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김재규 평전
문영심 지음 / 시사IN북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 그것도 부정적인 모습으로만. 너무도 오래 전 이야기이고, 또 제대로 다뤄주지도 않는다. 사람들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제가 본 부분만으로만 이야기한다. 그런 사람이 바로 김재규다.

 

별로 흥미도 없다. 대통령을 죽인 사람. 이정도다. 알고 있는 사실은. 젊은시절에는 김재규가 사형당한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직도 감옥에서 살아있겠지 하고 말았는데...

 

대통령을 죽였다고 그가 혼자 일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미국과 교감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이나 다른 외국으로 도피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 그래서 그렇게 사형을 시켰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사형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뿐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대통령을 죽였다고 해도 그 역시 그 대통령 밑에서 그 체제를 유지하게 하는데 큰 힘을 발휘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권력다툼.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또는 질책을 두려워해서 저지른 일. 이정도. 참 정보가 없기도 했다. 도대체 재판기록을 본 적도 없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 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잊혀진 사람. 아니 잊혀져야 할 사람. 그것이 바로 김재규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우연히 장군이라고 부르는 글을 보게 되었다. 글이라기보다는 그런 구절을 보았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장군이라고? 그는 중앙정보부장 아니었어? 중앙정보부장은 민간인이 하고, 보안사령관은 군인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만큼 정보가 부족했다. 그가 군단장 출신의 3성장군이었다는 사실. 그를 보좌한 비서관인 박흥주가 현역 대령이었다는 사실.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렇게 빈약한 정보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려고 했었나? 한홍구의 "유신"을 읽다가, 그 책의 저자가 김재규에 대해서 긍정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무언가 모르는 부분이 있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하들에게 겨우 30분 전에 거사를 알려주었다는 얘기를 "유신"에서 읽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됐다. 거사 직전 30분이라? 이게 말이 되나? 한 나라의 대통령을 제거하는 일인데...

 

사육신이 세조를 제거하기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공모를 했는데... 그래도 실패했는데... 이상하다? 뭔가가 있나? 겨우 30분 전에 얘기했는데 그 말을 따라? 제 목숨이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거.. 참...

 

김재규에 관한 글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막 솟아올랐다. 김재규에 대한 글을 읽는다고 그에 대해서 다 알지는 못하겠고, 모든 글은 자신의 관점에서 쓰여지니 읽으면서 정리할 부분도 많겠지만, 지금은 너무도 정보가 없기에 찾아 읽어야 했다.

 

검색어로 김재규를 쳤다. 제법 책이 나온다. 이걸 다 읽긴 좀 그렇고? 최근에 나온 책을 읽기로 한다. 그래도 최근 것이 더 많은 정보를 정리해서 알려줄 거라는 생각에...

 

추천사에 함세웅 신부가 있고, 강신옥 변호사가 있다. 이거 만만치 않은데... 이 분들은 유신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분들인데... 유신의 중심에 있던 김재규 평전에 추천사를 쓰다니...

 

점점 흥미가 인다. 읽어보기 시작한다. '평전'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작가가 드라마 작가 출신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정말 흥미롭다. 장면 장면이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진다.

 

그래서 그런지 전기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때의 사건을 재구성한 '그때 그 사건"을 읽는 느낌이 든다.  김재규 평전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김재규의 시간은 1979년에서 1980년이다. 채 일년이 되지 않는다.

 

그가 대통령을 죽이기 바로 직전부터 사형당하기까지가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이다. 여기에 김재규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그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던 박흥주, 박선호에 대한 이야기도 곳곳에서 나온다.

 

이렇게 셋이 이 책을 이끌어가는 인물이 된다. 10.26 이후에는 변호사들도 중심 인물로 나온다. 이 때는 한 편의 법정드라마가 된다.

 

앞부분은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본격 무협담같은 느낌을 준다면 뒷부분은 요즘 나온 영화 "변호인"을 보는 듯한 법정 장면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재판정에서 오고간 말들이 나오기에 객관적인(?) 자료가 제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장면에서 김재규라는 사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된다. 그가 한 일과 왜 했는지...

 

그럼에도 그는 잊혀져갔다. 아니 잊혀져야 했다. 그는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했지만, 또다른 유신의 자식들이 등장함을 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의 비극이었고, 그의 명령을 따랐던 사람들의 비극이었다.

 

유신의 심장은 멈추었지만, 또다른 유신의 자식들은 여전히 존재했고, 그들 앞에 그는 세워졌던 것이다. 이런 역사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의 말대로 4심이 있어야 한다.

 

유신시대에 있었던 인혁당재건위 사건(?)은 다시 심판을 받아 명예가 회복되었다. 이것이 바로 4심이다. 역사의 흐름에 의해서 올바름이 증명이 되는 것.  그는 그렇게 4심을 기대했다. 그 4심... 이제 30년도 넘게 흐른 지금... 서서히 준비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더 이상 자료가 사라지기 전에...

 

조금은 알겠다. 그에 대해서. 그는 10.26을 혁명이라 했지만, 그 자신도 바로 유신에 속한 사람이었음을 나중에는 알았겠지... 그것은 그가 벗어날 수 없는 멍에다. 그 멍에를 지고 그는 결행을 했다. 그 정도.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이 났는데...

 

하나는 삼국지가 생각났다. 삼국지.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남자라면 꼭 읽어야 할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명쾌하다. 여기에는 의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관계. 주군이 시키는 일이면 목숨을 걸고도 해야 하는 사람들.

 

겨우 30분 전에 부하들에게 통보했다고 하는데도 부하들은 그를 따랐다. 삼국지에 나오는 그런 유형의 행동들이다.

 

또 하나 채만식의 "태평천하"의 마지막 장 이름... '망진자 호야(亡秦者 胡也)'란 말. 진나라를 망하게 할 존재는 오랑캐라고 그래서 만리장성을 그렇게 쌓았다고 하는데, 그 놈의 호(胡)가 바로 진시황의 아들 이름이었다니...

 

절대권력은 역시 내부로부터 붕괴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김재규가 진정한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권력의 내부에 들어가 대통령을 설득해서 개혁을 하려고 해서는 안되었다는 생각도 했다. 왜냐면 안에 들어가는 순간, 자신도 이미 권력의 일부가 되어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의 내부에 들어가 권력을 개혁하겠다는 사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책을 읽은 지금... 내게는 10.26은 두 개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하나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 날짜를 이 책에서 자주 언급을 한다. 그러니 우리 역사에서 10.26은 두 개의 사건을 담고 있는 날짜다.

 

마치 9.11이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쿠테타로 붕괴시킨 날과 미국 무역센터 테러가 일어난 날이라는 두 개의 사건을 담고 있듯이.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가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한 것, 그리고 그것이 결코 사욕이 아니었음은 인정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지만...

 

역시, 역사라는 심판대에 4심을 맡겨야 할 듯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든 자료가 공개되고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