞에 그는 세워졌던 것이다. 이런 역사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의 말대로 4심이 있어야 한다.

 

유신시대에 있었던 인혁당재건위 사건(?)은 다시 심판을 받아 명예가 회복되었다. 이것이 바로 4심이다. 역사의 흐름에 의해서 올바름이 증명이 되는 것.  그는 그렇게 4심을 기대했다. 그 4심... 이제 30년도 넘게 흐른 지금... 서서히 준비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더 이상 자료가 사라지기 전에...

 

조금은 알겠다. 그에 대해서. 그는 10.26을 혁명이라 했지만, 그 자신도 바로 유신에 속한 사람이었음을 나중에는 알았겠지... 그것은 그가 벗어날 수 없는 멍에다. 그 멍에를 지고 그는 결행을 했다. 그 정도.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이 났는데...

 

하나는 삼국지가 생각났다. 삼국지.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남자라면 꼭 읽어야 할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명쾌하다. 여기에는 의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관계. 주군이 시키는 일이면 목숨을 걸고도 해야 하는 사람들.

 

겨우 30분 전에 부하들에게 통보했다고 하는데도 부하들은 그를 따랐다. 삼국지에 나오는 그런 유형의 행동들이다.

 

또 하나 채만식의 "태평천하"의 마지막 장 이름... '망진자 호야(亡秦者 胡也)'란 말. 진나라를 망하게 할 존재는 오랑캐라고 그래서 만리장성을 그렇게 쌓았다고 하는데, 그 놈의 호(胡)가 바로 진시황의 아들 이름이었다니...

 

절대권력은 역시 내부로부터 붕괴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김재규가 진정한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권력의 내부에 들어가 대통령을 설득해서 개혁을 하려고 해서는 안되었다는 생각도 했다. 왜냐면 안에 들어가는 순간, 자신도 이미 권력의 일부가 되어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의 내부에 들어가 권력을 개혁하겠다는 사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책을 읽은 지금... 내게는 10.26은 두 개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하나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 날짜를 이 책에서 자주 언급을 한다. 그러니 우리 역사에서 10.26은 두 개의 사건을 담고 있는 날짜다.

 

마치 9.11이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쿠테타로 붕괴시킨 날과 미국 무역센터 테러가 일어난 날이라는 두 개의 사건을 담고 있듯이.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가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한 것, 그리고 그것이 결코 사욕이 아니었음은 인정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지만...

 

역시, 역사라는 심판대에 4심을 맡겨야 할 듯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든 자료가 공개되고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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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파티아 - 고대 그리스가 사랑한 여인
마르자 드스지엘스카 지음, 이미애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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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파티아. 어디선가 한 번 지나가면서 들은 이름이다. 여성학자들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주지 않던 때, 수학,철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고대의 인물이라고 말이다.

 

또 어디선가는 고대 그리스의 종교를 신봉했으며, 자신만의 세력을 형성해서 기독교 세력과 함께 할 수 없었기에 죽임을 당한 인물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히파티아의 죽음으로 고대 그리스 문화는 종말을 고하고, 이제는 기독교 문화만이 살아남았다는 그런 말을.

 

그 정도의 인물이었는데... 우연히 손에 들게 된 "히파티아"란 책.

 

지금까지의 해석과는 달리 철저한 고증을 통하여 히파티아에 대해서 알려준다고 하기에, 히파티아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그러한지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에서는 히파티아에 관해서 두 가지 사실이 잘못 알려졌다고 하고 그를 바로잡기 위해서 다양한 문헌들을 인용한다.

 

첫번째 오해는 히파티아가 젊고 매력적인 나이에 죽임을 당했다는 설. 히파티아를 육체적인 존재로 전이시킴으로써 에로틱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고 하는데...

 

당시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명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사람이 싱싱한 매력을 지닌 얼굴과 몸매를 지니고 있었고, 기독교 광신자들이 이를 훼손했다는 말들은 우리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또 히파티아의 비극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효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라는 의문에서 이 책은 시작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인정을 받을 만한 실력을 갖추고 수많은 제자들까지 두었던 여인, 히파티아가 과연 20대에 그런 일을, 또는 30대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서 의문은 시작되고, 여러 역사서를 고증한 끝에 이 책의 저자는 히파티아가 죽었을 때의 나이는 대략 60세 정도였을 거라고 한다. 그 정도 나이에 이르러 이미 자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적도 동지도 많은 상태였을 거라는 추론. 하여 이 책에서는 히타피아의 출생년도와 죽었을 때의 년도를 추정하여 확정하고 있는데...

