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 3 - 나의 대학총장 시절 나남신서 600
김준엽 지음 / 나남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80년대 대학가. 이 때 대학가에서는 총장사퇴 운동이 많았다. 주로 어용총장 사퇴하라는 구호가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대학의 가장 큰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학문의 전당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학 운영의 총책임을 맡은 총장을 도저히 믿고 따르지 못하겠다고 사퇴하라고 시위를 하던 시절. 그만큼 대학은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고, 총장은, 특히 주요대학의 총장은 관료로 가는 지름길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일례로 당시 서울대총장들은 문교부(요즘은 교육부)장관으로 가거나 국무총리가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은 지금도 그러하지만... 이들이 대학의 발전이나 학생들의 학업 또는 학문의 전당으로써 대학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모습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이 때 김준엽은 고대 총장으로 부임하여 고대의 정상화, 세계화, 그리고 대학의 자율화를 위해서 힘쓴다. 그리고 그는 문교부의 압려으로 사퇴를 하게 된다. 4년이라는 임기를 채우지도 못하고.

 

이것이 바로 그가 '참스승' 소리를 듣는 이유가 된다. 다른 총장들은 사퇴하라는 시위를 받았던데 비해 김준엽은 사퇴 반대 시위를 학생들로부터 받게 된다. 그가 대학이 자율성과 학생들의 자치, 그리고 고대의 발전에 기여를 했다는 것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내 딴에는 대학의 존엄과 대학의 자율, 그리고 교권 확립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며 또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발전과 대학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으로 나는 믿고 있다."(292쪽)

"나는 근본적으로 학생들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은 학교에 있을 필요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312쪽)

 

그가 고대의 발전을 위해서 한 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학교육 역시 돈이 없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재단이 얼마나 대학 교육에 관심이 없는지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총장이 외부의 기부금을 모아서 대학 건물을 증축, 신축하는 일을 도맡아 했으며, 재단에서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 지금도 동문회가 가장 끈끈한 학교로 고대가 꼽히지만, 이 때 재단, 학교, 동문들이 삼위일체가 되어 대학시설을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게끔 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재단이 기금을 유용하지는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괜찮은 재단이라고 김준엽 총장이 말하고 있으니. 우리나라 사학재단의 비리가 예전에는 얼마나 심했는지 알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는 재단으로부터 학교 행정을 독립시켜서 고대를 학문의 전당이 되게 했으며, 학교를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는 데에서만 고대인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고대 교수로서 학생들의 존경을 받아왔으며, 학문적 업적도 뛰어났고, 또 광복군 출신이라는 민족 고대라는 이름에 걸맞은 행위를 했으며, 총장이 된 이후에는 학생들을 자신의 자식처럼 생각하고 학교를 운영했다는 데에서 더 많은 존경을 받는다.

 

문교당국의 학생징계 압력에도 자신의 원칙대로 밀고나가는 소신. 그리고 학도호국단 대신 총학생회가 필요하다는 소신, 평교수회가 결성되어야 한다는 그런 믿음. 무엇보다도 문교 당국에 맞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용기.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 힘. 이런 것들이 지금의 민주주의 초석이 아니겠는가.

 

이런 활동들을 했기에, 다른 대학에서 총장 퇴진 운동이 벌어질 때, 고대에서는 총장 사퇴 반대 운동이 벌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가 참 스승으로서 존재했기에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지금도 이런 총장이 그리워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지.

 

80년대 초, 치열했던 민주화 운동을 고대라는, 그것도 고대 총장이라는 사람의 눈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김준엽의 총장 시절 무용담이 아니라, 군사독재시절 대학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과 교수들, 총장들이 자신들의 교육 이념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게 되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와,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가 어떻게 민주화를 이루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총장. 이런 교수. 아니 이런 어른이 있어야 사회가 거꾸로 가지 않는다. 지금은 예전처럼 대학생들이 사회참여를 활발히 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식인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자세, 책임은 면할 수가 없다.

 

그런 지식인의 책임에 대해서 일깨워주는 책이니, 그는 고대인의 참 스승만이 아니라 우리의 참스승이기도 하다.

 

참, 이 책은 순서대로 읽어도 좋다. 그의 "정1,2" 광복군 시절에 관한 이야기니까. 그런데, 그 시절이 너무 멀다고 생각하면 이 책을 먼저 읽어도 좋다. 어차피 "장정1,2권"은 장준하의 "돌베개"와 함께 읽는 것이 좋으니까.

 

80년대는 우리가 충분히 극복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과연 극복했을까 요즘은 의문이 든다. 그래서 김준엽과 같은 어른이 더욱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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