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
라종일 지음 / 창비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강민철.

기억하는 이름인가? 아는 이름인가? 이 사람을 안다면 우리나라 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이리라.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몰랐다. 도대체 강민철이 누구인지... 그의 본명이 강영철이라는데, 무엇을 한 사람인지. 우리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한 사람인지, 어느 시대에 활동한 사람인지...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북한 사람인지, 남한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광고에서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이라는 책이 나왔다. '어, 아웅산 사건!' 이것은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내 기억에도 또렷이 남아있고. 물론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대형 사건. 그리고 너무도 많은 희생자들. 너무도 아까운 인재들을 한 순간에 잃었던 그 사건. 그것을 모를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강민철은 아웅산 사건의 주범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가 그 때 안 죽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고, 한 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래도 큰 사건이었는데, 도대체 누가 왜 어떻게 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기억은 역사에 대한 의무 아니던가, 책임이 아니던가, 기억을 해야 반복을 방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여기에 출판사를 살펴보니 '창비'다. 그렇다면 함부로 책을 내지는 않았겠구나 하는 믿음도 있고. 벼르고 벼르다 도서실에서 책을 빌려 읽게 되었는데...

 

그는 아웅산 사건을 일으킨 세 명 중 한 명이다. 북한 특수부대 공작원이고, 버마(지금은 미얀마)까지 와서 사건을 일으켰다. 그 덕에 우리나라 각료들이 많이 죽었고, 그 상처는 지금까지도 아물고 있지 않다. 그러니 이런 테러리스트에 대한 책을 쓴다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죽어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책을 쓴다는 일,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럼에도 지은이는 그에 대한 글을 썼다. 그가 아무리 죽어마땅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행위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고 비도덕적인 행위이지만, 그것이 그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기에는 한반도의 상황을, 정치권력들의 힘겨루기를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책을 썼다고 한다.

 

그 개인의 행위는 용서할 수 없지만, 어릴 적부터 세뇌교육과 훈련을 받은 사람의 행위는, 그렇게 하도록 교사한 사람들에게 더한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를 용서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제2의 그가 나오지 않게 우리는 그에 대한 일을 확실히 알고 기억해야 하고 대처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취지에서 이 책이 나왔다고 본다.

 

하여 이 책은 한반도의 상황을 먼저 이야기한다. 남북으로 분단이 되어 얼마나 많은 폭력들이 일어났는지, 서로 폭력을 조장하고, 일으키고 상대방을 죽이려고 했는지 이야기한다. 이 정점에 광주민주화운동이 있다. 이런 광주민주화운동이 아웅산 사건을 일으키는 간접적인 계기를 제공한다고 한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대통령을 제거하면 혼란이 오고, 그 때 자신들이 개입하면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오판을 북의 지배자들이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오판에서 아웅산 사건을 일으켰는데, 결과적으로 아웅산 사건은 북한을 고립되게 하였고, 이 사건의 주범 중 한 명은 사살되고, 한 명은 사형을 당하고, 나머지 한 명인 강민철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하다 죽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강민철 그는 국가의 명령으로 사건을 저질렀다. 그러나 국가는 그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끝까지 외면한다. 하여 그는 머나먼 이국 땅인 버마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토록 그리던 조국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임종 순간 조국의 말을 하는 사람도 곁에 없는 상황에서.

 

남과 북, 어디에서도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했지,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했던 그. 그는 바로 우리 민족 비극의 중심에 서 있다가 비극의 급류에 휩쓸려 죽어갔다고 해야 옳다.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훈련된 살인 무기로써 대우받았던 그. 끝내 그는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고, 버림받고 말았다. 그런 그를 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철저하게 잊혀져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그를 굳이 우리 기억 속으로 불러내는 이유는, 우리 민족의 비국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

 

사람보다는 정치적인 고려를 앞세우는 경우가 아직도 많기 때문. 이제는 이러한 정치적인 고려와 더불어 경제적인 고려도 사람의 앞에 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 어떤 이유로든 사람을 앞설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분단현실로 인해 정치적인 고려보다는, 우리 민족 구성원인 사람들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칼기 폭파범이었던 김현희는 "이젠 여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했다. 그는 그리고 여자가 되었다. 정치적, 군사적 목적을 행하던 기계에서 사람이 되었는데, 강민철은 그는 결국 남자가 되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누구도 그에게 남자가 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결혼하고 싶어했다던데... 사람으로서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했다는데.

 

이런 그의 비극. 이것은 그에게 우연히 닥친 비극일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에게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비극이기도 하다. 이 점이 바로 그를 다시 불러내어 기억하도록 하는 이유이기도 하리라. 이렇게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게 우리 자신이 깨어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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