 

355년에 태어나서 415년에 죽었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향년 60세. 이 정도면 완숙의 경지에 이르지 않았을까 하고.

 

두번째 오해는 히파티아가 그리스 신앙에 빠져 있었으며, 기독교를 배척했다는 설. 그래서 그리스식 사고와 기독교식 사고를 정면 대립하게 함으로써 히파티아의 죽음은 고대 세계의 종말을 뜻한다고, 즉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레니즘 문화는 히파티아의 죽음과 함께 끝나고 지식은 암흑의 세계로 접어들었다는 설.

 

이 설에 대해 저자는 히파티아 제자의 편지를 통해 히파티아가 기독교를 믿었으리라고 추정한다. 히파티아는 기독교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믿었으며, 단지 다른 종교들을 멀리 한 것이 아니라 종교간의 융화를 지향했다는 것이다. 그의 제자들에는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으며, 심지어는 주교가 된 제자도 있고, 또 이교도들의 반란에 히파티아는 참여하지 않았음을 보여, 히파티아는 이교도가 아니었음을 추론하고 있다.

 

이교도가 아닌데... 기독교도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의문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을 정치적인 갈등 사이에서 희생을 당한 것이라고 한다. 알렉산드리아 제독과 알렉산드리아 주교 사이의 정치적인 권력 다툼 속에서 히파티아는 제독의 편을 들고, 그것에 위협을 느낀 주교가 히파티아를 이교도가 아닌 마녀로 몰아가고, 당시 마녀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기독교 광신도들에 의해 히파티아가 죽임을 당했을 거라고 말이다.

 

일견 타당성이 있는 의견이다. 이교도 스승에게서 주교가 나올 리는 없을테고, 당시에는 제독과 주교 사이에 권력다툼이 있었을테니, 히파티아 같이 유명세를 탄 사람이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한쪽은 동맹자로, 한쪽은 적대자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을테니 말이다.

 

이런 두 가지 논점을 가지고 히파티아에 대한 오해를 풀어가는 책이 이 책이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히파티아가 수학에서, 또 철학에서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는 간략하게 언급하고 넘어가고 있다. 두 분야에서 당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당시 유명한 수학책을 재해석하기도 했다는 이야기, 저서들을 출간하기도 했다는 이야기. 어쩌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 수학이 히파티아가 재해석한 수학책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등등.

 

히파티아 뒤에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 여성들이 나오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 사람으로 히파티아는 손꼽을 만하다고... 하여 여성학자들의 계보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이제는 바야흐로 남성보다 여성이 더 활약하는 시대가 되었고,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이 강조되는 시대가 되었는데...그런 스승의 시조로 히파티아가 자리를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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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 - A Life - 고요한 밤의 빛이 된 여인
도로시 허먼 지음, 이수영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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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 하면 장애를 딛고 성공한 사람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사실 어렸을 때 읽었던 헬렌 켈러의 이야기에는 그 정도가 다이기 때문이다. 설리번이라는 훌륭한 선생님으로 인하여 글을 알게 되고, 그 때부터 자신의 장애를 딛고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는 성공이야기.

 

장애는 극복될 수 없는 무엇이 아니다라는 살아 있는 예. 그게 다였다.

 

사실 설리번 선생에 대해서도 그냥 어렸을 때 헬렌에게 글을 가르쳐준 선생님 정도로밖에는 알지 못했다. 헬렌에 대한 지식은 여기에서 멈춰 있었던 듯하다. 짐승같던 헬렌이 사람이 되는 순간. 딱 거기까지.

 

커가면서 헬렌이 사회참여를 했다는 얘기까지는 알았다. 그가 사회주의에 공감했다는 사실도. 이것도 딱 여기까지. 장애를 가진 사람이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기에 헬렌이 사회주의에 공감했다는 말을 듣고는 그랬겠지가 끝이었다.

