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삶과 인권 이야기
박래군 지음 / 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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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가 박래군의 글을 모은 책이다. 자전적인 내용에서부터 우리나라 인권운동에 관련되었던 일, 그리고 앞으로의 희망을 담아내고 있는 책.

 

인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박래군이라는 이름을 모르지는 않겠지만 그는 인권센터인 '인권중심 사람'을 세우는데 기여를 했고, 지금은 소장으로 있다고 한다.

 

인권중심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다니면서 인권과 만나는 장으로 존재하고, 시민들의 성금으로 지어졌으며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불편함 없이 다닐 수 있도록 설계되어 건물 자체에서도 이미 인권의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제는 자신의 인생 3막을 준비하고 싶다고 한다. 이제 자신은 인권운동에서도 구세대라고. 새로운 세대에게 길을 비켜주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장강의 앞물은 도도히 흘러오는 뒷물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은 변화하고, 갈 길을 가기 때문이다. 중요한 자리를 빨리 후배들에게 넘겨주어야 새로운 기운이 생겨날 것이다. 292쪽

 

나는 인권운동 2세대 활동가다. ... 20년 전에는 인권운동 2세대가 선두주자였지만, 지금은 3세대 인권운동가들이 필요한 때다. 더욱 철저하게 인권감수성과 이론으로 무장된, 인권의 가치를 신념으로 갖고 오로지 인권운동으로 밥 먹고 사는 그런 운동가들이 새롭게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잘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놓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 역할을 다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294쪽

 

그런데...과연 우리의 인권상황이 나아졌는가? 박래군도 이 책에서 말하고 있지만 우리의 인권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제 구실을 못한 지 오래 되었으며, 자유권도 많이 침해당하고 있고, 사회권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게 후퇴하고 말았다.

 

생활이 아니라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 독재 시절에도 서울 한 복판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일이 드물었는데, 민주화가 되었다는 2000년대에 들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목숨을 잃었는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하루 42.6명이 자살하고(282쪽) 있다는 통계에서 보듯이 우리는 국민들의 생명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때문에 박래군이 인권활동가로서의 활동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벌써 30년 넘게 인권운동을 하는 2세대 활동가들이 여전히 활동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미 극복이 되어 3세대 활동가들이 다른 쟁점을 가지고 인권운동을 해야만 하는 이 때 아직도 우리는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지 과거의 망령이 아니라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박래군이 이야기하고 있듯이 인권운동은 소수의 활동가만이 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가 인권감수성을 지니고 인권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인권활동가들은 우리들이 인권감수성을 지닐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인권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우리는 적극적으로 들어야 한다. 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인권감수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그렇게 듣고 인권이 침해될 때 함께 나서야 한다. 다시는 에바다 같은 사태가, 양지마을 같은 사태가, 대추리, 쌍용자동차 같은 일이, 그리고 용산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한다.

 

인권활동 2세대들이 어려운 시대에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 인권운동을 하나의 운동으로 정립해 내었듯이, 3세대 활동가들은 그 토대 위에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운동은 인권활동가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바로 인권운동의 3기라고 할 수 있다.

 

앞부분 박래군이 살아온 길(인생 1막)을 읽으며 엄혹했던 7-80년대가 생각나 가슴이 아려오기도 했고, 인권운동에 투신한  시기(인생 2막)에 겪었던 일을 읽으며 그래 그렇게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인권을 침해했었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책의 표지에 있는 박래군의 사진처럼 환하게 웃는 그 얼굴을 그가 계속 지니고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책이다.

 

인권은 바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늘 사람 곁에 있다. 사람 곁에 있는 사람, 그 곁에 또 사람이 있다. 이것이 바로 '인권중심 사람'이다. 그리고 '인권중심 사람'에는 바로 우리들이 있다. 책의 제목처럼 사람곁에 사람곁에 사람... 바로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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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
라종일 지음 / 창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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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철.

