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한 번만 더 날자꾸나 우리학교 작가탐구클럽
김예리 지음 / 우리학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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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제대로 읽지는 않지만 이름만은 기억하는 작가. 그가 아마 이상이 아닐까 싶다.

 

이상이라는 이름이 필명이고, 본명이 김해경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고, 그의 대표작이 소설로는 "날개"이고, 시로는 "오감도"라고 하는데, 정작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은 경우.

 

작가가 작품보다 훨씬 더 유명한 경우다. 이상은.

 

그의 삶 자체가 파란만장했고, 또 너무도 일찍 세상을 떴기에 신비주의까지 생기고, 그의 작품이 초현실주의적이라고 하니 더 신비감이 생기는 작가.

 

어릴 적 큰아버지 집으로 양자 들어가고, 본집은 가난 그 자체고, 그는 요즘 말로 하면 서울공대에 해당하는 경성고공을 나와 총독부 건축기사가 되었지만, 그림에 빠지기도 하고, 결핵에 걸려 목숨이 위태롭기도 하고, 금홍이를 비롯한 여러 여자들과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 동경에 가서 죽은 삶.

 

자신의 삶을 소설로 옮겨 놓았다고 볼 수 있는 "봉별기", "종생기"가 있으니 정말 특이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비극일 것이다. 그는 일제시대가 시작하던 해에 태어나서, 해방을 보지 못하고 스물 여덟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떴으니, 얼핏 보면 그의 삶은 비극이다. 그러나 과연 비극일까? 그가 하지 못한 일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하여 그는 종생기에서 자신의 죽음은 '노사'라고 한다. 충분히 살았다는 뜻이다. 아니, 오히려 늦었다는 뜻이기도 하리라. 오죽했으면 김유정을 찾아가 함께 자살하자고까지 했을까.

 

이런 그의 삶은 우리에게 흥미를 준다. 그럼에도 이 흥미가 작가에서 끝난다. 작품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그런 이유는 그의 작품이 읽기에 힘들기 때문이다.

 

내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선 그는 띄어쓰기를 무시했다. 그러니 띄어쓰기에 익숙한 우리의 눈이 자꾸 글자들을 겹치게 읽어낸다. 읽기에서 턱 턱 장애물에 부딪치니 내용 파악은 뒷전이다. 이것이 이상의 작품을 우리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참, 나.

 

이런 이상에 대해서 좀더 쉽게 설명해주려는 의도로 만든 책이 바로 "우리학교 작가클럽" 시리즈의 한 권인 이 책이다.

 

이상의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날개에서 구절을 따서 '한 번만 더 날자꾸나'라고 했다. 이상이라는 작가를 작품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물론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같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으면 이상에 대해서 가장 기본적인 지식을 전해주겠다는 의도로 썼으면 좋았을텐데, 무언가 좀 전문적인 냄새가 난다.

 

대학교수가 써서 그런가? 대학생을 가르치던 사람이 중고교 학생들이 어느 수준이 되어야 잘 읽는지 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이건 중고교생들이 읽기에는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중고등학교 교사와 공동작업을 해서 편제나 문체, 또는 내용을 조금 바꾸었으면 이상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학생들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이상의 작품이 충분히 실려 있고, 그의 출생에서 죽음까지를 연대기적으로 다루고 있기에 끝까지 읽기만 한다면 이상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책이다.

 

더 많은 내용을 채워가는 것은 그 다음 일이고. 그러니 우선 읽어 보라. 자꾸 읽어야 한다. 읽어서 뇌를 자극해야 한다. 그래야 이상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덧글

 

하나. 139쪽에 마지막 부분 글들이 잘려 나갔다. 사진 자료에 가려 몇몇 단어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 점은 편집 과정의 실수일 듯.

 

. 이상의 작품은 대부분 띄어쓰기가 안 되어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한다.

