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 - 칼을 품은 춤, 세도정권을 겨누다
이상각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정조.. 조선 후기, 다시 한 번 조선을 중흥시킬 수 있었던 군주. 그러던 그가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고, 어린 나이의 순조가 왕의 자리에 오른다. 그는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을 겪게 되는데... 정순왕후는 정조의 개혁정책을 지지하던 신하들을 하나하나 내치고 만다. 이러니 순조는 왕이 된 처음부터 허수아비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자신의 아버지가 이루려 했던 정치가 사그러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무능력한 왕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참 오래도 왕 노릇을 했는데.. 무려 30년이 넘게 왕노릇을 했지만, 그야말로 이름뿐인 왕이었을터. 그러던 그가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그의 아들에게 정치를 맡기게 되는데...

 

왕이 살아있음에도 세자에게 정치를 맡기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으니 그것은 별 무리가 아니었고...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왕도 있었지만, 순조는 정치적으로 욕심이 없던 왕이라는 평가를 받으니 그는 그냥 쉬고 싶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아들로 하여금 대리청정을 하게 하고 자신은 뒤로 빠지게 되는데...

 

그 아들이 바로 효명세자다. 우리 역사에서 별로 다루어지지 않는 인물. 그러나 3년간 실질적으로 조선을 다스렸던 왕노릇을 했던 세자다. 그가 왕이 되지 못한 이유는 축출당해서도 아니고 병으로 갑작스레 죽었기 때문인데... 3년간 조선을 다스리다 갑자기 죽어 왕이 되지도 못하고,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꿈을 접어야 했던 사람.

 

그의 죽음으로 인해 조선은 중흥의 기회를 완전히 잃고 말았으니... 그가 세도정치를 견제하려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음에... 그의 죽음과 함께 세도정치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었으니... 효명세자의 죽음과 더불어 조선은 몰락의 길을 밟았다고 해야 하겠다.

 

간간히 효명세자의 이름을 듣기는 했으나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의 제목에서 강조하는 것은"칼은 품은 춤, 세도정권을 겨누다"이니, 그는 세도정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서 왕권을 강화하려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그가 채택한 방식이 바로 '궁중 무용'이었으니... 춤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이런 왕권 강화를 통해 세도정치를 척결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중심에는 늘 친인척들이 문제가 되는데.. 고려시대에도 외척들의 힘이 왕권을 누른 적이 있었고, 조선 초기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으니, 그래도 왕의 힘이 강했을 때, 태종같은 왕은 자신의 자손을 위해서 외척들을 일소해버리는 피비린내나는 숙청을 하기도 했는데, 왕권이 약화된 상태에서는 이러한 숙청은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신권의 강화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친인척들을 등용하는 방법을 조선 후기에 썼다고 할 수 있고, 이렇게 신권을 견제하려던 외척 등용이 결국은 왕권을 약화시키고 세도정치를 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세도정치...여기에는 백성들의 삶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을 잃지 않는 정치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들이 말하는 어떤 명분도 결국은 자신들의 정권유지로 귀착이 되고, 이들은 이러한 정권유지를 위해서라면 어떤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왕이 자신의 조카라해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동안에만 친인척일 뿐이다. 자신들의 정권에 칼을 들이대려고 하면 어떤 방법을 택해서든 왕의 권력을 무력하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 성공한다. 왜냐하면 이미 이때는 왕의 권력이란 종이호랑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러니 효명세자가 세도정치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칼을 직접 들이대어서는 안되었다. 간접적으로 돌려서 칼을 대어야 한다. 그래서 그가 채택한 방법이 바로 예악, 즉 궁중 무용이다. 이 분야는 신하들보다 자신이 더 잘알았고, 이를 통해서 왕실의 힘을 회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런 궁중 무용, 즉 예악으로 세도정치를 견제할 수 있을까? 이것은 왕실의 권위를 높이는 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세도정치를 타파하는 방법으로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궁중무용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참여하는 사람들 역시 친인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친인척은 세도정치의 중심에 있다. 그러니 예악을 정비한 것은 왕실의 위엄을 높이는 방법이기는 했겠지만, 결국 세도정치를 견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세도정권이 이러한 예악에 대해서 반대를 하지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고.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정치를 펼치려고 하나, 당시 환경이 도와주지 않는다. 잦은 자연재해와 온갖 사회문제들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해야 할 관료들은 백성들의 안위보다는 자신들의 영달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백성들이 죽고 다치고 굶주리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벼슬자리 유지에 더 관심이 많았다. 아무리 효명세자가 명령을 내린다해도 밑에서 움직여주지 않고, 또 세자의 주변에 있는 막강한 세도정권이 그들 부패한 관료들을 뒤봐주고 있으니 세상이 변화될 리가 없다.

 

지금...우리도 이렇게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들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은가. 효명세자는 이렇게 세도정권과 부패한 관리들에 포위되어 있었으니 그의 개혁정책이 먹혀들 이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대리청정 3년 만에 갑작스레 죽고 만다.

 

그의 죽음과 더불어 조선의 중흥은 멀어지고 말았으니...어쩌면 우리는 영·정조 이후에 마지막으로 찾아온 중흥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순조 이후 헌종, 철종, 그리고 고종에 이르러 조선은 몰락의 길을 걸어가니 말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효명세자에 대한 이야기. 역사책이라서 역사적 사실을 건조하게 나열한 것이 아니라, 팩션이라는 장르를 이용하여 효명세자의 일대기를 재구성해 낸 책이다. 따라서 역사소설을 읽듯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예악'에 너무 중점을 두어서 그가 도대체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어쩜 그는 자신의 정책을 펼치지도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사회에서 그가 3년 동안 했던 백성을 위한 정치가 어떤 것이었는지 이 책을 통해서 알기는 힘들다. 다만, 그가 세도정권을 견제하려고 했던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니...그게 조금 아쉽다. 조선의 중흥은 세도정치를 견제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국민이 되게, 그들이 실질적으로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정치를 펼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일반 백성에게는 왕이나 세도정권이나 그들을 수탈하는 집단에 불과할 수도 있기에.. 효명세자의 어떤 정책이 백성을 위하는 나라를 건설하려고 했는지를 밝혔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재난이 일어났을 때 구휼정책을 폈다는 것 말고. 그럼에도 이 책은 효명세자라는 사람에 대해서 자세하게 조명하고 있다는 장점은 확실히 지니고 있다. 조선 말기 세도정치에 대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밑그림이 그려졌으니 말이다.

 

이런 세도정치, 지금의 정치와 닮은 점이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볼 문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