기억하는 이름인가? 아는 이름인가? 이 사람을 안다면 우리나라 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이리라.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몰랐다. 도대체 강민철이 누구인지... 그의 본명이 강영철이라는데, 무엇을 한 사람인지. 우리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한 사람인지, 어느 시대에 활동한 사람인지...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북한 사람인지, 남한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광고에서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이라는 책이 나왔다. '어, 아웅산 사건!' 이것은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내 기억에도 또렷이 남아있고. 물론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대형 사건. 그리고 너무도 많은 희생자들. 너무도 아까운 인재들을 한 순간에 잃었던 그 사건. 그것을 모를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강민철은 아웅산 사건의 주범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가 그 때 안 죽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고, 한 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래도 큰 사건이었는데, 도대체 누가 왜 어떻게 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기억은 역사에 대한 의무 아니던가, 책임이 아니던가, 기억을 해야 반복을 방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여기에 출판사를 살펴보니 '창비'다. 그렇다면 함부로 책을 내지는 않았겠구나 하는 믿음도 있고. 벼르고 벼르다 도서실에서 책을 빌려 읽게 되었는데...

 

그는 아웅산 사건을 일으킨 세 명 중 한 명이다. 북한 특수부대 공작원이고, 버마(지금은 미얀마)까지 와서 사건을 일으켰다. 그 덕에 우리나라 각료들이 많이 죽었고, 그 상처는 지금까지도 아물고 있지 않다. 그러니 이런 테러리스트에 대한 책을 쓴다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죽어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책을 쓴다는 일,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럼에도 지은이는 그에 대한 글을 썼다. 그가 아무리 죽어마땅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행위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고 비도덕적인 행위이지만, 그것이 그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기에는 한반도의 상황을, 정치권력들의 힘겨루기를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책을 썼다고 한다.

 

그 개인의 행위는 용서할 수 없지만, 어릴 적부터 세뇌교육과 훈련을 받은 사람의 행위는, 그렇게 하도록 교사한 사람들에게 더한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를 용서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제2의 그가 나오지 않게 우리는 그에 대한 일을 확실히 알고 기억해야 하고 대처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취지에서 이 책이 나왔다고 본다.

 

하여 이 책은 한반도의 상황을 먼저 이야기한다. 남북으로 분단이 되어 얼마나 많은 폭력들이 일어났는지, 서로 폭력을 조장하고, 일으키고 상대방을 죽이려고 했는지 이야기한다. 이 정점에 광주민주화운동이 있다. 이런 광주민주화운동이 아웅산 사건을 일으키는 간접적인 계기를 제공한다고 한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대통령을 제거하면 혼란이 오고, 그 때 자신들이 개입하면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오판을 북의 지배자들이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오판에서 아웅산 사건을 일으켰는데, 결과적으로 아웅산 사건은 북한을 고립되게 하였고, 이 사건의 주범 중 한 명은 사살되고, 한 명은 사형을 당하고, 나머지 한 명인 강민철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하다 죽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강민철 그는 국가의 명령으로 사건을 저질렀다. 그러나 국가는 그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끝까지 외면한다. 하여 그는 머나먼 이국 땅인 버마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토록 그리던 조국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임종 순간 조국의 말을 하는 사람도 곁에 없는 상황에서.

 

남과 북, 어디에서도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했지,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했던 그. 그는 바로 우리 민족 비극의 중심에 서 있다가 비극의 급류에 휩쓸려 죽어갔다고 해야 옳다.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훈련된 살인 무기로써 대우받았던 그. 끝내 그는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고, 버림받고 말았다. 그런 그를 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철저하게 잊혀져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그를 굳이 우리 기억 속으로 불러내는 이유는, 우리 민족의 비국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

 

사람보다는 정치적인 고려를 앞세우는 경우가 아직도 많기 때문. 이제는 이러한 정치적인 고려와 더불어 경제적인 고려도 사람의 앞에 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 어떤 이유로든 사람을 앞설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분단현실로 인해 정치적인 고려보다는, 우리 민족 구성원인 사람들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칼기 폭파범이었던 김현희는 "이젠 여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했다. 그는 그리고 여자가 되었다. 정치적, 군사적 목적을 행하던 기계에서 사람이 되었는데, 강민철은 그는 결국 남자가 되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누구도 그에게 남자가 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결혼하고 싶어했다던데... 사람으로서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했다는데.

