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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양장본)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잡스에 대한 길고 긴 여정을 끝냈다. 그의 일생이 900쪽에 가깝게 정리되어 있는 이 책. 파란만장한 삶을 산 그의 삶을 이 정도로 정리할 순 없겠지만, 무엇보다도 잡스가 의뢰한 전기라는 점에서, 잡스 생전에 수많은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전기라는 점에서 잡스에 대한 가장 정리가 잘 된 책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껏 전기는 그 사람이 죽고난 직후에 바로 읽지 않았다. 그만큼 그 사람과 거리가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몇 년이 지나고 그 때서도 그 사람이 생각이 나면 그 때서야 전기를 구입해서 읽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이 잡스 전기는 곧장 읽고 싶어졌다. 그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도 많았고, 그의 스탠퍼드 대학 연설문이 너무도 좋았고, 또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다 하는 물건들이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기에, 제품 설명회를 하는 모습이 너무도 당당하고 자신감 있어 보여서, 잡스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면 우리나라 삼성과 특허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대상의 최고경영자였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가 이룬 성과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다. 또한 그의 카리스마에 대해서도 말할 필요가 없다. 이는 이미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 아니던가. 하여 성과보다는 그에 대해 든 느낌으로만 이야기하자면. 

처음 부분부터 마음이 불편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어떻게 이렇게 오만방자하지? 입양이 되었으면 입양한 부모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최소한 그들을 힘들게는 하지 않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자신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모든 일을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나 하는 생각. 

애플을 창립하고 그가 경영 일선에 나선 모습도 역시 마음이 불편했다. 그를 중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모습, 아무리 어렸을 때 버려졌다는 트라우마가 있다고 하더라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 게다가 그가 창의적인 인물임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감싸기는 커녕 쓰레기라고 하는 모습은 영 다가오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을 저렇게 이분법으로 딱 자를 수가 있는가 싶기도 한데, 그는 오로지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에 그에게만은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밑에서 일하는 평범한 보통사람은 어떻게 되지? 그런 사람은 아예 애플 같은 회사에 들어가지 않으면 된다고? 그건 아니다. 보통 사람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회사가 되어야 하지 않나? 천재들만, 창의적인 사람들만 모인 회사가 과연 좋은 회사일까? 

여기에 잡스 특유의 "현실왜곡장"이 있다는데, 이는 사실을 호도하여 다른 결과를 낳게 하는 잡스만의 리더십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왜곡장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 현실 왜곡장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동 착취를 당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잡스의 말 한 마디로 직장을 잃었는지, 이 책에는 잘 나타나 있다. 물론 지은이는 이를 잡스의 성격으로 여기고 여기에 대한 옳다 그르다의 판단은 유보하고 있지만 말이다. 

잡스가 채식을 하고, 선불교에 심취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잡스는 자신의 사상과 직장에서의 모습이 너무도 다른 분열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의 모습 속에서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를 연상했다면.. 이건 나만 그런 걸까? 잡스 자신이 애플의 광고에서 빅 브라더에 대항하는 모습을 비췄다고 하는데, 나중에는 잡스 자신이 빅 브라더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인문학적, 예술적 제품으로 사회를 혁신하고 새로운 세계를 이끌어가길 바랐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는 성공했겠지만, 여기에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면 과연 스마트 폰 시대가 우리가 바라는 혁신적인 미래 세계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 인간을 기계에 종속되게 만들고 있지 않나? 지금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보라. 자신의 생각을 포기한채 오직 이런 기계에 매달려 지내고 있지는 않나? 이게 어떻게 인문학적 제품이고, 이런 모습이 어떻게 혁신적인 새로운 세상의 모습일까? 

이런 기계들이 잡스가 믿었다는 선불교에 통할까? 채식하고 통할까? 채식이나 선(禪)은 나와 다른 남을 포용하고, 나보다 못한 남과 함께 함으로써 잘남 못남을 떠나 같은 인간으로 함께 어울림을 추구하지 않나. 그러나 잡스는 사람을 그렇게 포용하지는 못했다는게 이 책에 나와 있는 사실이니...  

하지만 그는 기계에 종속당하지 않았다. 그가 디자인을 우선시하고, 이 디자인에 기술을 맞추라고 한데서 보듯이 그는 미적 생활을 상당히 중시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실용, 실용하는데, 이를 잡스가 들으면 "쓰레기들!"이라고 비웃지 않을까 싶다. 