 

셋. 구인회 이야기가 없다. 이상에게 구인회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던가. 박태원이든, 김기림이든, 김유정이든, 이태준이든... 그가 소설 "김유정"에서 쓴 내용은 이런 구인회 활동이 바탕이 되었다. 책의 맨 뒤에 '작가 탐구 활동에 구인회 이야기가 나오지만, 본문에서 언급하는 편이 훨씬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넷. 이상을 저항시인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과연 그런가? 시란 하나로 해석되지 않고, 다양하게 해석되어서 그 묘미가 살아난다지만, 이상의 시들이 첨예한 민족의식을 담고 있다는 얘기는 조금 멀리 나아간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책에서 이런 얘기는 넘어가도 되지 않았을까. 이런 얘기는 전문적인, 적어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에서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

 

저항시의 반열에 드는 시로 "열하약도 No.2(미정고)"와 "출판법"이 있다. 한 번 찾아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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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외롭고 높고 쓸쓸한 우리학교 작가탐구클럽
소래섭 지음 / 우리학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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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우리나라 시인들이나 평론가들이 좋아한다는 시인.

 

1988년이 지나서야 우리 곁으로 돌아온 시인.

 

단지 자신의 고향인 북한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한 때 금지되었던, 그래서 백석도 아니고, 본명인 백기행도 아니고, 백0으로 알려졌던 시인.

 

대학에 들어갔을 때 문학에 관한 책을 보다가 작가 이름에서 절망한 경우가 있었다.

 

정0용, 김0림, 임0, 김0천... 도대체 뭐야? 김0림 같은 경우는 아예 편석촌이라는 이름으로도 나왔으니, 편석촌이 김기림의 호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것이 바로 분단의 비극이었고, 우리 문학이 반쪽으로 흘러온 절름발이 문학사의 역사이기도 했다.

 

다행히 월북, 납북, 재북 문인들이 해금되었다. 그들의 작품은 이제 거리낌없이 우리들 곁에 머문다. 그들 작품을 읽고 연구하고, 그래서 정말로 우리 마음을 울리는 작품들만 우리 곁에 둘 수 있게 되었다.

 

읽을 수가 없어서 지녔던 신비주의도 없어졌고, 막연한 이데올로기 공세도 사라졌으니, 이제는 작가와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셈이다.

 

이 책은 그러한 작가들 중 한 명인 백석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설명해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아마도 고등학생 정도를 독자로 생각하고 썼으리라. 중학생이 읽기에는 내용이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용어들도 고등학생 정도는 되어야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백석'을 모르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대답할 것이다.

 

학교에서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으면, 하다못해 수능을 위해서 작가의 이름이나 작품의 이름을 외우지 않으면 우리는 문학가들에 대해서 잊고 만다. 관심을 두지 않는다.

 

노벨문학상 발표 때가 되면 그 때서야 반짝 우리나라 작가 중 누가 후보에 올랐다더라 라는 말들이 도는 정도이니, 과거의 인물인 백석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슬픈 일이지만.

 

백석은 당대에 '모던 보이'로 알려졌다. 상당히 멋을 부린, 그것도 영어 전공자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시는 정반대다. 시는 토속적인 우리나라 전통을 다루고 있다. 어쩌면 가장 앞서 나간 사람이 그 근본을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외모와 시가 반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나, 둘 다 어색하지 않게 어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시인이 바로 백석이다.

 

그의 삶을 학생들에게 시와 관련지어 알려주려고 했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만, 작가를 통해 그의 작품을 더욱 잘 이해하게 해준다는 목표에 비하면, 이 책은 시를 더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시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시를 통해 작가를 설명하고 있어서, 작가를 통해 시를 설명하는 편이 중고등학생들에게는 더 쉽게 다가갈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아쉽기는 하다.

 

그래도 최근에 안도현이 쓴 "백석 평전"이 그동안의 자료들을 집대성해서 백석에 대해서 알려주는 책이라면, 이 책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니 여기서 만족해도 될 듯하다.

 

백석이라는 사람이 일제시대에 살았는데, 모던 보이 소리를 들었고, 연애에 실패도 했으며, 만주에서도 살았고, 우리나라 토속적인, 특히 평안도 사투리를 시에 많이 썼다는 사실 정도는 확실히 머리에 들어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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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나는 말랄라 문학동네 청소년 25
말랄라 유사프자이.퍼트리샤 매코믹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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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랄라 유사프자이, 201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사실 언론에서 노벨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는 말랄라가 누군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인터넷에 그렇게 많이 말랄라 이야기가 나돌고 있었고, 또 말랄라 펀드라는 것도 있다는데, 그동안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우리나라 정세도 만만치 않아 세상 돌아가는 일에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인지, 원.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날 수 없기에 신문이나 다른 매체에서 봤을지라도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그냥 넘어간 것은 아닌지. 