 

이런 그의 비극. 이것은 그에게 우연히 닥친 비극일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에게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비극이기도 하다. 이 점이 바로 그를 다시 불러내어 기억하도록 하는 이유이기도 하리라. 이렇게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게 우리 자신이 깨어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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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우리학교 작가탐구클럽
박일환 지음 / 우리학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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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이름만 들으면 남잔지 여잔지 헷갈린다. 잘 몰랐던 시절에는 그의 시를 읽고 또 이름을 보고 여자네 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 아이들도 김소월이라는 이름과 '진달래꽃'이라는 시만 주고서 남잔지 여잔지 생각해 보라고 하면 여자라고 하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다.

 

아마도 소월이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 때문에 그러리라 생각하는데, 김소월에 대해서 배우면서 그의 본명이 '정식'이라고 하면 '아, 남자구나!'하게 된다.

 

그래도 김소월은 김정식이라는 이름을 묻히게 했고, 우리는 그를 김소월로 기억하고, 그의 '진달래꽃'은 우리나라 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 순위를 매긴다면 윤동주의 '서시'와 더불어 1,2위를 다투는 시일 것이다.

 

이렇게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김소월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시인이구나 일찍 죽었구나 하고 말뿐이다.

 

하지만 작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지식은 그의 작품에 대해서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의 말미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를 쓴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문학작품은 작가의 경험이 밑바탕에 깔려 있으니까요. 이 책을 읽고 김소월의 삶과 시에 대해 조금이라도 잘 알게 되었다면 다행이에요.(195쪽)

 

김소월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많이 알면 알수록 그의 시에 대해서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작품이 단지 '한'을 다룬 것이 아니라는 점, 단지 사랑타령의 시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그의 시에는 민족의 아픔과 현실을 노래한 시들도 많다는 점... 그가 나름대로 철저한 민족의식을 지니고 살았다는 점 등등을 말할 수 있게 된다.

 

하여 이 책은 김소월의 생애를 작품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여 보여주고 있다. 그냥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김소월에 대해서 많은 자료들을, 특히 김소월의 숙모가 쓴 글을 토대로 내용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여기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여 청소년들이 읽기 쉬운 어투를 선택해서 어렵지 않게 책을 읽어나가게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정신이상, 그래서 어머니가 아버지의 간호때문에 김소월에게 정성을 쏟을 수가 없었고, 이 자리를 숙모가 대신했다는 사실. 돈을 많이 번 할아버지는 민족의식이 없어서 김소월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 그가 오산학교에 다녀서 민족의식이 깨우쳐졌다는 것. 존경하는 조만식 선생에게 바치는 시 '제이 엠 에스'를 쓰기도 하고... 일본 유학을 갔으나 관동대진재로 인해 공부를 하지 못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현실.

 

그리고 문단에 데뷔해서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는 이야기, 기껏 어울려야 스승인 김억과 동년배인 나도향과 어울렸는데... 나도향이 요절하는 바람에 충격을 많이 받았을 거란 이야기.

 

20년대에는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지만 30년대에는 거의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고, 일제의 감시를 많이 받았다는 점 등이 소상하게 설명되어 있다.

 

김소월에 관해서 논란이 되었던 많은 점들을 짚어보면서... 최근의 성과들을 수용하여 정리해주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결코 현학적이지 않게 청소년들이 이해할 수 있게 써내려 갔다는 점이 더 큰 장점일테고.