 

그만큼 헬렌의 삶은 내게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러다 읽게 된 이 책. 헬렌의 전 생애를 다룬 이 책은 헬렌에 대해서, 장애에 대해서, 그리고 교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준다.

 

헬렌의 평전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세 명이다. 한 명은 헬렌 켈러. 또 한 명은 앤 설리번 메이시. 그리고 마지막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인 폴리 톰슨.

 

헬렌을 중심으로 둘을 좌우에 놓을 수가 있을까? 아니 어쩌면 이들은 헬렌의 삶에 좌우로 있지 않고 헬렌의 삶에 함께 있었던, 헬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앤 설리번으로만 알려져 있던 설리번 선생은 뒤에 메이시라는 성이 붙는다. 그가 유일하게 결혼하여 만든('얻은'이라는 말이 거슬린다) 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늘 헬렌 켈러의 삶에서 뒤에만 존재했던 이 사람이 헬렌의 삶 내내 함께 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

 

평생을 헬렌과 함께 살고 죽으면서도 헬렌의 삶을 걱정했던 사람. 그는 강인한 정신과 냉철한 지성으로 헬렌의 삶을 지배했다. 지배했다는 표현이 어색하다면 헬렌의 삶을 이끌었다고 해야 한다.

 

헬렌이 평생을 남들에게 드러내고 남들에게 인정받게 해주었던 사람. 그러나 자신은 헬렌의 뒤로 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 헬렌과 떨어진 삶을 생각도 하지 못했던 사람. 그는 헬렌과 함께 한 평생이 행복했을까? 때로는 그에게도 엄청난 갈등이 있었을테고, 헬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도 있었을텐데...

 

헬렌의 내면까지도 다루어서 헬렌의 알려져 있지 않은 인간적인 모습까지도 우리에게 알려주겠다는 이 평전에서도 설리번의 이러한 내면적 갈등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짐작은 할 수 있을 뿐이다. 그에게도 인간적인 고되,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욕구 등이 왜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헬렌의 삶과 자신의 삶을 하나로 묶을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고(다른 말로 하면 헬렌이 자신의 도움이 없으면 살기 힘들 거라는 점을 알고) 헬렌과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했으니...

 

이 점은 폴리 톰슨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앤 설리번이 죽은 뒤 폴리가 죽을 때까지 헬렌에게 앤 설리번의 역할을 했던 사람은 바로 폴리 톰슨이다. 죽어서도 헬렌과 앤과 함께 나란히 있는 그는 대부분의 헬렌 전기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헬렌의 말년에 앤 설리번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이 책의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그 당시 장애를 가진 여성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길은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 헬렌의 성공에는 헬렌과 함께 한 사람들의 희생(?아마도 사랑이라고 해야 하겠지)이 있었다는 사실.

 

헬렌도 우리가 성녀로 알고 있지만, 그에게도 사람의 욕구가 충만했다는 사실. 그런 욕구를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기에 남에게 의존해서 많이 억눌러야만 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지금 장애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우리가 장애 문제를 시혜의 관점에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사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욕구를 지닌 사람이라는 사실. 우리와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합교육. 함께 하는 삶. 요즘 장애 운동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들 아니던가. 이를 헬렌 켈러의 삶에서 찾아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헬렌의 삶에서 신비주의를 걷어내고 있는 이 책은 오히려 그래서 헬렌의 삶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 노력이. 그 시대에 남에게 의존해서 삶을 살 수밖에 없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 헬렌의 삶이 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헬렌의 자신의 처지에서 힘든 사람들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사회 전면에 나서기도 했다. 비록 남들은 헬렌에게서 그런 모습을 지우려고 했지만 말이다.

 

헬렌이 믿었다는 스베덴보리의 영성. 그것은 아마도 헬렌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극복하게 했을 것이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도 알려주었을 것이다.

 

적어도 영성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믿음을 가진다면 막 살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그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든, 아닌 사람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인간 헬렌 켈러를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주었고, 지금은 많이 나아진 듯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먼 장애 정책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주었다.