 

그러나 세상에 고통받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실로 인해 내 행복 역시 완전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데... 지금 나와 먼 일이라고 관심이 없으면 독일의 니믤러가 쓴 시 내용처럼, 결국 내가 고통받을 때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어질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고통이 사라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말랄라 유사프자이.

 

파키스탄에서 태어난 소녀. 파키스탄은 이슬람을 믿고, 이슬람 중에서도 탈레반이라는 근본주의자들은 여성이 교육받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는데.

 

같은 사람이라도 여성은 남성의 보호하에 있어야만 하기에, 그들이 학교를 다니며 교육을 받는 것과, 얼굴을 내놓고 다니는 것 등등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슬람 근본주의에서는 특히.

 

그래서 공부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 말랄라에게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고, 그것은 인권을 침해하는 일에 해당된다.

 

어린 나이부터 말랄라는 여성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을 실천에 옮긴다. 여러 매체에 글도 기고하고, 인터뷰도 하고, 그래서 유명인사가 되고, 말랄라상이라는 것도 제정이 된다.

 

다만, 이런 일 때문에 탈레반에게 테러를 당하는데, 다행히 목숨을 잃지 않고, 영국의 버밍엄으로 옮겨 치료를 받아 지금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말랄라의 꿈.

 

거창하지 않다. 소박하다. 그런데 그 소박함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힘든 일이니...

 

말랄라는 여성도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대우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종교의 차이 때문에, 이념의 차이 때문에 서로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

 

이런 세상은 우리 누구나 꾸는 꿈이다. 우리가 당연히 꾸는 꿈이 누구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할 꿈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말랄라는 우리에게 이런 당연한 꿈이 당연하지 않음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당연하지 않음에 맞서 당연함이 되게 하려는 사람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여 이 책은 말랄라의 그런 꿈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꿈에 우리가 함께 해야 함을 저절로 느끼게 해주고 있다.

 

새해 시작,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희망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말랄라처럼, 우리들도 올 한 해희망을 지니고, 희망이 현실이 되도록 그렇게 지내면 좋겠다.

 

이 책과 더불어 프란체스코 다다모의 "난 두렵지 않아요"와 캐서린 라이어 하이디의 "트레버"도 함께 읽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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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처럼 서러워서 작은숲 에세이 4
김성동 지음 / 작은숲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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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럽다. 서럽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서러워서 마음 속에 새겨야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패자의 기록이기도 하다.

 

승자의 기록을 보면서 패자의 삶을 유추해내는 일, 그것이 역사이기도 하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진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현재를 알려면 과거를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역사는 우리 삶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기록이란 살아남은 자들이 기록한 것들이고, 그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되기 마련이니,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록을 곧이 곧대로 믿어서는 역사를 제대로 알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김성동은 소설가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작품은 "만다라"다. 그 작품 하나라도 그는 우리나라 소설사에 이름을 남기는데, 그가 역사 쪽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현대사 아리랑"

 

근대 우리나라에서 역사 속으로 스러져간 사람을 다룬 책. 그 책을 읽으면서 참 서러웠다. 이런 사람들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이번에 또 역사에세이라는 이름을 달고 그가 역사에 대해 쓴 책이 나왔다. 이건 무조건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는데, 혹 기존에 아는 얘기들이 반복되지는 않을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현대사 아리랑"에서 그가 보여준 관점에 믿음이 가기에 구입해 읽기 시작.

 

읽으면서 책을 손에서 뗄 수가 없다. 마음이 점점 서러워지는데, 정말 염불처럼 서러워지는데, 그런데도 책을 계속 읽게 된다.

 

여태까지 내가 알던 사실을 뒤집어주는 그의 역사에세이가 계속 글을 읽게 한다. 그렇다. 그는 지금까지 패자로 전락한 사람들을 다시 역사에 불러오고 있는 작업을 한 것이다.

 

역사에서 단 몇 줄, 또는 그나마도 없거나, 있어서 곡해되고 있는 사람들을 현대에 불러온다. 불러와서 봐라, 이것이 이 사람들의 진면목이다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있다.

