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 - 권력의 감시자는 왜 눈먼 왕이 되었는가
제임스 맥그래스 모리스 지음, 추선영 옮김 / 시공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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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다. 언론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라고 알고 있었다. 심심치 않게 올해의 퓰리처상은 누구누구라는 말이 나왔고, 또 어떤 사람을 소개하는 글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누구라는 말이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이 몇 가지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에게 가장 잘 알려진 상이 노벨상이고, 수학분야에서는 필즈상이 있다고 하고, 최근에는 소설가 한강이 딴 상이 또 인구에 회자되고 있었으니...

 

상을 만든 사람은 자신의 이름도 영원히 남기고 또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도 하는 일석이조의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퓰리처. 그냥 언론부분 상을 제정한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그 사람의 평전이다. 그것도 최근에 나온.

 

세월이 흐르면서 한 사람에 대한 기록이 더 많이 밝혀지곤 하는데, 그런 사실들을 토대로 평전을 쓰면 후대로 올수록 좀더 정확한 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언론 분야에서 활동한 사람을 다루는 전기는 정확해야 한다. 언론은 첫째도 사실을 정확하게 보도해야 하고, 둘째도 사실을 정확하게 보도해야 하면, 셋째도 사실을 정확하게 보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이 책에 여러 번 나온다. 퓰리처가 언론사를 운영했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지만, 그만큼 그는 상이름으로만 내게 존재했지, 구체적으로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그가 신문사를 운영했고, 그 신문사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사실, 그 부의 일부가 상을 제정하는 비용으로 쓰였다는 것... 그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퓰리처가 늘 주장하는 것, "정확, 정확, 정확")

 

많은 자료들이 발굴되었을테니, 퓰리처란 사람에 대한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다고 믿고 이 책을 읽어도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책의 내용도 방대하다. 퓰리처란 사람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으니... 방대할 수밖에 없겠지만...

 

언론인으로서 퓰리처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명확하게 드러냈고, 그렇다고 사실을 왜곡하는 보도를 하지는 않으려 했으며 (이것은 정확하지 않다. 두고두고 밝혀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진실 보도를 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은 이 책 곳곳에서 강조되고 있다) 힘이 없는 약자의 편을 들려고 했다.

 

신문에서 자본가들, 부패한 관료들, 정치인들을 가차없이 비판하는 모습에서 이 점을 알 수 있는데... 그럼에도 자본가가 된 퓰리처는 자신이 비판한 행동들을 따라하게 된다.

 

개인의 신념과 자본가로서의 행동이 일치되고 있지 않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참 힘든 일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강조하지 않았던가. 개인으로서의 자신의 사상을 사회적 공인으로서의 자신과 일치시키려는 모습. 그래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남들보다 권력을 지닌 사람이 지켜야 할 덕목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점에서 퓰리처는 존경받을 만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나중에 엄청나게 번 돈을 가지고 자신이 비판했던 재벌들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기 때문이다. 일반 서민이라면 엄두도 못 낼 행동들을 하니.

 

하지만 이런 점들을 떠나 딱 한 가지 이 책에서 왜 퓰리처상이 권위 있는 상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점이 있다.

 

그는 다른 것은 몰라도 정치적 위협으로부터 언론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아 그에게 명예훼손으로 기소를 당하고도 끝까지 싸우는 모습, 그래서 연방법으로 언론사를 명예훼손으로 기소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점.

 

결국 언론은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언론을 통해 정치 개혁을 할 수 있고, 그것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그런 변화는 특히 힘이 없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쪽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점에서 칭찬받을 만하다.

 

개인적 삶이야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독선적인 성격과 운영방법도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어떤 외적인 압력에도 진실을 보도하려는 언론의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 그것믄 본받아야 한다. 그래서 더 퓰리처상이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엄청나게 방대한 분량이긴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기레기'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언론들이 얼마나 많은가. '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언론인의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퓰리처가 활약했던 1880 - 1900년대에도 이런 선정적인 기사만으로 쓰는, 확인도 안 된 기사만을 쓰는 기레기들은 있었다. '기레기'들이 판치느냐 아니냐가 바로 언론이 제대로 섰느냐 서지 않았느냐의 기준이 될 뿐이지)

 

적어도 언론인은 이래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언론인들이 있었고, 그분의 이름을 딴 언론상도 있지만.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너무도 잘 읽었다. 알아간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 퓰리처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 책이기도 하고. 그리고 언론인 퓰리처와 사업가 퓰리처, 개인 퓰리처가 참으로 다른 삶을 살았음을 알게 한 책이기도 하고. 감사한 일이다. 이런 책을 받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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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 언더그라운드의 전설 찰스 부카우스키의 말년 일기
찰스 부카우스키 지음, 설준규 옮김, 로버트 크럼 그림 / 모멘토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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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부카우스키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 다른 책을 읽다가 이 이름이 나오고, 이 책에 대한 소개글이 있어서 과연 죽음을 눈 앞에 둔 늙은 작가의 일기는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이 책을 읽게 했다.