 

책의 끝부분에 김소월에 관한 여러 생각거리를 제공해주어서 청소년들이 김소월의 작품에 대해서 다각도로 생각해 보게 했다는 점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은 교과서에서 질릴 정도로 들었던 김소월. 글쓴이의 말처럼 그의 삶을 안다면 그의 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김소월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덧글

 

정말 소소한 오타다. 책을 읽은 사람이면 너무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런 년도는 조심해야 한다.

1932년 12월 23일 밤에 술을 마시고 돌아와서 자리에 누운 소월이 다음 날 아침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사실 (185쪽) --> 소월의 죽음은 1934년으로 나와 있으니... 이런 오타는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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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명세자 - 칼을 품은 춤, 세도정권을 겨누다
이상각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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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조선 후기, 다시 한 번 조선을 중흥시킬 수 있었던 군주. 그러던 그가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고, 어린 나이의 순조가 왕의 자리에 오른다. 그는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을 겪게 되는데... 정순왕후는 정조의 개혁정책을 지지하던 신하들을 하나하나 내치고 만다. 이러니 순조는 왕이 된 처음부터 허수아비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자신의 아버지가 이루려 했던 정치가 사그러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무능력한 왕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참 오래도 왕 노릇을 했는데.. 무려 30년이 넘게 왕노릇을 했지만, 그야말로 이름뿐인 왕이었을터. 그러던 그가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그의 아들에게 정치를 맡기게 되는데...

 

왕이 살아있음에도 세자에게 정치를 맡기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으니 그것은 별 무리가 아니었고...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왕도 있었지만, 순조는 정치적으로 욕심이 없던 왕이라는 평가를 받으니 그는 그냥 쉬고 싶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아들로 하여금 대리청정을 하게 하고 자신은 뒤로 빠지게 되는데...

 

그 아들이 바로 효명세자다. 우리 역사에서 별로 다루어지지 않는 인물. 그러나 3년간 실질적으로 조선을 다스렸던 왕노릇을 했던 세자다. 그가 왕이 되지 못한 이유는 축출당해서도 아니고 병으로 갑작스레 죽었기 때문인데... 3년간 조선을 다스리다 갑자기 죽어 왕이 되지도 못하고,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꿈을 접어야 했던 사람.

 

그의 죽음으로 인해 조선은 중흥의 기회를 완전히 잃고 말았으니... 그가 세도정치를 견제하려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음에... 그의 죽음과 함께 세도정치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었으니... 효명세자의 죽음과 더불어 조선은 몰락의 길을 밟았다고 해야 하겠다.

 

간간히 효명세자의 이름을 듣기는 했으나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의 제목에서 강조하는 것은"칼은 품은 춤, 세도정권을 겨누다"이니, 그는 세도정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서 왕권을 강화하려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그가 채택한 방식이 바로 '궁중 무용'이었으니... 춤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이런 왕권 강화를 통해 세도정치를 척결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중심에는 늘 친인척들이 문제가 되는데.. 고려시대에도 외척들의 힘이 왕권을 누른 적이 있었고, 조선 초기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으니, 그래도 왕의 힘이 강했을 때, 태종같은 왕은 자신의 자손을 위해서 외척들을 일소해버리는 피비린내나는 숙청을 하기도 했는데, 왕권이 약화된 상태에서는 이러한 숙청은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신권의 강화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친인척들을 등용하는 방법을 조선 후기에 썼다고 할 수 있고, 이렇게 신권을 견제하려던 외척 등용이 결국은 왕권을 약화시키고 세도정치를 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세도정치...여기에는 백성들의 삶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을 잃지 않는 정치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들이 말하는 어떤 명분도 결국은 자신들의 정권유지로 귀착이 되고, 이들은 이러한 정권유지를 위해서라면 어떤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왕이 자신의 조카라해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동안에만 친인척일 뿐이다. 자신들의 정권에 칼을 들이대려고 하면 어떤 방법을 택해서든 왕의 권력을 무력하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 성공한다. 왜냐하면 이미 이때는 왕의 권력이란 종이호랑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러니 효명세자가 세도정치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칼을 직접 들이대어서는 안되었다. 간접적으로 돌려서 칼을 대어야 한다. 그래서 그가 채택한 방법이 바로 예악, 즉 궁중 무용이다. 이 분야는 신하들보다 자신이 더 잘알았고, 이를 통해서 왕실의 힘을 회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런 궁중 무용, 즉 예악으로 세도정치를 견제할 수 있을까? 이것은 왕실의 권위를 높이는 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세도정치를 타파하는 방법으로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궁중무용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참여하는 사람들 역시 친인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친인척은 세도정치의 중심에 있다. 그러니 예악을 정비한 것은 왕실의 위엄을 높이는 방법이기는 했겠지만, 결국 세도정치를 견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세도정권이 이러한 예악에 대해서 반대를 하지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고.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정치를 펼치려고 하나, 당시 환경이 도와주지 않는다. 잦은 자연재해와 온갖 사회문제들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해야 할 관료들은 백성들의 안위보다는 자신들의 영달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백성들이 죽고 다치고 굶주리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벼슬자리 유지에 더 관심이 많았다. 아무리 효명세자가 명령을 내린다해도 밑에서 움직여주지 않고, 또 세자의 주변에 있는 막강한 세도정권이 그들 부패한 관료들을 뒤봐주고 있으니 세상이 변화될 리가 없다.