 

좋은 책이다. 이런 평전이 필요하다. 한 사람을 성인으로 만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약점만 나열하지도 않고, 그럼에도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자신을 처지를 둘러 보라.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행복할지 생각해 보라. 이 책은 그 점에서 시작하라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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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 4 - 나의 무직 시절 나남신서 173
김준엽 지음 / 나남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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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엽. 오래 전에 장정1,2-나의 광복군 시절을 읽었고, 오랜만에 그의 "장정"을 다 읽었다. 그리고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검색을 해봤다.

 

도대체 언제 돌아가셨더라. 내가 장정을 읽은 지가 꽤 됐는데... 물론 그 때는 1,2권 나의 광복군 시절만 읽었지만, 돌아가셨다는 기억이 없어서, 분명 돌아가셨을텐데... 하는 마음에.

 

얼마 전이다. 2011년이니. 그리고 이 때 대통령은 이명박이다. 인터넷을 찾아보았더니,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김준엽이라고 한다. 그럴까? 그렇게 존경한다면 존경하는 사람처럼 살아야 하지 않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고대 출신이니 고대 총장이었던 김준엽을 존경할 수야 있겠지만, 가장 존경한다고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오지랖이 넓다. 누가 누구를 가장 존경하는 것이 무슨 대수랴.

 

하지만, 일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제대로 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존경하는 인물이 제대로 된 삶을 산 사람이라야 한다. 그렇게 존경해도 제대로 살까 말까 한데, 말로만 존경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내용으로는 김준엽은 정말로 제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야 한다. 자신을 올리기 위해서 그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을 올리기 전에 이미 남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김준엽을 존경한다고 했을 때, 역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이 책의 공식 제목은 장정3-나의 무직시절이다. 이렇게 하여 김준엽의 이 마지막 장정은 1990년에 끝난다. 그가 총장에서 쫓겨나고 우리나라가 격변에 휩쓸릴 때, 즉 87민주화 운동과 대통령 직선제, 그리고 야권의 분열이 일어난 때.

 

이 때 그에게는 국무총리를 맡아달라는 접촉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야권과 여권에서 모두 다.

 

그가 지닌 이력이 화려하기도 하고, 삶이 책잡을 수가 없고, 또한 능력도 있고, 신망도 있으니, 어떤 쪽에서 보더라도 그가 섭외 일순위인 것은 확실하다. 누구라도 그랬을 거다.

 

이 때 그가 선택한 길은 자신이 20대에 결심한 것. 즉 학문으로 민족에 이바지한다. 정치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

 

그래서 그는 국무총리를 고사한 일로 인하여 더욱 존경을 받게 된다. 국무총리 제의가 들어오면 자신의 능력이나 살아온 길을 생각하지 않고 덥석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곤욕을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결심을 끝까지 지켜나간 그 뚝심에는 존경하는 마음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학문으로(그는 역사학자다. 중국사 전공이고, 또한 공산주의 운동사에 관한 책도 썼다), 교육으로 우리나라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생각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이바지한 것은 바로 그의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라고 했다. 역사에 산다는 것은 어떤 신을 믿든 역사에는 진리가 있고, 그 진리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지니고 산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역사에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앞으로 전개될 시대에 대해서도 통찰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는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제대로 된 공부를 한다면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 산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실천하려고 평생 노력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원로라고 부른다. 이런 원로들이 사회에 존재하는 한, 사회는 함부로 망가지지 않는다. 여기에 김준엽 같은 사람이 바로 진짜 보수다. 요즘 자칭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 말고. 이런 보수들이 있을 때 사회는 건강해진다.

 

진짜 보수는 진보를 배격하지 않으니까. 함께 가야 하는 것이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을 아니까.

 

지금 우리 사회, 그가 떠난 지 2년이 지났는데, 과연 원로가 있는가? 보수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자신을 걸고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쓴소리를 힘있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는가. 자칭 보수라고 하고 있는 사람 중에서.