그가 빌게이츠를 비판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는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우리도 잡스처럼 그러한 일탈문화를 경험해 봐야 하지 않아 했을 때, 과연 우리는 무엇이라 말해줄 수 있을까? 그래 그래야만 창의적인 인물이 돼 라고 하나? 아니면, 그건 범죄야 하나? 둘 다 옳지 않은 답임에는 분명한데... 

환각제나 히피문화가 꽉 짜여진, 또는 주어진 세계에서 탈출을 꿈꾸는 일종의 반항일 수 있지만, 제대로 된 반항이란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억압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에 맞서 대응을 할 때 반항, 저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환각제나 히피문화들은 저항이 아니라, 회피에 불과하지 않을까? 즉 자유란 이름을 띤 방종이지 않을까. 물론 잡스는 제자리로 돌아왔으니 그 때의 경험이 창의성을 살리는 쪽으로 작동을 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할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적당한 경험이란 도대체 어느 선까지일까? 이런 선 긋기가 이미 창의성을 억압하는 걸까? 잡스에 대한 책을 읽으며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이다. 

그의 제품 설명회는 부흥회와 같다고 말한다. 그만큼 그는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관객들을 매료시킨다는 의미다. 자신이 이미 제품에 매료된 상태에서 홍보하는 제품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홍보하는 제품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잡스는 그래서 제품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홍보를 하지 않고, 그가 홍보를 할 때에는 이미 제품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통제를 할 때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상태에서 그는 관객들도 통제하게 된다. 

결국 제품의 질만이 아니라, 제품을 홍보하는 과정도 역시 제품의 질과 연결이 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잡스이고, 이것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잡스에 열광하는 이유이다. 우리나라 어떤 경영자가 자신의 제품을 이토록 잘 알고, 이토록 열정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는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런 저런 점을 떠나 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꿔놓은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걸 인정한 상태에서 이제 우리는 그가 바꿔놓은 세상에서 우리가 좀더 인간적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잡스의 유산을 계승하는 방법일 것이다.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우리도 서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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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 - 신화가 된 여자
자넷 로우 지음, 신리나 옮김 / 청년정신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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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프라 윈프리 쇼의 주인공, 오프라 윈프리. 

토크쇼의 여왕이라는 소리를 듣고, 부와 명예를 다 획득한 여자라서 호기심이 발동했다기 보다는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었던 피디수첩과 연관되어서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광우병에 관한 왜곡보도라고, 사실을 왜곡했다고 재판에까지 간 방송이었고, 법원은 피디들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는데, 이들에 대한 방송사의 반응이 싸늘했다는 것이 윈프리를 생각나게 했다고 해야 한다. 

도대체 이 여자는 얼마나 힘이 있는가? 

윈프리 쇼에서 광우병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고, 그 일로 인해 윈프리는 법정에 서야 했다. 그리고 무죄판결을 받았다. 

윈프리 역시 자신이 방송한 내용에 대해서 부끄러워 하지 않았으며 당당하게 재판을 받았다. 자신이 정당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래서 그에 대한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민주주의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감없이 내보내며, 인정해 줄 수 있을 때 꽃 피울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기에, 우리나라와 상반된 반응을 보여주긴 했지만, 비슷한 구석도 있으리라는 생각에. 

신화가 된 여자라고 했는데, 난 신화가 된 여자가 아니라, 진정 사람이 된 여자 오프라 윈프리라고 해야 옳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하는 일이 과연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바꾸어 갈 수 있는가? 이런 생각들을 하고 그를 실천에 옮긴 사람이기에, 윈프리는 신화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많은 부와 명예를 획득했지만, 그것으로 다가 아니다. 그는 그 부와 명예를 세상을 위해서 쓸 줄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다운 사람이다. 

이 책은 윈프리에 대해서 마냥 찬양만 하지 않는다. 윈프리도 사람인지라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고 고뇌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일을 그 역시도 겪고 있다고, 다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윈프리는 우리보다 낫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모두가 윈프리를 찬양하지는 않는다고, 지지자만큼 적대자도 많다고 이 책은 이야기 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을 수 없기에, 오히려 그것이 윈프리를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한 명인 윈프리 이야기를 읽으며, 기가 죽을 필요는 없다. 그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므로. 

다만 그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는 사실을 우리가 명심한다면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사는 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짧은 글들을 주제별로 모아 내용을 이끌어가고 있어서 읽기에 편하다. 윈프리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먼저 읽으면 그에 대한 대략적인 감을 잡을 수 있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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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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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말이 막히면 사회는 죽는다. 

