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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 4 - 나의 무직 시절 ㅣ 나남신서 173
김준엽 지음 / 나남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김준엽. 오래 전에 장정1,2-나의 광복군 시절을 읽었고, 오랜만에 그의 "장정"을 다 읽었다. 그리고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검색을 해봤다.
도대체 언제 돌아가셨더라. 내가 장정을 읽은 지가 꽤 됐는데... 물론 그 때는 1,2권 나의 광복군 시절만 읽었지만, 돌아가셨다는 기억이 없어서, 분명 돌아가셨을텐데... 하는 마음에.
얼마 전이다. 2011년이니. 그리고 이 때 대통령은 이명박이다. 인터넷을 찾아보았더니,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김준엽이라고 한다. 그럴까? 그렇게 존경한다면 존경하는 사람처럼 살아야 하지 않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고대 출신이니 고대 총장이었던 김준엽을 존경할 수야 있겠지만, 가장 존경한다고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오지랖이 넓다. 누가 누구를 가장 존경하는 것이 무슨 대수랴.
하지만, 일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제대로 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존경하는 인물이 제대로 된 삶을 산 사람이라야 한다. 그렇게 존경해도 제대로 살까 말까 한데, 말로만 존경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내용으로는 김준엽은 정말로 제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야 한다. 자신을 올리기 위해서 그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을 올리기 전에 이미 남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김준엽을 존경한다고 했을 때, 역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이 책의 공식 제목은 장정3-나의 무직시절이다. 이렇게 하여 김준엽의 이 마지막 장정은 1990년에 끝난다. 그가 총장에서 쫓겨나고 우리나라가 격변에 휩쓸릴 때, 즉 87민주화 운동과 대통령 직선제, 그리고 야권의 분열이 일어난 때.
이 때 그에게는 국무총리를 맡아달라는 접촉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야권과 여권에서 모두 다.
그가 지닌 이력이 화려하기도 하고, 삶이 책잡을 수가 없고, 또한 능력도 있고, 신망도 있으니, 어떤 쪽에서 보더라도 그가 섭외 일순위인 것은 확실하다. 누구라도 그랬을 거다.
이 때 그가 선택한 길은 자신이 20대에 결심한 것. 즉 학문으로 민족에 이바지한다. 정치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
그래서 그는 국무총리를 고사한 일로 인하여 더욱 존경을 받게 된다. 국무총리 제의가 들어오면 자신의 능력이나 살아온 길을 생각하지 않고 덥석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곤욕을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결심을 끝까지 지켜나간 그 뚝심에는 존경하는 마음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학문으로(그는 역사학자다. 중국사 전공이고, 또한 공산주의 운동사에 관한 책도 썼다), 교육으로 우리나라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생각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이바지한 것은 바로 그의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라고 했다. 역사에 산다는 것은 어떤 신을 믿든 역사에는 진리가 있고, 그 진리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지니고 산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역사에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앞으로 전개될 시대에 대해서도 통찰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는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제대로 된 공부를 한다면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 산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실천하려고 평생 노력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원로라고 부른다. 이런 원로들이 사회에 존재하는 한, 사회는 함부로 망가지지 않는다. 여기에 김준엽 같은 사람이 바로 진짜 보수다. 요즘 자칭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 말고. 이런 보수들이 있을 때 사회는 건강해진다.
진짜 보수는 진보를 배격하지 않으니까. 함께 가야 하는 것이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을 아니까.
지금 우리 사회, 그가 떠난 지 2년이 지났는데, 과연 원로가 있는가? 보수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자신을 걸고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쓴소리를 힘있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는가. 자칭 보수라고 하고 있는 사람 중에서.
그래서 그가 더욱 그리워진다. 지금 이 시대에. 역사에 살아야 한다는 그의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