 

그래서 그가 더욱 그리워진다. 지금 이 시대에. 역사에 살아야 한다는 그의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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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 3 - 나의 대학총장 시절 나남신서 600
김준엽 지음 / 나남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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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80년대 대학가. 이 때 대학가에서는 총장사퇴 운동이 많았다. 주로 어용총장 사퇴하라는 구호가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대학의 가장 큰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학문의 전당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학 운영의 총책임을 맡은 총장을 도저히 믿고 따르지 못하겠다고 사퇴하라고 시위를 하던 시절. 그만큼 대학은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고, 총장은, 특히 주요대학의 총장은 관료로 가는 지름길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일례로 당시 서울대총장들은 문교부(요즘은 교육부)장관으로 가거나 국무총리가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은 지금도 그러하지만... 이들이 대학의 발전이나 학생들의 학업 또는 학문의 전당으로써 대학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모습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이 때 김준엽은 고대 총장으로 부임하여 고대의 정상화, 세계화, 그리고 대학의 자율화를 위해서 힘쓴다. 그리고 그는 문교부의 압려으로 사퇴를 하게 된다. 4년이라는 임기를 채우지도 못하고.

 

이것이 바로 그가 '참스승' 소리를 듣는 이유가 된다. 다른 총장들은 사퇴하라는 시위를 받았던데 비해 김준엽은 사퇴 반대 시위를 학생들로부터 받게 된다. 그가 대학이 자율성과 학생들의 자치, 그리고 고대의 발전에 기여를 했다는 것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내 딴에는 대학의 존엄과 대학의 자율, 그리고 교권 확립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며 또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발전과 대학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으로 나는 믿고 있다."(292쪽)

"나는 근본적으로 학생들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은 학교에 있을 필요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312쪽)

 

그가 고대의 발전을 위해서 한 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학교육 역시 돈이 없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재단이 얼마나 대학 교육에 관심이 없는지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총장이 외부의 기부금을 모아서 대학 건물을 증축, 신축하는 일을 도맡아 했으며, 재단에서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 지금도 동문회가 가장 끈끈한 학교로 고대가 꼽히지만, 이 때 재단, 학교, 동문들이 삼위일체가 되어 대학시설을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게끔 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재단이 기금을 유용하지는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괜찮은 재단이라고 김준엽 총장이 말하고 있으니. 우리나라 사학재단의 비리가 예전에는 얼마나 심했는지 알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는 재단으로부터 학교 행정을 독립시켜서 고대를 학문의 전당이 되게 했으며, 학교를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는 데에서만 고대인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고대 교수로서 학생들의 존경을 받아왔으며, 학문적 업적도 뛰어났고, 또 광복군 출신이라는 민족 고대라는 이름에 걸맞은 행위를 했으며, 총장이 된 이후에는 학생들을 자신의 자식처럼 생각하고 학교를 운영했다는 데에서 더 많은 존경을 받는다.

 

문교당국의 학생징계 압력에도 자신의 원칙대로 밀고나가는 소신. 그리고 학도호국단 대신 총학생회가 필요하다는 소신, 평교수회가 결성되어야 한다는 그런 믿음. 무엇보다도 문교 당국에 맞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용기.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 힘. 이런 것들이 지금의 민주주의 초석이 아니겠는가.

 

이런 활동들을 했기에, 다른 대학에서 총장 퇴진 운동이 벌어질 때, 고대에서는 총장 사퇴 반대 운동이 벌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가 참 스승으로서 존재했기에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지금도 이런 총장이 그리워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지.

 

80년대 초, 치열했던 민주화 운동을 고대라는, 그것도 고대 총장이라는 사람의 눈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김준엽의 총장 시절 무용담이 아니라, 군사독재시절 대학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과 교수들, 총장들이 자신들의 교육 이념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게 되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와,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가 어떻게 민주화를 이루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총장. 이런 교수. 아니 이런 어른이 있어야 사회가 거꾸로 가지 않는다. 지금은 예전처럼 대학생들이 사회참여를 활발히 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식인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자세, 책임은 면할 수가 없다.

 

그런 지식인의 책임에 대해서 일깨워주는 책이니, 그는 고대인의 참 스승만이 아니라 우리의 참스승이기도 하다.

 

참, 이 책은 순서대로 읽어도 좋다. 그의 "정1,2" 광복군 시절에 관한 이야기니까. 그런데, 그 시절이 너무 멀다고 생각하면 이 책을 먼저 읽어도 좋다. 어차피 "장정1,2권"은 장준하의 "돌베개"와 함께 읽는 것이 좋으니까.

 

80년대는 우리가 충분히 극복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과연 극복했을까 요즘은 의문이 든다. 그래서 김준엽과 같은 어른이 더욱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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