말이 살아야 사회도 산다.  

이렇듯 말은 사회의 건강 척도를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우린 얼마나 말의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가? 

혹, 말에 대한 자기 검열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기 검열이 이루어지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말에 대한 자기 검열, 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뜻을 거스를 수 없는 상태, 즉, 내 말이 아닌 남의 말로 살아가는 사회를 말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논쟁이란 없고, 오직 사활만이 있을 뿐이다. 말로 인해 더 좋은 방안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말에서 지면 자신과 자신의 집단이 몰락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 그런 사회에서는 발전이란 생각할 수도 없다. 

말들과 말들이 서로 부딪히고, 서로를 다듬고, 보듬어 더 좋은 말들을 생산해내도록 해야 하는데... 

윤휴... 

난, 이 사람 이름을 박세당과 같이 사문난적(斯文亂敵)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사문... 유학자들이 자신들을 일컫는 말.. 그러면 사문난적이란 유학을 어지럽히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유학을 어지럽힌다는 말이, 결국은 주자의 해석을 반대하면서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려는 사람이라니... 

공자도 아니고, 맹자도 아닌, 주자를 절대적인 자리에 올려놓고, 주자의 해석만이 바른 공자,맹자 해석인양 하고, 다른 해석을 내놓는 사람들을 사문난적이라 하여 배척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으니... 

윤휴가 중용을 자신의 뜻대로 해석했다고 송시열이 그렇게 미워했다니... 원...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하나의 해석에만 매달리는 사회는 경직된 사회, 더이상 발전할 수 없는 사회임을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실감하게 되었다고 할까. 

그냥 성리학에 대한 다른 학설을 주장한 사람만으로 알고 있던 내게 이 책은 윤휴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오히려 이 책은 윤휴의 사문난적의 모습보다는 정치가로서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윤휴가 뼛속까지 북벌을 주장하고, 북벌을 하기 위해서 여러 사회 개혁, 국방 개혁을 시도했다는 면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윤휴는 정적에게 미움을 사고, 결국은 이런 일들로 인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한몫하는 것이 바로 당쟁이니... 서인이면 서인, 남인이면 남인, 그리고 서인에서도 노론과 소론으로, 남인은 청남과 탁남으로 갈리고 있고, 이들은 자기 당의 일이라면 왜곡도 서슴지 않았으니... 당론이면 개인은 따라야 한다는 지금의 모습과 별다른 점이 없다. 

윤휴의 개혁방안은 놀라운 것이다. 이런 정책이 시행이 되었다면 아마도 우리나라는 일제시대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호패대신 지패를 쓰게 해서 사람들은 평등하다고 인식한 그, 그리고 서얼도 등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그. 또 그가 제시한 '호포제는 양반 사대부가도 모두 군포를 납부하자는 방안인 반면, 구산제는 양반 개개인의 숫자를 조사해 모두 군포를 내게 하자는 법(222쪽)'이라고 이 법이 시행이 되면 우리나라 세금이 늘고, 그러면 재정이 풍족해지고, 이는 백성들에게도 좋은 일이었을텐데... 백성에게는 좋았겠지만, 권력자들에게는 좋지 않았을테니... 

양반들이 들고 일어난 일은 당연한 일. 결국 양반들, 아니 권력가들의 반발에 이 정책은 제대로 시행도 되지 않고 폐지되고 만다. 

지금도 말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외치지만, 이것이 말뿐임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 이런 말로만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이 때부터 유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우리나라 사회지도층이 권리는 가지되, 의무는 가지지 않는 역사적인 연원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런 윤휴는 아마도 제거대상 1호였을 것이다. 그는 정치를 당략에 따라 하지 않고, 옳음에 따라 했으며, 정치의 기본을 백성에게 두었지, 권력자들에게 두지 않았기에...그 시대에 용납이 되지 않았으리라. 

다만 나는 윤휴의 북벌론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런 이유든 저런 이유든 전쟁이 일어나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일반 백성일진대, 어떻게 백성을 위한다면서, 수비형이 아닌 공격형 무장을 주장했을까. 

청나라에 치욕을 당했다치더라도, 이미 그 치욕은 전의 일이고, 나라의 부강과 백성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전쟁이라는, 북벌을 추진하기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정책을 펼치도록 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 시대적 한계이긴 하겠지만... 