 

지금...우리도 이렇게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들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은가. 효명세자는 이렇게 세도정권과 부패한 관리들에 포위되어 있었으니 그의 개혁정책이 먹혀들 이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대리청정 3년 만에 갑작스레 죽고 만다.

 

그의 죽음과 더불어 조선의 중흥은 멀어지고 말았으니...어쩌면 우리는 영·정조 이후에 마지막으로 찾아온 중흥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순조 이후 헌종, 철종, 그리고 고종에 이르러 조선은 몰락의 길을 걸어가니 말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효명세자에 대한 이야기. 역사책이라서 역사적 사실을 건조하게 나열한 것이 아니라, 팩션이라는 장르를 이용하여 효명세자의 일대기를 재구성해 낸 책이다. 따라서 역사소설을 읽듯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예악'에 너무 중점을 두어서 그가 도대체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어쩜 그는 자신의 정책을 펼치지도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사회에서 그가 3년 동안 했던 백성을 위한 정치가 어떤 것이었는지 이 책을 통해서 알기는 힘들다. 다만, 그가 세도정권을 견제하려고 했던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니...그게 조금 아쉽다. 조선의 중흥은 세도정치를 견제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국민이 되게, 그들이 실질적으로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정치를 펼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일반 백성에게는 왕이나 세도정권이나 그들을 수탈하는 집단에 불과할 수도 있기에.. 효명세자의 어떤 정책이 백성을 위하는 나라를 건설하려고 했는지를 밝혔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재난이 일어났을 때 구휼정책을 폈다는 것 말고. 그럼에도 이 책은 효명세자라는 사람에 대해서 자세하게 조명하고 있다는 장점은 확실히 지니고 있다. 조선 말기 세도정치에 대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밑그림이 그려졌으니 말이다.

 

이런 세도정치, 지금의 정치와 닮은 점이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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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백범 김구 자서전
김구 지음, 도진순 주해 / 돌베개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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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많이 알려져 있는 책이다. 마치 춘향전이나 심청전, 또는 홍길동전처럼 사람들이 내용을 알고 있지만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지는 않은 책. 어렸을 때부터 요약된 책으로 또는 어린이를 위하여 재편집된 책으로 읽어보았던,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는 이미 읽었는 걸, 다 아는 내용인 걸 하면서 손에 들지 않는 책.