 

좋은 책이란 다른 책으로 자연스레 손길이 가도록 하는 책이라고 하는 말이 맞는가 보다. 이 책을 소개해준 책을 보고, 부카우스키라는 사람의 글을 읽게 되었으니.

 

제목도 참 잘 붙였다. 원래 제목은 이것이 아니라, '선장은 점심 먹으러 나가고 선원들이 배를 접수하다'라고 하는데, 일본어 판과 우리나라 판에는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란 제목을 붙였다. (183쪽)

 

70살이 넘은 노작가가 자신의 일상을 담담하게 일기로 쓴 글이니, 이 제목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변산에서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 윤구병도 나이 70이 되자 이제는 어떻게 죽어도 자연사로구나라고 했지 않은가.

 

나이 70이면 종심(從心)이다. 공자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마음에 따르면 되는 나이. 이미 세상을 살 만큼 살았기에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해도 좋을 나이. 자연의 순리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맡겨도 좋을 나이 아닌가.

 

그래서 70이 넘어서 쓴 글에는 쓴 사람의 인생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부카우스키의 글을 읽다보면 도대체 노인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여전히 술을 많이 마시고, 너무도 자주 경마장에 가며, 세상일에 대해 또 자신의 일에 대해 이렇게 직설적으로 글을 쓸 수 있나 싶을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순간순간 죽음이라는 놈이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작가는 이를 너무도 친숙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구절을 보자.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다. 제 자신의 죽음이건 남의 죽음이건. 사람들에게 죽음은 충격이고 공포다. 뜻밖의 엄청난 사건 같다. 염병, 어디 그래서 되겠나. 난 죽음을 왼쪽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때때로 꺼내서 말을 건다. "이봐, 자기, 어찌 지내? 언제 날 데리러 올 거야? 준비하고 있을게."

  꽃이 피어나는 것이 애도할 일이 아니듯, 죽음도 애도할 일이 아니다. 끔찍한 건 죽음이 아니라 인간들이 죽기까지 살아가는 삶, 또는 살아보지 못하는 삶이다. 인간들은 제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제 삶에 오줌을 싸댄다.    17쪽.

 

이런 자세를 지닌 사람은 삶을 즐길 수밖에 없다. 그에게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살아있는 순간이고, 죽음과 함께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늘 자신의 왼쪽 주머니에 있다.

 

함께 살아간다. 그러니 어떻게 현재의 삶을 막 살 수 있겠는가. 시간을 어떻게 막 죽일 수 있겠는가. 이때 시간을 죽인다는 의미는 자신이 하기 싫은 일에 끌려다니는 일이다.

 

작가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를 만들자는 제의에 처음에 혹 했다가, 이내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결국 취소하고 만다. 그만큼 자신이 하기 싫은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피하려고 한다.

 

이미 70이 넘었으니 하기 싫은 일을 어떻게 하겠는가. 바로 종심(從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일기를 읽으면 노인네가 쓴 글이라 죽음이 늘 곁에 있으니, 칙칙할 거라고 생각하고, 인생에 대한 심오한 성찰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싹 사라지고 만다.

 

삶에는 나이가 필요없다. 그냥 자신이 얼마나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충실하게 살았느냐다. 늙었다고 삶이 유쾌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젊었다고 삶이 유쾌한 것만도 아니다.

 

부카우스키는 이 일기에도 나오지만 젊었을 때는 노숙에 알콜 중독에 별 일을 다 해봤다고 하는데... 이는 나이 먹어서도 술을 많이 마시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데... 이런 일들이 참으로 경쾌하게 (심지어 술 마시고 돌아와 계단에서 넘어져 자신의 머리가 깨지는 일을 당하기도 한다 - 168쪽) 표현되어 있다.

 

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삶에 유쾌하게 펼쳐지고, 그래, 인생이란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이게 죽음을 잘 준비하는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인생 말년의 일기... 참, 유쾌한 일기다. 그래서 읽으면서 기분이 상쾌해진다. 인생이란 이렇듯 현재에 충실하면 되는 것을... 현재에 충실할 때 죽음은 주머니 속에서 얌전히 함께 삶을 즐기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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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아니다 - 프란츠 파농 평전
패트릭 엘렌 지음, 곽명단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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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잘못 알고 있을 수 있었지 싶을 정도로 파농에 대해서 무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약력을 자세히 보지도 않고 그가 알제리 독립 투쟁에 참여했고, 흑인의 입장에서 백인을 비판한 것만이 아니라, 백인을 따라하려는 흑인도 비판했다는 사실에, 당연히 알제리 사람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가 프랑스 식민지였던 곳에서 태어났고, 알제리 독립 투쟁에 참여도 했지만, 그는 본토 출신도 아니고 알제리 출신도 아닌 서인도제도의 마르티니크라는 섬에서 태어났다. 섬나라라고 하면 되나?

