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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 내 삶을 바꾼 아웃사이더 아트
이소영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평점 :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얼마전 페넬로페님의 리뷰에 아체베를 차베크라고 써서 민망했던 적이 있다.
차페크도 아닌 차베크는 누구람 하며 고민했다.
우리 엄마도 그러고보면 엉뚱하고 제멋대로 말하기 대장이다.
제일 많이 하는 말이,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엄마가 동네가게의 매콤돈까스를 좋아하시는데 매번 얼큰돈까스라고 하시거나, 맨날 가는 한의원 이름은 동의보감인데 동방보감? 은 도대체 뭔가 싶지만 나도 그런걸...
얼마 전 모 사이트에서 한 아주머니가 30대청년에게 핫스팟을 켜달라고 부탁해야 하는데, 지스팟을 켜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싶다.
여하튼 정신을 좀 차리고 살아야 하는데....더위탓도 좀 해 본다.
최근에 읽은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에 바로 차페크가 나온다.
카렐 차페크가 아닌 그의 형, 요세프 차페크. 입체파 화가로 체코 큐비즘을 열었다.
그의 그림이 동생인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책의 표지이기도 하다.
이 책의 부제는 내 삶을 바꾼 아웃사이더 아트인데, 말그대로 아웃사이더들의 그림이야기다.
노예, 흑인, 여자, 정신적 문제점을 가진 이들,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지 않은 이들이 그린 그림들이다.
이젠 너무 유명해져 버린 아웃사이더 루소, 그러나 그는 녹색계열의 색들을 50여가지나 써가며 다양한 그림들을 그렸고, 5미터가 넘는 야드비가의 꿈 같은 대작을 남겻다.
정신적 문제로 힘들었던 프리들 디커브렌다이스, 정신병원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아사한 실뱅 푸스코, 카이저 빌헬름2세를 짝사랑하다가 광기로 정신분열을 일으킨 알로이즈 코르바스.
알로이즈 코르바스의 세계엔 그녀만의 아름다운 공주와 왕자가 분홍빛 옷들에 둘러쌓여 살아간다. 푸른 눈과 긴 금발, 화려한 색감이 어린 시절 인형놀이를 연상케 하지만, 그 눈은 너무나 공허하다. 푸른 눈엔 사랑의 빛남과 황홀함 대신 되돌아오지 않는 자신의 사랑만이 넘칠 듯 출렁인다. 그럼에도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공주인 자신과 왕자인 카이저는 두 손을 꼭 잡고 있으며, 주변엔 온갖 꽃들이 가득하니 말이다.
자살실패로 정신병원에 가게된 아우구스터 나터러는 전기기술자로 착시와 중첩의 그림들을 그렸다.
청소부였던 헨리 다거가 창시한 비비안걸스의 왕국.
폴링셰트란 도구(방법은 분신사바랑 비슷한데, 나무조각에 구멍이 뚫려 있다.)로 죽은 자와 대화한다면서, 그 대화를 수많은 선들로 그린 조지아나 하우튼, 그녀의 그림엔 죽은 동생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간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지만, 눈과 스케이트 풍경을 좋아해서 그렸던 헨드릭 아베르캄프.
머큐리가 사랑해서 노래로도 만든, 자신의 친부를 악마라 생각해 죽인 리처드 대드의 그림.
우체부였던 페르디낭 슈발의 꿈의 궁전과, 같은 직업을 가졌던 루이 비뱅이 그린 파리의 골목들.
아스라한 빛을 조명 삼아 여전히 손을 놀려 뜨개를 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며 고요히 늙어가는 어머니를 그린 아나 앙케르.
뉴욕현대 미술관에서 최초로 개인전을 연 흑인 조각가 윌리엄 에드먼스.
그의 조각은 예전 발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연상시킨다. 조그마한 크기로 늘 갖고 다니며 다산이며 사냥의 성공을 빌었을, 염원을 담은 소박하면서도 단순한 조각, 윌리엄의 조각엔 그런 원시적인 소망이 담긴 듯 느껴진다.( 아래 조각은 간호사, 건강을 염원하는 고대 여신 조각상 느낌이지 않는가. ...)
해방후에도 여전히 주인을 떠나서는 어떻게 사는 지 모르는, 해방노예 빌트레일러.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농장의 일들과 노예의 삶을 웃음으로 녹아낸, 그래서 더 참혹함을 느끼게 하는 그의 그림, 비틀거리는 그림자같은 이들과 우스꽝스런 모습의 동물들을 그려낸다.
(아래그림은 자신의 자화상같은 모습, 실제로 다리 하나를 잘라냈다고 한다.)
빌 트레일러와 마찬가지로 흑인노에였던 호레이스 피핀은 1차대전 당시 흑인 부대인 ‘할렘 헬파이터스’ 부대에서 복무하다 오른손을 다친다. 왼손으로 움직여지지 않는 오른손을 지지하며 난로에 달군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렸다.
몬드리안의 친구였던 토레스 가르시아, 몬드리안보다 훨씬 장난기 가득했을 듯 하다.
여성, 노예, 흑인, 정신병력, 그리고 고단한 삶과 그림과는 거리가 먼 직업들을 가진 화가들이다.
그림이 좋아서, 혹은 자신이 하는 행동을 통해 스스로 평안을 찾기 위해 혹은 위안이 되어서 그린 이들이다.
그리고 조각하고 오리고 붙이고 꿈꾸고 웃고 희망하고.
힘들고 더러운 일을 마치고, 낡고 좁은 방안의 의자에 잠시 앉아 숨을 고른 후, 어렵게 모은 돈으로 산 미술도구들로 조심스레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누군가는 떨리는 손으로 잡지를 오렸고 누군가는 색을 덧칠하며 웃었을 것이다. 작고 조용한 집, 먼지가 내려앉은 외로운 집, 그가 혹은 그녀가 붓을 들고 혹은 다양한 도구들을 들고, 아픔을 조각조각 내고, 삶을 다시 한번 그려낸다.
(그림과 화가에 대한 설명과 작가님 인생의 짧은 순간들과 감상평등이 담겨 있는 책이다. 이 책은 화가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 정도이다. )