 

하여 그들이 당시 역사에서는 패자에 불과하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당당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그는 말한다.

 

이른바 역사라는 것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승자들이 꾸려 가는 역사가 바로 오늘 이 현실인 것이라면, 역사의 패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패자의 남겨진 자식들은 말이다. 잘못된 역사를 탄식만 하고 있을 것인가? 마침내는 그리하여 '비단할아버지에 거적자손'이 되고 말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적어도 역사에서 밀려난 우리 할아버지들이 이루고자 하였던 세상이 어떤 세상이었던지는 알아야 한다. 그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고자 어떻게 움직이다가 어떻게 그리고 왜 쓰러지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의 진실만큼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자손된 도리가 아니겠는가. ('머리말'에서)

 

쓰라린 말이다. 역사에서 스러져간 사람들을 다시 살려내는 일. 그들이 비록 스러져갔을지언정,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음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일. 그것이 바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이고, 역사의 패자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는 승자들이 만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재는 승자와 패자의 만남과 다툼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온전히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승자만이 아닌 패자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역사를 온전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발판이 되는 책이다. 적어도 승자의 기록에 의해서 왜곡된 사람들에 대해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역사의 패자들을 보자.

 

백제 사람들, 특히 우리는 잊고 있지만 중국 대륙에 백제가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 궁예, 묘청, 신돈, 이징옥, 김개남, 김백선, 서장옥, 최서해, 남로당

 

이밖에도 이름 없는 농투산이들, 풀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거나 또는 역사에서 왜곡되거나 사라진 사람들이다. 이들을 현재로 다시 불러내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에 대해 이 책은 다시 알려주고 있다.

 

작가의 생각이겠지만 이벤트로 구입한 이 책의 속지에는 작가의 친필 사인(친필이겠지...)이 있다.

 

맹자가 한 말이라고 하는데...

 

군자유삼락이왕천하불여존언(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存焉)

(군자에겐 세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왕이 다스리는 천하는 이에 속하지 않는다)

 

그렇다. 작가가 꿈꾸는 세상이 왕이 다스리는 사회가 아니다. 이름없는 풀과 같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들이 함박 웃으며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온 사람들 중에는 그런 세상을 꿈꾼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비록 당시의 역사에서는 패자가 되었을지 몰라도 그들의 꿈꾸었던 세상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에 이루어야 할 우리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래서 패자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니, 그만큼 이 책은 우리에게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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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시대를 그린 화가, 고야
박홍규 지음 / 소나무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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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그림을 보면 스페인이 보이고, 우리나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술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재미 있다. 많은 사실을 알게 되고, 그림을 보는 재미도 느끼고, 이런 점에서 학창시절에 느끼지 못했던 미술에 대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데...

 

고야란 이름을 자주 보게 된다. 사실 예전에는 모르고 있던 화가이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화가이니.

 

그런데 그의 그림 중에 언급되는 그림들이 제법 있다. 어디선가 본 그림도 있고. 그렇다면 그는 중요한 화가? 이런 생각이 든다.

 

도서관에서 박홍규(그는 아나키스트라고 할 수 있다. 아나키즘에 관한 책이 그에 의해 많이 소개되었다)가 쓴 "고야"에 대한 책을 보았다. 그동안 고야에 대해 단편적으로 언급하고 넘어간 책들을 읽은 터라 잘됐다 싶어 빌려 읽기 시작.

 

화가에 대한 이야기, 그림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과는 좀 다르게 스페인의 역사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단순히 스페인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비교하면서(분명 대조가 아니라 비교다. 이렇게 스페인과 우리나라가 비슷한 줄은 몰랐다) 시작한다.