 

아니 섬나라가 아니라 프랑스의 한 주라고 하니, 우리나라 제주도쯤 된다고 보면 되겠다. 흑인인 아버지와 혼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파농.

 

형제들 중에서 유난히 까만 피부색을 지녔다고 하고,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생각을 남 앞에서 굴하지 않고 펼쳤다고 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지녔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때 비시정권에 영합하는 해군들이 마르티니크 섬에서 인종차별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지만, 자신이 조국이라고 생각하는 프랑스의 자유를 위해 의용군으로 참전한다.

 

하지만 그가 의용군으로 참전하면서 느낀 것은 자신은 흑인도 백인도 아니라는 사실. 프랑스에서 그들은 프랑스 군인으로 참전하여 공을 세우고 훈장도 받았지만, 오히려 이탈리아 포로들보다도 더 못한 대우를 프랑스 여인들에게 받게 된다.

 

그들은 검둥이일 뿐이다. 이 검둥이들이 출신지에 따라서 또 차별을 받고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 또 차별을 하니 그야말로 그의 책 이름대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인 셈이다.

 

이런 차별을 전쟁이 끝난 뒤 마르티니크 섬에 도착한 뒤 고향의 사람들에게서 겪게 된다. 그는 ㅍ프랑스에서는 검둥이에 불과했지만, 이 섬에서는 또다른 귀족계층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백인인가? 흑인인가? 파농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흑인이자, 백인이라고.

 

결국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고 의사가 되지만 역시 그에게는 차별이 그치지 않는다. 그가 택한 길은 알제리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것.

 

정신과 의사로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독립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불행하게도 젊은 나이에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뜨고 만다. 그의 나이 겨우 36세.

 

한창 일할 나이다. 한창 저술할 나이다. 그가 남긴 책들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식민지 해방 투쟁은 물론이고 인종 차별에 관해서도, 또 약자들 내부에서 일어나는 차별에 관해서도 그의 저서는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아마도 이것은 자신의 경험이 그의 책에 잘 녹아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표면적으로 식민지들은 거의 사라렸다. 대부분이 독립국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이것은 표면적인 독립일 뿐이다. 이들 독립국들이 내면적으로 얼마나 식민화 되었는지... 비록 정치적으로는 독립했을지 모르지만, 문화나 다른 제도면에서 아직도 식민모국을 답습하고, 그것을 추종하고 있는 모습이 많지 않은가.

 

짧은 생애, 그러나 지대한 영향, 이것이 바로 파농의 삶이었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그를 어느 특정한 인종이라고 국한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이 책의 제목인 '나는 내가 아니다'로 붙였을테고.

 

다만, 파농의 사상에는 동감이 되지만 그의 태도에는 동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 책에서도 나오지만 파농은 자신의 생각을 밀고나갈 생각을 했지,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을 잘 하지 않았나 싶다.

 

정신병원을 개조하는 일에서 그렇다. 그는 막무가내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을 밀어붙인다. 그가 옳더라도 그 옳음을 설득하는 조금은 긴 과정을 거쳤다면 아마도 더 좋지 않았을까? 옳다고 언제까지나 자기 혼자 갈 수는 없고, 소수의 동조자들과만 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함께 하는 일에는 이런 태도를 보여 적들도 많았지만, 그와 반대로 그를 절대적으로 지지해주는 친구가 많았을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이런 태도가 글로 나타나서는 세계의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거리와 실천하려는 욕망을 자극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파농의 삶을 간략하고 명쾌하게 정리해주고 있어서, 우리가 그의 다른 저서들을 읽을 때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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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를 추억하며 그르니에 선집 2
장 그르니에 지음 / 민음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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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 관계에서 스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제자를 기리는 글. 그런 글들이 제법 있다. 먼저 떠오르는 글은 김억이 김소월에 대해서 쓴 글. 소월의 때이른 죽음을 안타까워 하며 스승이었던 김억이 소월에 대해 쓴 글이었는데...

 

장 그르니에. 우리나라에서는 "섬"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해진 사람. 그 책의 내용은 지금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많이 읽혔던 책이었다. 그리고 그 제목은 정현종의 시 '섬'을 떠올리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 전문)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 그 섬에 가고 싶은 사람, 결국 관계의 문제인데... 그르니에와 카뮈는 그 섬에서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들 사이에 있는 섬에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며 맺어간 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어느덧 동등한 관계로 발전해 간 그런 사이.