이 책은 재미있게 읽힌다. 글쓴이의 글솜씨가 어렵게 될 수 있는 역사책을 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숙종이 윤휴를 그리도 중용하다가, 죽일 정도로 미워했는지에 대해서 이 책은 깊게 추적하지 않는다. 다만 숙종이 서인의 쿠테타를 두려워해 그러했으리라고 추측을 하고 있다. 또 이 책에서는 윤휴의 사상이, 도대체 어떤 면에서 다른 성리학자들과 다른지가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다만 주자의 해석만이 옳으냐 하는 말과, 중요의 장구를 바꾸어 놓은 것 정도만 나오는데... 어떤 점에서 다른지가 더 구체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점에서 이 책 내용과 제목인 침묵의 제국이라는 말이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윤휴가 죽게 되는 이유가 몇몇 단어 때문이라, 말로 인한 화이기에, 윤휴가 처형됨으로써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되지만... 

얼마나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 다른 생각들이 어떻게 탄압을 받았는지를 중심으로 썼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제목하고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고 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윤휴에 대해 이렇게 쉽게 읽히게 쓴 책은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한다. 

침묵의 세계... 어쩌면 지금 우리도 침묵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닫힌 말의 세계에 살면 안된다. 말은 해방되어야 한다. 그 점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덧말 

식년은 자(子), 묘(卯), 오(吾), 유(酉)자가 들어가는 해라고 했는데... 한자어들은 서로 통한다지만, 우리들이 알고 있는 십이간지는 오(吾)가 오(午)이어야 하지 않나... 오자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대중들이 읽는 책이라면 대중들이 많이 쓰는 한자어로 써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207쪽의 병오(丙吾)는 병오(丙午)로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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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셀레브리티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17
조약골 지음 / 텍스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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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에 이렇게 쓰여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아나키스트 조약골

그래서 제목이 운동권 셀레브리티인가 보다. 운동권의 유명인사쯤 되나?  

아니, 그는 결코 유명인사가 아니다. 그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유명 연예인 이름은 알아도, 그들의 신상은 알아도 조약골이라는 이름을 보통 사람들이 들어보았겠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약골은 운동권 내에서 유명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런저런 현장을 다녔던 사람에게 조약골은 '아, 그 사람' 하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누구? 이름이 왜 이래?'할 사람이다. 

이런 조약골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쓴 책이 이 책이다.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17번째 책으로 나왔다. 고은의 만인보, 민중의 소리에서 펴내는 만민보와는 달리, 이 만인보 시리즈는 해당하는 사람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젊은이들 중에 이 사회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젊은 만인보를 기획했으리라 추측을 하고, 이 책들을 읽으면 이렇게 다양하게 이 사회에 반응하면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만나게 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리라.  

이 책을 읽으면 조약골이 꽤 유명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리라. 그리고 자신의 시야가 더 넓어지리라.

조약골은 아나키스트라 칭해진단다. 아나키스트는 굳이 자신을 아나키스트로 한정하지 않는다. 조약골도 마찬가지다. 그 자신이 아나키스트라고 내세우지 않고, 어떤 때는 생태주의자이기도 하고...어떤 때는 뭐이기도 하고, 그 때 그 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의 삶은 어린 시절, 배봉산, 중랑천에서부터 생태적인 싹이 틔워졌고, 학창시절에는 건대사태(우리는 이렇게 부른다)를 목격하면서 국가권력의 폭력성을 깨달았으며, 학교 교육을 통해서도 억압된 현실만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생활을 하면서 강경대, 김귀정 열사의 일들을 겪으며 국가의 폭력성을 몸으로 체득하고, 이를 거부하는 행동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국가의 폭력을 거부하는 몸짓이 바로 아나키즘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아나키즘을 공부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의 행동을 만들어 나간다.  군대 거부 운동, 반전이 아닌 비전(非戰) 운동을 해야 한다는 깨달음도 얻고...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들에 그가 참여하게 된다. 대추리, 용산참사, 성미산 개발 반대, 두리반 등 그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늘 함께 한다. 그런 행동들이 그를 '운동권 셀레브리티'로 만들어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 책의 앞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엇을 위해, 내 삶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새로이 거듭나는 실험들을 통해 차근차근 나의 일상을 재미있게 구성해 보자. 그게 내 깨달음이자 혁명이었다." (11쪽) 

그렇다. 

그는 운동권이라고 희생을 한다는지, 무슨 종교적인 엄숙성을 띤다든지 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서 한단다. 재미있게 살려고 하고, 활동하는 일이 고통스러운 부분들도 있지만, 그것을 해방으로 여긴다고, 아니 그것이 자신에게는 해방이라고(227쪽) 한다. 

