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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레모사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8
김초엽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평점 :
당신들처럼 되고싶어요.
가상의 공간, 과거나 미래라기 보단 현재의 평행우주같은 시간 속 이야기다.
처음 주인공 유안이 고통속에서 춤추고, 그런 그녀를 인간승리라 추켜세우는 이들이 나오는 부분에선 <사이보그가 되다>란 책이, 다크 투어가 시작되는 시점에선 <밤의 여행자들>, 폐쇄된 곳 홀린 듯 웃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 <미드소마>가 떠올랐다. 물론 이 소설에서의 다양한 장치들은 여러 책들에서 익히 보아오고 익숙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새롭다고 느낀 것은 환지통 등을 통한 아픔과 그로 인해 갖게 되는 주인공의 선망,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결말이다.
주인공 유안은 촉망받는 무용가이지만, 한 쪽 다리를 잃었다. 잘겨나간 다리는 계속 느껴지고 움직인다. 그런 그림자 다리에서 오는 환지통과 새로운 기계다리로 인해 겪게 되는 고통.
그렇지만 유안은 기계다리로 도약하고 춤을 춘다. 자신의 고통과 서사를 판 돈으로 재활비용을 대고, 기계다리를 3년마다 좀 더 나은 것으로 바꾼다.
기계다리 없이 고용히 누운 밤, 고통없이 오롯이 내 자신으로 살고 싶은 밤이다. 그런 유안의 모습이 정상이 되는 곳, 그래서 선망하는 곳.
<한나는 도약하는 나를 사랑했고 나는 도약을 멈추고 싶었으므로 우리의 꿈은 정해져 있었다. 이제 더는 도저히 춤출 수 없다고, 더는 움직임을 원하지 않는다고 모든 움직임이 매 순간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한나는 울면서 나에게 말했다.
“제발 죽지는 마. 살아는 있어, 어딘가에 살아 있으란 말야.”>
(생화학무기의 폭발로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된 곳,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되돌아왔지만 여전히 수수께끼에 둘러쌓인 므레모사에 추첨을 통해 뽑힌 이들이 여행을 가면서 겪는 이야기다.)
단테의 신곡에 지옥의 나무들이 나온다. 고통스럽고 힘들어하는 나무, 자살한 자들이 받는 벌이다. 자신의 육신을 저버린 죄로 자유로운 몸을 찾지 못한다. 신화 속에서 나무로 변신하는 경우는? 극단적 공포,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혹은 너무 큰 상실과 슬픔으로 육체가 허물어질 때 딱딱한 껍질들이 마치 보호하듯 몸을 감싸며 나무가 된다. 나무가 되어도 남아 있는 감정의 잔재들은 꽃으로 잎으로 떨어져 내린다.
작가가 말하는 움직임과 멈춤의 권력이 뒤바뀐 공간인 므레모사는, 더 이상 움직이고 싶은 마음에서 멀어진 이젠 움직이는 것이 고통이 되어버린 유안에겐 뿌리내리고 싶은 곳일까.
<책표지에 대해.
이 책 표지그림은 이동기 작가님의 꽃밭, 책을 펴면 작가님의 사인이 있고, 엽서 한 장과 비하인드북이 딸려온다. 비하인드북엔 작가와 나누는 책에 대한 질문과 답, 김겨울의 서평이 담겨있다.)
특히 표지가 참 좋았다. 우리나라 팝아트,네오팝의 1세대라 불리는 이동기작가의 아토마우스가 그려진 꽃밭이란 작품이다. 아래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 국수먹는 아토마우스.
이동기 작가는 67년생, 자신의 추억이 깃든 70년대와 80년대를 소재로 1993년 아톰과 미키 마우스를 합친 캐릭터 아토마우스를 만들었다. 그 시절엔 일본의 아톰과 일요일 아침에 하는 디즈니 명작만화가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두 캐릭터의 결합은 반갑고 친근했다. 실제 작가님은 신창원이나 조용필 등을 그리기도 했다. 신창원 그림은 안타깝게 경찰당국의 단속으로 철거되었다고 한다. 을지로에 그려진 벽화엔, 누군가가 다시그리세요 하며 검은 칠로 훼손돼 철거되었다고 하는데, 누군가의 눈엔 예술로 보이지 않았나 보다.
팝아트는 대중매체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실크 스크린으로 작업을 한 앤디워홀이나, 밴데이기법(원색점들로 그림, 삽화가 밴저민 데이 이름에서 명명)의 리히텐슈타인이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아들이 좋아하는 미키마우스를 그렸다가 일약 스타가 된 것으로 인쇄를 확대할시 보이는 점까지 세밀하게 표현했다. 그는 구멍 뚫린 판을 사용해 망점을 표현했다. 모더니즘작가들의 개인주의와 엘리트주의에 반대하고 원본이 가지는 가치의 전복을 꿈꾼 이들이지만 지나친 상업성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런 팝아트 세대에서 좀 더 새로운 팝아트, 주로 80년대의 인기있는 소재들로 작품을 만드는 이들을 네오팝 화가라고 한다. 대표적 인물로는 제프쿤스, 데미안 허스트, 무라카미 다카시(루이비통과 협업하기도 했고 웃는 꽃 은 아이들 가방에 장식용으로 흔하게 볼 정도로 인기였다.), 이동기 등이 있다. 이들은 팝아트 정신을 계승했지만, 유명상표와 협업해서 예술적 창조성을 생산으로 이끌어내 좀 더 적극적인 상업화로 나아가고 있다.>
므레모사의 어두움에서 빠져나와 표지의 그림을 본다. 인공적인 꽃밭과 밝은 색들 사이에서 왜 다시 어둠이 기어나오는 느낌이 든다. 책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