 

도대체 고야와 스페인의 역사, 그리고 우리나라가 어떻게 관련되기에 이렇게 하나 했더니, 화가는 그 시대를 벗어날 수 없으며 고야는 그 시대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작품으로 남긴 작가라고 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누드 그림 말고, 대부분의 그림은 스페인의 현실을, 스페인의 민중을 그린 작품들이니 스페인의 역사를 알아야, 고야가 살던 당시 혁명기의 스페인을 알아야 그 그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반도국가에서 비슷한 시기에 기나 긴 독재시대를 거쳤다는, 외국의 침략으로 백성들이 살해당했다는 그러한 공통점도 있고, 고야의 작품 두 점이 우리나라에서 전시 불가 판정을 받아 전시되지 못했다는 사실도 있으니, 작가가 우리나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왜 우리나라에는 고야와 같은 작가가 없는가고 한탄하고 있다. 왜 없겠는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다만, 그와 같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고, 고야 역시 당대에는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으니, 우리나라 화가들도 작품을 제대로 발표하지 못할 뿐이다.

 

2002년에 쓰여진 이 책은 그 전까지 우리나라 화가들의 서구취향, 또는 전통 한국취향으로 위장한 자기만족에 대해서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 때도 우리나라 화가들 역시 시대를 직시하고, 그 시대 상황을, 민중들의 모습을 작품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음 확실하다.

 

단지 고야처럼 성공적인 화가의 길을 걸은 사람이 아닐 뿐이지.

 

고야는 시골에서 태어나 아카데미에 두 번이나 떨어지는 고난을 겪는다. 그만큼 그는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발휘한 화가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부단한 노력으로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결국 궁정화가가 된다.

 

스페인에서 궁정화가가 된다는 얘기는 출세의 길에 들어섰다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고야는 왕실의 화려함을 자랑스레 표현하기 보다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궁정화가로서 지내면서도 민중들의 삶에 대해, 스페인 현실에 대해 풍자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 한다.

 

비록 발표를 못하고, 또 금지 당하기도 하지만, 그는 그런 그림을 포기하지 않고, 말년에는 보수 반동의 흐름을 견딜 수 없어 프랑스로 망명하여 그 곳에서 삶을 마감한다고 하는데...

 

궁정화가로서 출세의 길을 달리지만 그는 그가 처한 사회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고, 특히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중들의 삶에 눈감을 수 없었다고... 또 가톨릭의 횡포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마녀사냥이 계속되어지는 스페인의 현실에도 눈을 감을 수가 없어 그를 풍자화로 그려냈다고 하니...

 

그의 그림들을 보면 스페인의 근대를 알 수 있고, 전쟁이나 권력이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평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 고야의 그림들이, 그것도 민중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들이 많이 실린 것은 저자인 박홍규가 권력의 비민주성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고야의 민중성, 혁명성을 더 강조하고 있고, 이런 화가가 우리나라에도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고야처럼 궁정화가는 되지 않았더라도 우리에게도 민중화가들은 많이 있다. 언뜻 떠오르는 이름만 하여도 오윤, 홍성담, 임옥상, 강요배 등이 있으니... 우리도 스페인을 부러워만 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역시 우리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현실에 맞는 그림들을 만들어내는 화가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가 말하고 있는, 그래서 한 화가의 평전이지만 책의 앞뒤로 스페인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점은 우리가 잘 생각해야 한다.

 

스페인이 몇 번의 민주화를 이루어냈지만, 민주화 이후에 독재로 많이도 돌아갔듯이, 우리 역시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루어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과연 그런가, 정말 그런가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2년에도 이랬는데, 12년이 지난 지금, 과연 그런가?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가?

 

고야의 그림이 우리나라에 전시 불가 판정을 받았듯이(이 책에 의하면 그 그림은 '벌거벗은 마하'와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프린시페 비오 언덕의 총살'이다) 2014년 우리나라 광주에서, 민주화의 성지라 불리는 광주에서, 광주 정신을 계승하자고 그렇게 말하는 지금 홍성담과 몇몇이 그린 그림들이 광주 비엔날레에 전시되는 것을 거부당했다는 사실을 보면... 박홍규의 절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의 마지막 구절... 2014년에도 유효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그는 권력과 성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한다. 인간을 파괴하는 두 개의 악에 저항한다. 18세기 스페인이나 20세기 한국이나 그 두 가지는 인간을 파괴하는 두 개의 괴물을 상징한다. 그 저항으로 그는 두 장의 그림을 그렸고, 그것이 당대 스페인에서 금지당한 것처럼 20세기 한국에서도 금지 당한다. 한국은 아직도 권력과 성에 있어서는 미개국이다. 274-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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