그가 이렇듯 힘든 현장에 계속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삶을 자신의 삶이라고, 그런 삶 밖에 있는 자신을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이는 희생도, 대가를 바라는 어떤 것도 아니고, 그냥 자신의 삶이니까, 이 삶 외에는 다른 삶을 생각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리라.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조약돌이 활동하는 시간과 겹치고, 아직도 우리나라는 이러한 사건들의 연속이니, 불행하게도 아직도 그가 더 활동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여기서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도 분명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으니, 우리가 아무리 눈 감으려 해도 우리 눈 앞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니, 단지 눈 감고 회피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청춘들의 이야기를 읽고, 들으면서 어떻게 눈감고 모른체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만큼 이 책은 직접 내세우지는 않지만,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자신의 삶에 가장 충실한 행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있다. 단, 자신을 희생한다는, 남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그런 마음을 지니고 행동을 하면 안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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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모던뽀이들 - 산책자 이상 씨와 그의 명랑한 벗들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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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바꾸면 많은 뜻이 있다. 그래서 조영남은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는 책을 통해 이상의 시를 해석하지 않았던가. 조영남이 쓴 제목에서는 이상(理想)이라는 말은 쓰이지 않았는데... 

우리에게 이상은 이상(理想)이다. 아직도 그는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치고 이상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김해경은 몰라도 우리는 이상은 알고 있다. 사실 이상의 본명이 김해경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냥 우리에게 이상은 김해경이 아니라 이상일 뿐이다. '오감도'라는 도대체 뭔 뜻인지도 모르는 시의 작가로, 아니면 '날개'라는 아주 유명한 소설의 작가로 말이다. 사실, '오감도'나 '날개'는 시험을 위해서 공부했지,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던 작품들이다. 그러니 이상이란 작가는 우리에게 이상한 작가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이상을 고등학교 때 '거울'이란 시를 통해 간신히 알고, 참 어려운 시인이네 하고 말았는데, 대학에 들어가서 김윤식의 "이상연구"를 읽고는 참 흥미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김윤식이 쓴 이상 관련 책들은 읽어보았는데... 김윤식의 화려한 글에 아, 하고 감탄만 하고...  

그를 연구하고 싶은 욕구는 있었으나, 워낙 수학, 과학 쪽에는 관심이 없는 관계로, 그가 건축을 했다는 사실은 수학, 과학 쪽의 지식이 있으며 그의 시를 해석하는 어떤 단초들을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이상은 내 관심의 저 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러다 작년에 조영남의 책을 읽었다. 대중가수로 우리에게 친숙한 조영남이 이상을 자신이 죽기 전에 꼭 한 번 연구해야 하는 작가로 삼고 있었다는, 그의 시를 청춘의 욕망으로 해석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역시 이상은 어떤 해석을 입혀도 제 나름의 구실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지니게 되었고. 

이상이 우리나라 국문학자들을 참 많이도 먹여살려주는구나 하는 생각도 더불어 하게 되고. 그러다 또 잊고 있었던 이상을 이 책 "이상과 모던뽀이들"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이상의 시나 소설을 해석한다기보다는 이상이라는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문적인 이상연구서라 해도 좋지만, 일반인들이, 그동안 이상은 너무 어려운 사람이라고 제쳐두었던 사람들에게 이상이란 이런 사람이야, 이래서 이상은 의미가 있어, 그의 친구들은 이런 사람들인데, 이런 면에서 중요해 하고 알려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책의 편제는 이상의 생애사와 일치하게 구성되어 있다.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담되, 그 사이사이에 작품과 친구들, 그리고 사회, 문화까지 담고 있다.

책의 중심은 이상인데, 이상을 중심으로 1930년대 근대 서울의 모습과, 그 서울에서 근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모던뽀이들)을 다루고 있어서 옛이야기를 접하는 듯한 친숙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특히 이상과 더불어 그를 가장 잘 이해해줬던 사람들인 구인회 사람들 중에서 이태준, 박태원, 김기림, 김유정을 자세히 다루고 있으며, 또한 이상의 후견인이자 친구인 구본웅까지 다뤄주고 있어서 이상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생부와 양부 사이, 근대와 현대 사이, 조선과 일제 사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자신의 삶을 걸고 문학활동을 해나갔던 이상. 

그의 고민과 그 고민들이 어떻게 작품으로 나타나는지를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상, 그가 아직도 이상(異常)한가? 아니, 그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같은 사람이되, 그 시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간 사람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이상은 이상(理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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