 

그렇게 유명한 책인데도 정작 제대로 읽히지는 않는 책.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데도 정작 그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런 점이 백범 김구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도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나와 있음에도, 임시정부의 주석을 역임했던, 실질적으로 임시정부를 끝까지 이끌었던 백범의 사상을 계승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나왔고 그들은 우리나라를 위한다고 큰소리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들이 진정으로 우리나라를 위한 정치를 하려고 했던가 생각을 해보면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온다.

 

왜 그들은 그들이 존경한다는 백범의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는가? 읽어도 왜 자기들에게 유리한 점만 찾아 읽었는가. 그것은 그들의 눈에 사심이 끼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심으로 인해 정작 백범이 주장한 정치는 뒤로 가고, 오로지 정권을, 권력을 차지하려는 욕심만 남아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선거의 계절이다. 각 예비후보들이 난립하여 자신을 알리기에 분주하다. 봄을 맞아 많은 꽃축제장에 가보면 온갖 예비후보들이 명함을 돌리고 있다.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 자신이 우리나라를 위한, 자신이 속한 지역을 살릴 진정한 일꾼이라고.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백범을 꼽기도 한다. 백범처럼 정치를 하겠다고도 한다. 그런데 정작 백범이 어떤 정치를 원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 정치가들 중에 백범일지를 정독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백범일지를 읽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백범의 정치사상을 찾기 위하여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논쟁이 심화되고 있는데... 백범은 보수다. 아니 백범 정도는 되어야 보수라고 할 수 있다. 보수는 책임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민족의 발전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전제로 한다. 그들, 자신의 이익보다는 민족의 이익을 앞세울 때 보수가 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보수의 탈을 쓴 수구일 뿐이다.

 

이렇게 수구와 보수를 갈라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만 진정한 정치의 민주화가 이루어진다. 그것이 백범이 바라는 바이기도 했으리라.

 

그는 개인의 안녕보다는 민족의 발전에 자신의 전생애를 걸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시련도 이겨낼 수 있었으리라. 그런 백범의 모습이 이 책에 너무나도 잘 나타나 있다. 왜 그가 그렇게 고생스러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일했는지...

 

그것은 그가 진정한 보수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였기에 동학에도 가담을 하고, 나중에는 예수교에도 가담을 하며, 임시정부 활동을 하면서 조국의 운명을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보수주의자. 이 시대에 정말로 그리운 존재다. 보수의 탈을 쓴 수구들이 아니라 말이다.

 

선거철. 이 때 난무하는 말들은 모두 화려하다. 이 화려함에 진정성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그런 개살구들에 속아서 늘 한 입 꽉 깨문다. 그리고 퉤퉤 뱉는다. 지금까지 우리가 선거를 통해서 겪어왔던 일들 아니던가.

 

백범일지는 이런 때 빛 좋은 개살구들이 아니라 진정 아름다운 말을 하는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고 알려준다. 누가 우리나라를 위해서 일할 사람인지를 판단하는데 도움을 준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앞서게 되는 그런 사람. 그런 정치인이 누구인지 판단하게 해준다.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정치적 안목, 그것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이것이 요즘 나에게 다시 백범일지를 손에 들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문고판으로 읽었던 백범일지가 아닌, 제대로 주해가 된 이 책을 읽으며 그간 백범에 대해서 놓치고 있었던 부분을 알게 되었고... 너무도 유명한 글인 "나의 소원"을 다시 읽으며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정치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 백범일지를 다 읽지는 않더라도 '나의 소원'만은 읽어라. 그리고 백범이 꿈꾸는 나라가 백범만이 꿈꾸는 나라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꿈꾸는 나라임을, '나의 소원'은 백범만의 소원이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의 소원임을 명심하라.

 

적어도 보수든 진보든 백범같은 정치인을 우리가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보수의 탈을 쓰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그런 수구들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나의 소원'을 읽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소원이므로. 우리는 백범의 '나의 소원'에 나와 있는 나라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을 위하므로. 우리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깨닫기 위해서.

 

그렇게 깨달았다면 빛 좋은 개살구인지 정말로 달콤한 살구인지 알려고 노력을 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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