 

이들의 공통점은 알제리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점, 문학과 철학이 융합되어 있다는 점. 카뮈가 불의의 사고로 먼저 죽은 뒤, 그와의 관계로 인해 카뮈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게 된 그르니에.

 

어쩌면 카뮈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 중에 카뮈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그르니에이지 않을까 싶은데, 이 책에서 그는 카뮈를 잘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의 내면을 파헤치려는 글을 쓰지 않는다. 그냥 카뮈와 만나서 그에 대해서 느낀 점부터 시작하여 (고등학교 스승인 그르니에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카뮈를 방문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이때 카뮈는 상당히 반항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그르니에를 향한 반항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반항이라고, 카뮈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카뮈와 함께 한 활동들이 나오고 있다.

 

카뮈의 작품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그의 정치활동, 사회활동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카뮈와 관계된 소소한 이야기들을 기대하면 안 된다. 그르니에는 철저하게 그런 이야기를 이 책에서 배제하고 있다.

 

오로지 카뮈와 그의 작품, 그의 사상에 대해서 자기가 알고 듣고 느낀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제목이 그냥 '알베르 카뮈'인데, 우리나라 번역으로 '카미를 추억하며'로 번역한 것도 좋은 번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카뮈의 내면까지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이 겪은 카뮈, 자기와 함께 한 카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카뮈의 작품들을 다 읽은 다음에, 다 읽기가 사실 힘드니 몇 편이라도 읽은 다음에 읽으면 더 이해하기 쉽다.

 

카뮈가 더 친숙하게 다가오게 된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본인도 작품활동을 한 그르니에 글쓰기의 힘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 책을 읽으며 카뮈, 어느 쪽으로 이것이다, 이런 사람이다라고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생각, 그러나 정의의 편에 서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결코 사회의 문제에서 자신의 작품으로 도망친 사람이 아닌. 이 책의 말미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창작을 택했다.' (183쪽)

 

이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카뮈는 정의롭게 살기 위해 창작을 했다.'라고. 그르니에의 이 책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어지러운 시대, 이런 지식인.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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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 개정판 청소년평전 9
안토니 가우디 지음, 김나정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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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가우디다"라는 책을 보았다. 읽지는 못하고 읽고 싶은 책으로 정해두고 있기는 한데... 쉽사리 손 대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가우디라는 건축가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사람이고, 그의 건축은 곧 스페인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

 

가우디에 대해서는 건축을 다루는 책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언급하고 있기에 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가우디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긴 한 사람을 어떻게 전부 알겠는가?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남겨진 사실들을 토대로 한 사람의 생애를 정리할 필요는 있다. 물론 중요한 일을 중심으로.

 

이 책은 가우디의 출생부터 성장, 교육과정, 건축가로서의 업적,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청소년평전이라는 책 시리즈답게 청소년들이 쉽게 가우디라는 건축가에 대해서 알 수 있도록 쓴 책이다.

 

그래서 아쉬운 점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가우디를 다루고 있는 평전인데도 그의 건축 작품들이 사진으로 제시되지 않고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는 점이 가장 아쉽다. 물론 지면 상의 이유도 있고, 또 저작권이나 편집 비용 등이 있겠지만...

 

그래도 청소년들에게 가우디라는 건축가를 소개하는 책인데... 그의 대표적인 작품, 특히 구엘공원이라든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정도는 사진 소개를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유명한 작품들이 사진으로 자세히 소개되었다면 청소년들이 가우디의 건축에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가우디라는 건축가에 대해서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이 책을 높이 살 만하다. 가우디를 처음 접하는 청소년, 또 건축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가우디라는 건축가에 대해서 핵심적인 내용을 잘 전달해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의 건축에서 배울 점은 바로 자연을 무시하지 않은 것... 자연과 어울리는 건축을 했다는 점. 그래서 그는 산기슭에 집을 지을 때면 산을 깎고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산에 맞춰 집을 지었다는 사실, 그의 건축은 바다의 파도를 닮기도 하고, 신화를 현실의 구체적인 건물로 끌어오기도 했다는 점.

 

물론 그의 건축은 아무나 할 수 없고, 또 일반적인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집도 아니다. (물론 그도 건축주의 의뢰로 노동자들이 살 수 있는 공동주택을 건설하기는 했지만, 그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은 부유한 건축주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구엘 공원도 그의 후원자라고 할 수 있는 구엘이라는 귀족(?)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는가)

 

그는 그래서 보수주의의 대표적인 인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고 하는데... 보수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혔어도 그의 건축에 대한 열정,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어울리려고 하는 자세, 작은 것 하나에도 최선을 다하려는 그의 모습 등은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고, 그런 모습이 이 책에서 잘 나타나있다.

 

하여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가우디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 먼저 이 책을 읽으면 그의 생애 전반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를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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